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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다큐에세이

2부 - 5장 (인생 별거없대이)

by 당당 2021. 11. 30.

5. 인생 벌거없대이

 

아침에 라면스프를 넣지 않고 면만 끓여서 1회용 케찹에 비벼먹었다. 7일간 하루 한끼를 라면식으로 하다보니 이젠 질려버렸다. 라면스프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였다. 그렇지만 쌀보다도 가볍게 짊어 메고 다닐 수 있는 라면을 포기할 순 없었다. 체력소모가 심한 장기산행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뱃속에 넣어두어야 했다.

꾸역꾸역 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나서 따뜻한 차 한잔의 여유를 누리고 있는데, 탠트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잎사귀들이 부스럭대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고, ‘여보세요?’ 하며 누군가 살며시 탠트를 두드리고 있었다. ‘계시나요?’ 하고 누군가 나를 부르는 듯했다. 이른 새벽부터 이 깊은 산중에 누군가가 올라온 것일까?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쿵쾅대며 심장박동 소리가 커져갔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산중에서는 짐승보다도 사람이 제일 무섭다. 은연중에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사람 만나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다. 밖으로 나가 누군지 확인하려 했지만, 이내 인기척이 끊겼다. 사람이 지나간 것일까? 숨죽여 귀를 열고 앉아 다시 차를 마시며 불안에 떨고 있는데, 누군가가 탠트 지붕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 사람이 아니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비, 빗소리, 탠트 천장에 부딪치는 빗소리였다. 어제 저녁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더니 비가 오고 있었던 것이다.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비가 그칠 때까지 운행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 부르튼 발목도 신경 쓰였다. 마음 같아선 몸을 추스리며 하루 푹 쉬었다가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며칠 전부터 왼쪽 어금니가 계속 아파왔기 때문에 치과를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치통처럼 남들에게 하소연하기 어려운 고통도 없을 것이다. 멀쩡해 보여도 멀쩡한 게 아니다. 내가 태어나서 만난 가장 참기힘든 이 치통! 앓아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최고의 고통으로 찾아왔다. 하지만 발목의 통증이나 치통같은 육체적인 고통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들은 사색의 시간을 저해할 방해물이 되질 못했다. 그 고된 하루를 견뎌내며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와 자극제 역할 정도였을 뿐, 인생이 정말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나의 화두를 가릴 수는 없었다. 하루 일과 중에 산길을 걸으면서, 불신, 무관심, 불의, 허위, 분노, 시기, 질투, 미움, 반목, 대립, 가식, 우리의 아름답고 짧은 청춘을 추악하게 하는 불결한 부스럼들을 생각했다. 어차피 태어난 인생, 어차피 살아야 할 인생인데 왜 그것들은 내 주위를 어슬렁거리는가. 청결이라는 이름 아래 불태워져 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나온 산줄기를 돌아보는 그 마음처럼 나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가. 내 자신을 사랑하고, 내 삶을 사랑하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사랑하고 있는가. 걸어온 산줄기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시선, 그 눈빛처럼, , 그 사랑의 달콤함에 머물고 싶다. 나는 사랑없이 바라보는 세상은 무의미하다는 걸 어럼풋이 알아가고 있었다. 나는 이 사랑을 발견하기 위해 이 순례의 고통을 감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호고개를 넘어서 경주 권역으로 진입했더니, 낙동정맥 주능선이 포크레인으로 온통 파헤쳐져 있었다. 황량하게 파괴된 산길을 따라가보니 어떤 산소 터에서 길이 멈췄다. 산소 터 잡으려고 무참히 자연을 파괴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 이런 개썅!! 죽은 사람 묫자리 하나 만들겠다고 벌이는 이 무식한 작태에 치가 떨려왔다. 경상도 사람들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영남알프스가 이렇게 파괴되어 가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장묘문화의 현실인가. 미래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자연유산들을 이렇게 무참히 부수고 파괴해도 되는 것일까. 안따까웠다. 가슴이 미어져 왔다. 부끄러움도 모르는 미개한 인간들 같으니라구!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인간들 같으니라구!! 씩씩거리며 허공에다가 온갖 쌍욕들을 퍼부었지만 쉽사리 화를 삭힐 수는 없었다.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백두대간 능선길에 뿌려달라고 유언장을 작성해 두어야겠다.

