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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실16

누 명 (시) [누명]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 때 그 상황을 그 때 그 사건을 그 때 그 고문을 직접 보고듣고 직접 경험하고 직접 짓밟히고 당해보지 않았다면 견뎌내지 않았다면 증언하지 않았다면 형장에서 돌아온 이의 가슴안에 묻힌채로 살아남은 자가 있다해도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야만의 시대 폭압과 공포의 백척간두에 몰려 터져버린 고백은 남의 일이 아닌거다. - 「다시 백척간두에 서서」 책을 읽고, 저자 황대권 선생에게 바치는 시 책소개 : 베스트 셀러 〈야생초 편지〉의 작가 황대권이 1985년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지 35년 만인 2020년, 마침내 재심을 통해 무죄 선고를 받고 폭풍같이 써내려간 그때 그 사건의 고문과 조작의 생생한 기록, 그리고 촛불혁명을 이루어낸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 2021. 10. 4.
고백시편 (1~20) 【고 백 시 편 1 ~ 20 】 [고백 - 1 (내가 안다는 것)] 내가 살고 있는가 내가 말하고 있는가 내가 가고 있는가 끝없이 회전하는 수 백 개의 내가 한얼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언제까지 휘말려 떠내려 갈 것인가 은총이 내리지 않았다면 내가 있다는 그 허튼소리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존재한다고 말하지 마라 존재하고 있는가 하나됨을 위하여 다가오는 손길에 입맞추자 이미 떠났다고 누가 말하는가 찰라에도 수천 수백 오고있는 것을. 내가 안다는 것은 사실 모르는 것이다 [고백 - 2 (하나되기)] 나는 이제 긴 고백으로 거듭나리. 그 길밖에 길이 없음을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요, 살아도 산 것이 아님을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닌, 그 분의 온전하심이 드러나고자 비워져야 하는 것임을 가만히 앉아 호흡속에서 .. 2021. 9. 29.
너를 잊은적 없다 (시) 다시 사월. 일년전 만났던 사월이 아니라, 날마다 만나는 사월. 매 순간 잊지 못하고 4월에 갇힌 시간들. 4월 16일, 벌써 일곱 번 건너 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시간이란 존재하는 걸까요? 세월호 추모시 한 편 쓰면서 맘을 달래 봅니다. 함께 나눠요. [너를 잊은 적 없다] 봄이 와도 봄인줄 몰랐다 세월은 바다에 잠겨 계절을 잃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 난파선 객실창에 비친 얼굴 빙글대는 수상한 헬리콥터 오, 사랑아. 살아만 있어다오 너를 버릴 순 없다 너를 보낼 순 없다 너를 잊을 순 없다 어디서 어디로 간 것이냐 몇 해가 지나도 깊이를 모르는 병풍도 해상 수심에 너를 버린 적 없다 심연우주에 잠긴 배를 품고 밤하늘 우두커니 지새우며 사시사철 너를 보낸 적 없다 한 점 휙하고 명.. 2021. 4. 15.
나 하나만이라도 (시) [나 하나만이라도] 분노와 무지로 온 세상에 번지는 불길을 보며 사실과 생각조차 구분 못하는 맹목을 보며 올무에 걸린 노루의 죄어드는 고통을 보며 십년을 쌓았건 백년을 쌓았건 무너질 수 있음을 알았다면 나 하나만이라도 소나기 지나고 더욱 단단해지는 대지처럼 태풍에도 춤사위하는 나무처럼 유연하게 허물줄도 아는 용기로 내려놓기 비우고 받아들이기 혁명이란 따뜻하게 보듬어 안는 것. 때리는 것이 아니라 어루만지는 것. 나부터 사랑하고 위로하는 것. (졸시, 2021.03.23) 2021. 3.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