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67

3부 - 1장 (베레모아저씨와 유혈목이) [3부 : 길을 찾는 젊음에게] 1. 베레모아저씨와 유혈목이 8시에 출발하여 경주시 현곡면 남사리와 영천시 고경면을 가르는 ‘마치재’ 고갯마루까지 왔다. 2차 구간의 시작을 알리는 발걸음이다. 이곳부터 어림산(510m)까지 이어지는 주능선길을 이어가야 한다. 산길에 희미한 안개가 깃들어져 있어서 주변 경관이 보이질 않는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가야할 길을 살펴가는 작업에는 긴장감이 흐른다. 스스로 지도정치를 하며 길찾기에 나서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다. 잠시라도 넋놓고 걷다가는 주능선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생기기 때문에 항상 가야할 길을 살피며 걸어야 한다. 인생길도 이와 같지 않을까? 나는 어쩌면 산에서 인생의 이치를 깨달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림산(510m)정상에서 빨간색 조끼를 입은 아저씨 .. 2021. 12. 1.
2부 - 5장 (인생 별거없대이) 5. 인생 벌거없대이 아침에 라면스프를 넣지 않고 면만 끓여서 1회용 케찹에 비벼먹었다. 7일간 하루 한끼를 라면식으로 하다보니 이젠 질려버렸다. 라면스프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였다. 그렇지만 쌀보다도 가볍게 짊어 메고 다닐 수 있는 라면을 포기할 순 없었다. 체력소모가 심한 장기산행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뱃속에 넣어두어야 했다. 꾸역꾸역 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나서 따뜻한 차 한잔의 여유를 누리고 있는데, 탠트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잎사귀들이 부스럭대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고, ‘여보세요?’ 하며 누군가 살며시 탠트를 두드리고 있었다. ‘계시나요?’ 하고 누군가 나를 부르는 듯했다. 이른 새벽부터 이 깊은 산중에 누군가가 올라온 것일까?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쿵쾅대며 .. 2021. 11. 30.
2부 - 4장 (영남알프스) 4. 영남알프스 5시반이 되니 날이 밝아온다. 새벽녘 동트면서 여명빛이 간월재 너머의 능선들을 비추기 시작했다. 진통제 두알을 먹고 맨소래담 로션으로 시간 날때마다 오른 발목을 마사지하듯 문질렀다. 발목의 부상으로 뒤쳐져 버린 운행일정을 맞추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기에 서둘러야 했다. 하지만 할퀴듯 지나가는 바람의 포효에 또 다시 머뭇거리게 되었다. 문밖을 나가보니 몸조차 가누지 못할 만큼 거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내 고막에 갈퀴질을 해대며 꼼짝 못하게 했다. 비수를 품은 칼바람처럼 살이 베이는 것 같아서 다시 건물 안으로 돌아 들어와 몸을 피했다. 출발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동안 발만 동동 구르다가, 바람을 등지고 걷기로 했다. 문밖을 나서는 순간 바람에 떠밀려 몸의 중심이 흔들렸지.. 2021. 11. 30.
2부 - 3장 (들쥐와의 혼숙) 3. 들쥐와의 혼숙 오뚜기에서 출시한 인스턴트 크림스프 한 봉지를 끓여먹고 아침 8시부터 출발했는데, 정족산(鼎足山, 700m) 부근에서 길을 잃었다. 지도정치와 독도법를 잘못하는 바람에 3시간 가량을 엉뚱한 길에서 허비하고 말았다. 주능을 완전히 놓쳐버린 첫 번째 실수였기에 내 자신의 분에 못이겨 맥이 빠져 버렸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내가 지도를 잘못 보았던 것이다. 지도를 자세히 살펴 보았어야 했는데 딴 생각하며 걷느라 신중치 못했다. 길을 잃었다는 자괴감과 허탈감에 허둥지둥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렇게 서두르다보니 ‘솔밭산공원묘지’ 쪽으로 급히 내려오다가 발목을 겹질렸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바위 둔턱에서 내려갈 때 점프하면서 오른발을 헛디뎠는데 발목이 돌아가 버렸다. 순간 머릿속에.. 2021. 11. 24.
2부 - 2장 (사슴과의 대화) 2. 사슴과 외톨이 굿판은 새벽녘까지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가피한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는 나의 주문은 신기하게도 깊은 잠 속으로 안내해 주었다. 까마귀 소리에 눈을 떴을 때 날이 밝아 있었지만, 탠트문을 열고 하늘을 보니 날씨가 흐렸다. 흐린 하늘을 넋놓고 유심히 바라보니 먹구름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바꾸어가며 틈틈이 햇살을 내비치기도 했다. 밤새도록 굿을 하고 남겨진 고모당 주변 음식물에 눈독을 들인 것일까? 까마귀가 무리지어 배회하며, 시원하게 펼쳐진 창공아래 넉넉하고 절개있는 폼으로 까옥거렸다. 내 탠트 주변으로도 가까이 와서 염탐하는 것을 보니, 혹시 내 식량도 탐내는 것은 아닐까. 까마귀의 배회를 무심히 바라보며 아침으로 라면을 끓였다. 짐이 꽉차서 파일자켓은 배낭해드 위에 끈으로 묶어 맸다. .. 2021. 11. 24.
2부 - 1장 (환상방황) [ 2부 : 나를 찾아가는 순례] 1. 환상방황 그는 왜 죽었을까. 그리움으로 사무치는 세월을 견뎌야 하는 산자의 형벌. 삶과 죽음, 환영이가 남겨두고 간 유일한 화두는 바로 이것이다. 나는 그 삶과 죽음의 비밀을 알아야겠기에 이 무모한 순례를 시작하게 되었다. 인생이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 이러한 삶이 아닌 또 다른 삶은 가능할까? 나는 왜 태어났으며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궁금했다. 끊임없이 내 안의 나에게 묻는다. 불평등하고 부조리해 보이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신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당장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는 경지의 삶이란 무엇일까? 풀리지 않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 나는 이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다면 집으로 돌아가.. 2021.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