 

찬밥으로 아침식을 마치고 탠트문을 열어보니, 뭉게구름 몇 조각이 하늘에 흩어져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뭇가지들 사이로는 아직도 지지 않은 새벽별들이 보였다. 새벽부터 정말 유별난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새들도 풀벌레도 울음을 멈췄다. 도무지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침묵이다. 태초부터 있었던 침묵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 침묵이 모든 숲과 골짜기를 가득 채우고 있다. 간혹 들려오는 산새소리도 침묵의 깊이에 빨려 들어갔다. 밤새도록 일구어 태어난 이슬들도 떠날 채비를 하며 잎사귀에 달라붙어 있다. 뜨거운 태양이 승천시켜 줄 때까지 숨죽이며 여명빛에 아롱져 있었다. 수의동의 주능선 길을 걸으며 산책로로 잘 정비해 놓은 야외전시장의 넓은 잔디밭 곳곳에 설치된 예술조각품 전시물들을 지나쳐 왔다. 지금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열흘째 산길만 걸어오다보니 몹시 지쳐있는 상태였지만, 산길에는 봄에 피는 야생화가 지천이었다. 동의나물, 피나물, 현호색, 금낭화를 비롯해서 이름모를 야생화 군락들이 이곳저곳에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능선 주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진달래가 햇살 아래 분홍빛 향연을 먼저 펼쳐 보여주고 있었는데, 거센 비바람의 소행인 듯 주변 곳곳에 시들해져서 빛바랜 꽃잎 무덤들로 장관을 이루었다. 절정을 향해 달려가다가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산기슭에 떨어져 흙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미처 꽃피지 못하고 저물어버린 저 꽃잎들은 또 다시 대지의 품에 안겨 얼마나 많은 밤낮을 건너가야 하는 걸까. 꽃잎이 지면 어디로 갔다가 어디로 오는 것일까. 온몸 떨구고 미련없이 사라져가는 저 자연스러움은 윤회의 수레바퀴처럼 돌고 돌아 영원성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인 것일까? 지금 이 순간 저 꽃잎들의 화려한 낭비를 지켜보며, 아직 봉우리조차 열지 못하고 시름앓고 있는 내 마음을 바라본다. 봄은 왔는데 내 마음은 아직도 겨울, 히말라야 차디찬 계곡이다. 화려한 봄 날, 꽃은 피었는데 내 마음의 꽃봉오리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 이 거룩하고 신비로운 향연에 초대된 나, 하지만 나의 꽃봉오리가 열리는 날은 언제일까. 내 마음도 언젠가는 꽃을 피워낼 수 있을까. 내 마음의 꽃봉오리를 열어가기 위해 나는 이 길을 걸어온 것일까. 꽃을 바라보고 새소리를 들으면서 걷는 이 길. 따사로운 햇살과 선선한 바람을 등에 지고 걸으면서도 왜 나는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형형색색 군락을 이루어 산비탈에 널부러져 핀 이름모를 봄꽃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지만, 나의 관심은 오직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에 가있었다.

 

시루마기 생식마을이 있는 숙재고개에서 낮은 구릉지대를 통과해 나갔다. 만불산(萬佛山:278.5m)을 지나 미친 듯 걸었더니 어느덧 회색빛 땅거미가 어스레히 지고 있었다. 급히 서둘러 식수를 떠와야 했기에 계곡으로 내려갔지만, 부산물과 미생물이 가득 들어차 있는 낙엽 썩은 물만 고여 있었다. 하지만 이 물이 아니고서는 다른 물을 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이 물이라도 감사히 받아들여야 할 상황이었다. 이 물로 밥도 하고 찌개도 끓여서 저녁을 해먹어야 했다. 좀 당황스럽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심할 정도로 부산물이 많이 낀 물까지 먹게 되다니 참담하긴 했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 상황에 따라 길들여지고 익숙해지게 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주어진 환경에 맞춰 살아가야 하는 게 인간이다. 불가피한 상황에 처한 인간으로서 물의 소중함을 새삼 곱씹으며 코펠에 물을 담아 밥을 지어 먹었다. 밥을 먹고 나니 삭신이 다 쑤셔온다. 오늘은 순례기간 중 가장 많이 걸어온 날이었다.

