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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다큐에세이

2부 - 4장 (영남알프스)

by 당당 2021. 11. 30.

4. 영남알프스

 

5시반이 되니 날이 밝아온다. 새벽녘 동트면서 여명빛이 간월재 너머의 능선들을 비추기 시작했다. 진통제 두알을 먹고 맨소래담 로션으로 시간 날때마다 오른 발목을 마사지하듯 문질렀다. 발목의 부상으로 뒤쳐져 버린 운행일정을 맞추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기에 서둘러야 했다. 하지만 할퀴듯 지나가는 바람의 포효에 또 다시 머뭇거리게 되었다. 문밖을 나가보니 몸조차 가누지 못할 만큼 거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내 고막에 갈퀴질을 해대며 꼼짝 못하게 했다. 비수를 품은 칼바람처럼 살이 베이는 것 같아서 다시 건물 안으로 돌아 들어와 몸을 피했다. 출발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동안 발만 동동 구르다가, 바람을 등지고 걷기로 했다. 문밖을 나서는 순간 바람에 떠밀려 몸의 중심이 흔들렸지만, 나는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바람에 저항하며 발걸음을 내딛었다.

식목일이라서 그런지 영남알프스 산군에 많은 사람들이 올라왔다. 주능선에 올라서니 울산상공회의소 건물도 보였고 울산대학교 수련장 간판도 붙어있었다. 매점에 도착해서 보충할 만한 물품들을 찾아보았더니 행동식 뿐이었다. 과자 두 봉지와 초코파이 몇 개를 사서 배낭에 넣었다. 하지만 간밤에 들쥐들의 습격으로 이틀치 식량분을 시주하고 왔기 때문에 더 채워놓아야 했고, 쌀도 보충해야 했다. 정확히 하자면 쥐들에게 식량을 갈취당한 수모를 만회해 놓아야 했다.

매점에 들어가서 경비원 아저씨에게 쌀을 좀 구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본인은 권한이 없으니 소장님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 해보란다. 이곳은 쌀을 구하는 데에도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 같았다. 경비 역할이라서 권한이 없는 모양이었다. 좀 복잡해질 것 같아서 쌀을 보충하려던 생각은 일단 접기로 했다.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그 경비원 아저씨는 어떻게 아셨는지 나보고 부산에서부터 출발해 왔느냐고 물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순간적으로 좀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대답하니까 내 얼굴을 보더니 몸을 좀 씻으라며 샤워실로 안내해 주었다. 낙동정맥 종주자들이 이곳을 지나가게 되면 나처럼 식료품도 사고 가끔 샤워도 하고 간다며 웃는다. 나도 그들처럼 이렇게 똑같은 대우를 받게 되니 너무 감개무량했다. 일주일간 샤워를 한번도 못해 본 내 사정을 어찌 알고 이런 배려해 주는 것일까. 감사한 마음으로 안내받아 샤워실로 들어가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더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얼굴에도 때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서 손가락으로 밀면 벗겨져 나왔다. 가끔 산에서 지나쳐갔던 사람들이 왜 나를 보며 불쾌한 표정으로 쳐다봤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햇빛에 검붉게 그을린 얼굴에 때까지 잔득 껴있었으니 산거지가 따로 없었다.

샤워를 마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을 하려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경비원 아저씨였다. 쌀을 가지고 가라며 부르는 것이었다. 소장한테 직접 허락을 맡고 주는 것이라며 라면 한 봉지 분량의 쌀을 담아서 가지고 오셨다. 정말 고맙고 감동적인 일이 벌어졌다. 주는 자의 행복한 기쁨과 받는 자의 감사의 마음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이렇듯 나누며 사는 삶이야말로 세상을 따뜻하게 한다는 명언을 실감하며 곱씹었다. 사람만이 희망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면,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가치가 충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은혜를 베풀어준 경비원 아저씨가 천사 같았다. 그런 천사들이 이 세상에 곳곳에 숨어있기에 세상은 살만한 거다. 그래서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인정많은 경비원 아저씨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일흔은 되어 보였는데, 사랑어린 말씨와 따뜻한 마음씨가 느껴졌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가장이고 아버지이고 할아버지였을 경비원아저씨, 그 애틋한 시선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경상도 사람들은 참 복도 많다. 영남알프스의 수려한 풍광에 사람의 넋을 잃게 하는 지역이 아닌가. 가지산(1241m), 간월산(1069m), 신불산(1159m), 영축산(1081m), 천황산(1189m), 재약산(1108m), 고헌산(1034m), 운문산(1188m), 문복산(1015m)등이 해발 1,000m 이상의 고도를 자랑하며 울산, 밀양, 양산, 청도, 경주를 두루 걸치고 있다. 한국의 알프스라고 자랑할만도 하다. 나는 영남알프스에 푹 빠져버렸다. 다시 시작된 치통보다도 이 아름다운 영남알프스 산길을 걷는다는 낭만에 더 취해버렸다. 바람은 점점 잦아들고 있었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파란하늘이 산 능선에 휘돌아 감싸고 있었다. 능동산(981m)으로 오르면서 산길 곳곳마다 봄향기 가득 야생화도 보였다. 연분홍 진달래도 햇살 아래 광채를 발하고 있다. 그러나 어제밤부터 불어닥친 강풍에 떨어져나간 꽃송이들이 산길에 널브러져 있다. 태풍의 영향이었으리라. 꽃대에서 잘려나간 꽃송이들은 제 명을 다 살지 못하고 이른 봄, 산길에 누워 피를 토하고 있었다. 그래도 꽃은 원망하지 않고 다시 봄을 기다릴 것이다. 꽃은 피었다고 우쭐대거나 졌다고 슬퍼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이 무념무상의 메시지를 해독하면서 떨어진 꽃잎을 보며 다시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바람아! 그 꽃을 꺽지 말아다오. 너는 언제라도 꽃이 되어 피어본 적 있었니? 산길에 홀로 피어난 여린 꽃 한송이, 지금 심방을 열어 놓았잖니. 어딘가에 있을 제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거든. 외로운 그 꽃을 꺽지 말아다오. 꽃이 아프면 나도 아프단다. 내가 시방 그 꽃이다. 꽃씨를 띄워 답장이 올 때까지 그리움으로 타는 그 꽃을 꺽지 말아다오. 바람아!”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바람에게 부탁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건 인간 중심적인 생각일 뿐이야. 삼라만상(森羅萬象) 모든 피조물들은 저마다 자기 소명에 따라 길을 가는 거란다. 헛된 마음 쓰지 말고, 그냥 네 길이나 잘 가렴.”

 

바람은 나에게 궁상떨지 말고, 자신이나 걱정하라며 내 등줄기를 타고 뒷덜미로 오싹히 전해져 왔다.

 

오른 발목도 아프고 치통까지 심해지고 있었지만,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걸으면서 마음이 맑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영남알프스 주변 풍경들은 행복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만한 곳이다. 완만한 능선길을 오르락 내리락 거리다 보면 마음의 정화가 찾아왔다. 산 아래 굽어보이는 아름다운 산하에 흠뻑 취해 버릴 수 밖에 없었다. 마음속 평안함과 맑은 기운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온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자연인이 되어 자연과 하나된 마음으로 걸었다. 산이 내가 되고 내가 산이 되었다. , 나는 아무래도 산귀신이 되어야겠다. ‘산에서 살고 산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귀바위에서부터 상운산(1,114m) 밑으로 임도를 따라 해드랜턴을 켜고 와서보니, 가지산에서부터 운문령까지는 임도가 개설되어 있었다. 그리고 운문령은 울산과 경산을 가장 가깝게 통과할 수 있는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있는 국도였다. 저녁 어스름 8시가 되어서야 운문령에 도착했다. 울산시를 전경으로 전망좋은 곳에 천막포장집이 있었다. 운문령을 넘는 운전자들에게 커피도 팔고 라면도 끓여주는 곳이었다. 장사를 끝내고 집으로 내려가려는 주인장 내외분을 만났다. 아저씨는 우체국 유니폼 복장이었다. 우체국에서 일하는 것이 분명했다. 퇴근하고 돌아와서 주인아주머니를 태우러 온 것이다. 아줌마는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거의 마쳐가고 있었는데, 잔돈을 넣는 복대와 앞치마가 잘 어우러져 천막휴게소 주인장다웠다. 나는 천막문을 잠그고 떠나려는 아저씨에게 천막 안에 있는 평상마루에서 하룻밤 묵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과장된 제스쳐로 연기하면서 발목이 다쳤다고 호소했다. 잠잠히 듣고 있던 아저씨가 결국 흔쾌히 동의해 주셨다. 천막 안에는 고가의 식품들도 수두룩한데 나를 믿어준 것이다. 주인장이 천막휴게소 매점을 내게 맡기고 떠나면서 내일 아침에 보잔다. 주인장 내외는 1톤트럭에 짐을 실고 10km 밖 울산방향 집으로 떠났다.