경주시 경계면을 지나 영천시 고경면에 있는 천수사 마을에 도착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어제 무리하게 운행탓에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쑤셔왔다. 그래도 무리하게 걸어서 온 결과 12일동안 대략 180km1차구간 순례를 잘 마쳤다. 49일간의 일정을 임의대로 5차구간으로 나누었는데, 그 중 한 구간을 소화해 낸 것이다. 그래도 내일은 휴식일이기 때문에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오른쪽 발목이 많이 호전되었지만, 치통 때문에 고통스러운 상황은 여전했다.

천수사 밑 마을에 있는 황수장여관에 짐을 풀었다. 주인아주머니는 퀘퀘한 생선 비린내가 진동하는 창성식당도 겸해서 운영하고 있었다. 인심은 좋아보였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순례 취지를 설명하면서, 돈이 부족하다며 만원만 받아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내 사정에 대한 진심이 통했던 것일까, 주인아주머니는 흔쾌히 승낙해 주었고 창성식당 주방 안쪽 통로로 들어가는 뒷방을 안내해 주었다. 황수장여관은 2층이었으나, 나의 만원짜리 방은 1층 구석진 방이었다. 그래도 하룻밤 편안히 묵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아주머니의 경상도 사투리 말투는 드셌지만, 따뜻한 배려심과 구수함이 전해져 왔다.

여장을 풀며 방으로 들어서다가 벽에 걸린 거울속의 내 몰골과 마주쳤을 때, 순간 당황하며 소스라치게 놀라버렸다. 예전에 보았던 내가 아니었다. 검붉게 탄 얼굴과 기름기에 뭉쳐져서 헝클어진 머릿결들이 마치 노숙자와 흡사했다. 주인아주머니에게는 얼마나 측은해 보였을까. 이목구비 뚜렷한 창창해 보이는 젊은이가 거지행세를 하는 모습으로 비춰졌을 것이 분명했다. 십여일간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산에서만 있었기 때문에, 온몸에서 땀에 쩌든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사워실에서 손바닥만한 때수건으로 온몸을 벅벅 밀었더니 거짓말 좀 보태서 한 바가지의 때가 밀려 나왔다. 샤워를 마치고 새 단장을 하고나니, 아주머니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총각! 밥 무운나?”

아니요하고 짧게 대답했다.

 

젊은 거지 한 놈 측은히 여기시고 받아주신 아주머니는 따뜻한 밥상까지 차려 놓고 있었다. 식당 테이블에 앉으란다. 윤기가 흐르는 찰밥이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나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외치고, 바로 달려들어 허겁지겁 밥 한 그릇을 다 비워 버렸다. 얼마만에 먹어보는 집밥이었던가. 된장찌개와 6가지 종류의 밑반찬까지도 모두 다 긁어 먹었더니, 아주머니는 안쓰럽다는 듯 물끄러미 처다보고만 계셨다. 얼마나 불쌍해 보였는지 아주머니는 다시 밥 한상을 차려오셨다. 나는 부끄러움도 모르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먹어치웠다. 이런 기회가 다신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밥상을 받아놓고서도 옆자리에 손님이 먹다가 남긴 닭볶음탕에 눈독을 들이다가 손님들이 계산하고 나간 사이, 나는 잠시 눈치를 살피다가 뼈다귀에 붙어 있는 살들을 순식간에 발라 먹었다. 돈이 없어서 사먹을 수 없었기에, 먹다 남은 음식이라도 나에겐 감지덕지였다. 닭고기 살을 맛볼 수 있다는 건 큰 기회이자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고보니 나는 점심도 굶어가며 오늘 하루 종일 걸어왔다. 너무 배가 고픈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서 내 이성의 영역 밖이었다.

 

어디서 왔능교?”

 

서울에서요

 

무야로 예까지 왔는데?”