이젠 혼자가 되었다. 부부의 허락을 받고 오늘 하룻밤을 실내에서 잘 수 있게 된 나는 너무 기뻤다. 탠트치지 않고 하룻밤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어디랴. 쓰러져가는 판넬 창고에서 들쥐들과 혼숙했던 어제에 비하면 궁전이었다. 또한, 마당에 물이 나온다는 것은 하룻밤 묵는데 최적의 조건이었다.

나는 밤이 깊어지기를 갈망했다. 하루 평균 10시간의 무거운 짐을 메고 걷고 나면 몸은 녹초가 된다. 하지만 밤이 찾아오면 언제나 휴식과 위로의 문을 열어준다. 새벽녘 꽃샘추위와 칼바람, 한낮의 뜨거운 햇살, 온몸에 젖어드는 땀방울들, 아픈 다리와 치통, 이 모든 부스러기들을 뒤로하고 오늘도 밤하늘엔 별들이 가득차서 별빛을 흩뿌리고 있다. 이렇듯 밤의 세계는 황홀한 파노라마를 매일같이 색다르게 연출한다. 은하계에서 전달되는 그 시그널,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그 에너지를 흡수하는 시간임을 나의 몸은 기뻐하고 있다. 오늘도 밤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우주가 거침없이 나를 관통하여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어줄 것이다.

밤기온이 다시 뚝 떨어져서 체감온도는 영락없는 영하 날씨였다. 땀에 젖은 옷을 벗고 알몸으로 씻다가 살점이 뜯겨져 나가는 고통스러움이 느껴져서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다. 세상물정 모르고 금지옥엽처럼 자랐던 내게는 견디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한 여름에도 미지근한 온수로 매일같이 샤워를 했던 집 생각이 절로 났다. 그래도 사람이란 주어진 여건과 그 상황에 따라 결국에는 적응하기 마련이다.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사람에 비한다면 이 고통스러움은 한낱 투정에 불과한 것이다.

운문령 천막휴게소 안에서 북어국을 끓여 아침에 싸온 주먹밥을 말아먹다가 주방싱크대에 놓인 참기름을 주인 허락없이 몇 방울 떨어뜨려 먹었더니 최고급 요리가 되었다. 참기름 몇 방울이 이렇게 감동어린 밥맛을 느끼게 해줄줄이야 정말 몰랐다. 참기름만의 고유하고 그윽한 향기가 입 안에 가득 들어찼다. 이 참기름 한방울에 음식맛이 달라져서 나는 너무나 행복해졌다. 참기름 한 방울에도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이 은은하고도 고소한 향의 참기름 맛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코펠 그릇하나에 담긴 북어국밥은 누가 보더라도 개밥이었지만, 참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린 덕분에 내겐 지상에서 가장 맛있게 요리된 국밥이 되었다. 이 참기름 한 방울의 기적, 나는 죽을 때까지 오늘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행복이란, 별거 아니다. 참기름 한방울에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지금 이 순간 나야말로 가장 행복한 축복의 사람이다. 굶주리고 허기진 상황에서 눈물겹도록 행복한 저녁식사를 가능케 했던 건 참기름 덕분이었다.

 

아침이 밝아 눈을 뜨자마자 어김없이 라면을 끓였다. 아침부터 흐린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온다. 어젯밤에 먹던 코펠에다가 설거지도 하지 않고 그대로 물을 담아 끓인 라면이었다. 반찬없이 먹는 라면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지만 며칠전부터 이상하게 라면 냄새가 역겨웠다. 억지로 라면을 뱃속에다가 집어넣으니 속이 니글거리며 속이 뒤틀렸다. 살기 위해 먹는 라면, 아니 걷기 위해 먹는 라면이었다. 어떻게 하든 몸속에 집어 넣어서 에너지로 발산해내야 했다. 10시간의 육체노동을 견디기 위해서는 에너지원이 꼭 필요했다. 1칼로리라도 소화시켜서 걸을 수 있는 힘을 확보해야 했기에, 라면을 먹은 후에 구역질이 나왔지만 참아야 했다. 토해버리고 싶은 욕구를 참는다는 건 곤욕스런 일이었지만 내 식량이 아까워서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참고 참아도 음식물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왔다. 결국 토해버리고 말았다. 토를 하고나니 코끝이 징하니 현기증이 찾아왔다. 콧속에서 나오는 부산물과 입안의 오물들을 모두 게워냈다. 오늘 컨디션은 최악이다. 오른발목도 낫지 않은 상태에서 어제 너무 무리했나보다. 영남알프스 정취에 취해 야간산행까지 감행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불쌍한 이 육신, 주인 잘못만나 이 고생이다.