 

지금까지 12일간 부산에서부터 이어진 산길로만 걸어 왔어요

 

식사를 마치고 빨래도 했다. 아주머니는 세탁기를 사용하란다. 나는 입고 있는 팬티와 반바지, 런닝만 빼고 모든 의류들을 빨았다. 탈수도 깔끔하게 해서 보일러 방에 널어두었더니 바싹하고 뽀송뽀송하게 마를 수 있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을 보답하기 위해 식당 테이블을 정리하고, 바닥 청소도 하면서 창성식당에서 저녁 장사가 끝날 때까지 도와주었다. 내가 받은 보시(布施)를 온몸으로 되갚기 위해 열심히 도왔다. 나는 손놀림이 좋았고, 분위기 파악이 빠른 사람이었기에 호감을 사기 위해 분주히 노력했다. 털털하면서도 깔끔해 보이는 아주머니는 호탕한 성격이었다. 이런 성격은 뒤끝도 없지만, 앞뒤 계산도 하지 않는다. ()도 많아서 사람들을 좋아하고 너무 잘 믿어주는 경향도 있다. 나는 단번에 아주머니가 맘에 들었고, 어떻게 하든 관심을 끌기 위해 애썼다. 성실해 보이는 내 모습이 맘에 들었던 것일까? 입가에 미소를 보이며 흐뭇해 하는 아주머니가 파장후에 테이블에 소주를 올려놓고 나를 부르셨다. 아주머니가 차려주는 술상에 가 앉으면서, 끓고 있던 감자탕이 맛있게 보여서 공기밥도 한 그릇 먹어도 되냐고 물으면서, 승락도 기다리지 않고 공기밥을 가져와 아주머니 앞에 앉았다. 내 행동거지와 얼굴표정들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띄고 있던 아주머니가 말문을 열었다.

 

니 이름이 머꼬?”

 

성정이라고 해요.”

 

성정이?”

 

 

이름 참 발음하기 어렵네. 여자 이름같다 하고마. 어째쓰까. 쯔쯔... 그래 니는 지금 몇살인교?”

 

스물세살입니다

 

스물세살???? 아이쿠!! 우야노. 우리 아 나이다 아이가.. 우짜쓰꼬...지금 군대가 있다 안카나. 딱 내 아들 나이데이. 쯔쯔쯔.... 근데 니 몰골이 왜 그야덴긴데? 좀 깔끔하게 다녀야제.”

 

, 그래요? 하하하 그렇군요. 제가 아들같아 보였나요?”

 

그래. 맞다카이. 그래, 맞다 아이가. 니가 내 아들이다. 내 아들같데이.”

 

그런데 아저씨는 어디계세요? 안계시나요?”

 

아저씨? 우리 남편? 우리 남편은 오래전에 죽어삐릿따, 그러니까 보자.... 벌써.... 벌써 5년 됐다 아이가. 제 명에 못죽었제. 간암으로 고생 으윽수르 했제. 근케 마 내 술 좀 고만하라카고 몬마시게 케도 말 지지리도 안들었다 아이가.”

 

, 그래서 혼자 운영하고 계시는 거군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 많이 보고 싶겠어요.”

 

아문, 억수로 보고싶다 아이가. 울 아들은 대구에서 대학교 2학년 마치고 올해 군대갔제. 마이 보고싶다.”

 

아주머니는 소주잔을 들이키며 아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들 생각에 빠져 있어선지 잔주름 깊게 패인 만면에 희색 가득 기쁨이 들어차 보였다. 잠시 침묵이 흐르면서 형광등에 비친 눈물 한 방울이 아주머니의 붉어진 빰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는데, 그 눈물은 입가의 실미소를 타고 입안으로 들어갔다. 그 때 아주머니는 눈물을 손으로 훔치자마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남편 여위고 버텨왔던 지난 세월을 회상하고 있는 것일까. 아들 생각에 눈물이 흘러내린 것일까. 슬픈 노랫가사 내용을 서글피 불러 제끼고 있었다. 남편과 사별하고 외동아들마저 군대에 있었으니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래도 오늘 나를 만나서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머니의 구슬진 노래 한 곡조가 끝나고, 우리의 술잔은 여러차례 부딪쳤다.