8시에 출발하려고 짐을 다 싸놓았으나 주인장 내외분이 아직 오질 않고 있다. 이 시간 즈음에 온다고 했는데 좀 늦어지는 모양이다. 나는 인사하고 헤어질 요량으로 기다리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언양 방면에서 1톤 트럭에 짐을 실고 올라오셨다. 울산 방면쪽에 가정집이 있는 것 같았다. 우체국 유니폼 복장을 한 주인아저씨는 몇가지 짐을 내려놓고 다시 서둘러 내려가셨다.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출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홀로 남겨진 아줌마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장사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아줌마는 삼십대 중반쯤으로 젊어보였다. 나는 인사만 하고 곧바로 출발하고 싶은데 인사할 틈을 주지 않았다. 너무 분주해 보여서 인사할 분위기가 어정쩡했다. 잠시 머뭇거리면서 앉아 있었더니 아줌마는 내게 믹스커피를 한 잔 타주며 밤새 춥지는 않았느냐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무엇하러 이 고생이냐며 관심을 보이시길래, 나는 주신 커피를 마시면서 내 순례에 대하여 자초지종을 애기해 주었다. 그 계기로 주인아줌마와의 이야기꽃은 점점 피어올라 아줌마 가정사 얘기까지 하게 되었다. 아줌마는 매일같이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해서 초등생 남매를 등교시킨 후 아저씨와 함께 운문령에 온다고 했다. 이런 생활을 벌써 4년째 하고 있단다. 우체국 일을 하는 남편이 퇴근하면 다시 이 곳으로 올라온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들은 맞벌이 부부였다. 특히 5학년 큰딸 아이 얘기를 할 때에는 눈물도 보이셨다. 딸 얘기는 너무 안따깝고 난처한 스토리였다. 학교에서 딸에게 못생겼다고 놀리는 친구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여학생들을 외모로 평가하는 짓궂은 남학생들의 말들이 딸에겐 크나큰 상처가 된 것 같았다. 아줌마는 딸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 주루주룩 눈물을 흘리다가도 앞치마로 여러번 눈물을 훔쳐 내셨다. 며칠 전에는 딸이 엉엉 울면서 학교에 안다니겠다고 난리를 쳤다는 것이다. 자신이 너무 못생겼다는 이유란다. 누가 그러냐고 물어도 시원한 답변을 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또 다이어트 한다고 아침저녁도 거르기 일쑤라고 한다. 요즘에는 사춘기에 접어들어선지 엄마 말도 안듣는다며 하소연을 했다. 아들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딸에 대한 고민만 많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오직 단 하나밖에 없는 최고로 소중한 딸! 그 딸이 엄마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딸은 외모에 대한 콤플랙스가 심해서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 문제는 간단하다. 가령 누군가가 못 생겼군하고 말하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독을 받아 마시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받아 마시면서 내 자신의 몸과 마음 곳곳에 독을 퍼뜨리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어떤 사람이 쓰레기와 같은 자기 견해와 생각을 하고 있을 따름인데, 결국 그들의 온갖 쓰레기에 뒤엉켜 버리는 꼴이 된다. 그 쓰레기를 받아먹을수록 불행한 일은 결국 그 당사자인 자신에게 일어난다. 나도 학창시절에 여러번 당한 기억이 있지만, 단호하게 무시하고 스스로의 존엄을 지켰다.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든, 어떤 시선을 보내든, 무슨 일을 벌이든, 신경쓰지 않아야 한다. 내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된다.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든 간에 거부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말처럼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도 청소년기에는 그런 대응방법들을 잘 몰라서 괴로웠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어쩌면 사람의 성격에 따라 어려울 수도 있다. 단지 상황을 잘 이해하고 노력하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 마음이 다 그런 것일까. 자녀의 앞날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청산이 그 무릅아래 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는 어느 노시인의 싯구가 문득 생각났다. 나는 한 시간 가량 아줌마 얘기를 잘 들어주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하룻밤 숙박료를 지불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내 입장에서는 피장파장 주고받는 거였다. 운문령을 출발하여 894봉에 올라서보니 굽어보이는 와항재로 이어지는 주능선 길이 어느 길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풀어헤친 머리결처럼 와항재까지 펼쳐진 여러 능선중의 하나를 더듬듯 찾아가야 했다. 와항재에 내려와보니 음식점들이 많았다. 휴게소에 들려 빵과 우유를 사먹었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먹을 기회가 오면 무언가라도 계속 채워 넣어 두어야만 운행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치통약이 다 떨어졌기 때문에 치통약과 행동식도 보충해서 배낭에 넣었다. 치통약 2알을 복용하고 다시 울주군 상북면과 두서면에 걸쳐 있는 고헌산(1,033m)으로 출발했다. 태화강의 발원지 백운산(892.7m) 가는 능선길엔 고즈넉한 침묵이 감돌고 있다. 바람도 잠시 멎어버린 완전한 침묵이었다. 산기슭도 바람 한 점 없이 움직이지 않았고, 나무숲에도 고요함이 내려 앉아 있었다. 그 분위기에 매료되어 나 자신조차 내면 깊숙히 침잠해 들어갔다. 뭇생명들이 사라져버린 곳처럼 이상한 정적이 온 산을 덮었다. 아침부터 가슴으로 노래하던 아름다운 새들도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하늘위로 먹구름층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신선하고 맑았던 하늘에 침침한 회색빛이 감돌고 있었다. 걱정과 불안감을 안고 산행을 하던 중이었는데, 어디선가 그 고요함을 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하늘에서 한두방울 시작을 알리는 가랑비처럼 내리더니 드디어 격정의 소나기를 대지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우비를 대신하여 가지고 온 가볍고 얇은 세탁소용 비닐카바를 뒤집어 쓰고 걸었는데, 세탁소용 비닐카바는, 먼지타지 않도록 만들어진 세탁물 보관전용 비닐이었기 때문에 잘 찢어지는 약점이 있었다. 거샌바람이 동반하는 경우에는 몇 분도 버텨주지 못했기 때문에 우비대용으로 가지고 온 이 비닐은 무용지물이었다. 배낭무게를 줄이기 위한 조치였지만, 우비는 준비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물에 빠진 생쥐마냥 소낙비에 온 몸이 젖기 시작했다. 소나기는 몇 분간 줄기차게 내리다가 그쳤고, 이내 다시 내리더니 그치기를 반복했다. 배낭카바는 있었기 때문에 배낭 속 물품들만은 비에 젖지 않을 수 있었다. 오직 이 몸뚱아리만 소나기를 온 몸으로 마중하며 걸어야 했다. 하지만 소나기를 맞으며 산행하는 것이 오히려 더 시원하고 기분 좋았다.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원초적인 인간해방의 그 독특한 희열감과 몸의 자유로움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목욕하듯 몸의 열기를 식혀주어서 상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비가 그치고 소호고개에 도착했을 때, 어느새 서쪽 하늘에 광명이 찾아오더니, 이내 일몰의 진통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리도록 붉게 물들어가는 저녁 하늘을 보며, 죽음을 생각했다. 어쩌면 죽음이란 저렇게 찬란하고 황홀하게 작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몰의 그 마지막 절정의 시간과 동시에 어둠의 그림자가 주변에 드리우기 시작했다. 지는 노을을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문득 환영이가 떠올랐다. 환영이도 그 순간에 저 높은 정점에서 마지막 불꽃으로 타오르다가 점멸해가듯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탠트칠 장소를 물색하다가 낙엽이 쌓여있는 평평한 자리를 찾았다. 낙엽더미는 물침대처럼 푹신푹신한 쿠션역할을 해주어서 하룻밤을 편하게 자게 해줄 수 있다는 기쁨에 들떠 있었다. 식수를 떠오기 위해 오른쪽 계곡으로 내려갔더니 이미 물이 마른지 오래된 계곡이었다. 지도를 보고 다시 탠트로 돌아와서 반대편 계곡쪽으로 내려갔다. 날은 점점 어두워 오고 다시 먹구름이 찾아오고 있었다. 물을 뜨기 위해 2시간을 더 허비하는 사이에 체력은 모두 소진되어 야영장소로 돌아왔을 때에는 완전 녹초가 되어 있었다. 야영지로 돌아와서 비와 땀에 젖은 옷을 모두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섰다. 몸의 자유를 허락하는 시간. 아무도 날 찾지 않는 이 산정에 올라 알몸으로 서있는 기분이란, 상상 이상의 쾌감을 안겨준다. 누군가 내 알몸을 볼까 걱정할 것도 없고 눈치볼 것도 없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수건을 가져오지 않고 손수건만 몇 장 챙겨왔기에, 손수건을 뜨거운 물에 짜서 몸을 맛사지하듯 훔쳐내기 시작했다. 손수건에 따뜻한 물을 묻힌 후 때가 밀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알몸 전체를 살살 문질러댔다. 손수건에 적셔진 따뜻한 물기가 피부에 서리면서 온몸의 열기와 땀방울들을 거두어 갔다. 그러면 바람이 불어와서 하루종일 덥혀진 몸을 식혀주었다. 이곳 저곳 온 몸을 어루만지며 따뜻한 물과 손수건, 바람이 함께하는 신성한 의식이었다. 몸의 자유와 해방감이 '산상(山上)에서의 목욕식'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었다. 부끄러움 없이 알몸으로 서서 태초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는, 그냥 간단히 해결하는 손수건 목욕법이 최고였다. 이 목욕법은 옷을 입은채 살 속 곳곳으로 젖은 손수건을 통과시켜도 되는 목욕법이다. 비누나 샴푸도 없이 적은 물로만 몸을 닦아내도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저녁마다 산정(山頂) 목욕을 끝내고 나면 날마다 반복되는 똑같은 일과를 노련히 수행하는 내 자신이 대견하고 뿌듯하게 느껴졌다. 세상만사가 모두 잊혀지고 무념무상의 상태에 접어들며 황홀한 경지에 빠져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