 

성정이? 성장이라켔나? 니 왜케 애볐노? 빼빼하니 너무 말랐다 아이가. 마이 묵고 살 좀 찌라카이. 그리고 뭔 고생을 이케 하능교? 왜 이렇게 고생하는데?”

 

나는 왜 낙동정맥 따라 백두대간 종주길 770km를 걷게 되었는지 설명해 드렸다. 어쩌다보니 술기운이 올라오는 바람에 히말라야 만년설에 묻혀있는 친구 환영이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리고 덧붙여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도 말했다.

 

아고메야 불쌍한 것. 우짜슬까! 인생 별거없대이. 그냥 살면된다 아이가. 끝까지 살아남아서 보기좋게 살아야제.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인거고, 살 사람은 살아야제. 니 단디 맴 머끄래이. 인생 금방 가삔다. 한번 지나간 청춘은 돌아오지 않는기라 아이가. 한번뿐인 인생은 소중한기라. 확 치아뿌라마! 머스마가 그라믄 몬슨다. 니 아주 멋진 사람이다 안칸나. 단디 맴 머끄래이. 성정아! 부탁한대이

 

야단치듯 들리는 경상도 사투리가 사랑노래처럼 들려왔을 때, 내 몸과 마음은 무너지고 있었다. 어주머니는 나에게 계속 술을 권했지만, 오랜만에 마시는 술의 취기가 빠르게 올라왔기에, 서둘러 정리하고 방으로 들어가 곯아 떨어졌다. 잠든 기억도 없이 인사불성(人事不省)인 상태로 뻗어 버렸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 아침부터 서둘렀다. 오늘은 영천시내에 나가야 했다. 2차구간에 필요한 식료품과 행동식을 보강해야 했고, 치과에 들려 왼쪽 어금니를 뽑아내든지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했다. 그러나 나는 영천시내에 도착해서 2차구간에 필요한 식료품들만 사들고 되돌아와야만 했다. 국가에서 지정한 선거일이었기 때문에 모든 병원이 문을 닫았다. 치과도 쉬는 날이었다. 결국 치과치료는 포기하고 약국가서 치통약만 구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할 일은 중화요리집에 가서 짜장면 곱베기를 먹는 일정을 잡았다. 부산에서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먹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생각했는데, 그 중에서 1순위가 짜장면이었다. 순례기간 중에 걸으면서 먹고 싶은 음식들을 떠올릴 때 짜장면이 가장 많이 생각났었다. 날마다 짜장면 생각을 떠 올리며 순례하다보니 짜장면이 너무 먹고 싶었다. 그 욕망을 누르고 잘 버텨왔기 때문에 이젠 보상을 해주어야 할 시간이었다. 짜장면을 먹기 위해 휴식일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렸었다. 아마 알라딘 램프에서 요정이 나타나 소원을 물어본다면 짜장면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소원이란 의외로 가끔은 현실속에서도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상식 밖의 것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작 짜장면이 나오면 십분 이내로 뱃속에 집어넣고 문밖을 나서는 내 뒷모습이 참 아이러니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짜장면 소원성취의 기쁨과 함께 느긋한 오후의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 그렇게 흐뭇한 마음으로 천수사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짜장면 한 그릇의 기쁨에 내 모든 세포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행복에 젖어 있었다. 버스정거장 벤취에 앉아 고개를 들고 넋나간 듯 하늘을 바라보았더니, 뭉게구름들은 입맞춤을 하듯 살며시 포개어지면서 하나가 되어 흘러갔다. 파란 하늘가에 떠있는 구름 조각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는 것도 참 재미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 위에서 펼쳐지는 구름들이 서로 포개어지면서 연출하는 사랑놀이가 게임처럼 흥미진진했다. 변화무쌍한 구름들이 바람결에 이동하며 살포시 하나되는 모습은 황홀한 사랑놀이 같았다. 그 사랑을 주의깊게 관찰하다보면 내 마음도 하늘 위 구름들과 뛰노는듯한 착각에 빠져 들기도 했다. 박진감 넘치는 하늘 풍경에 몰입하다보니,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 모든 풍경이 낯설어 보였다. 버스타고 자리에 앉아 돌아오는 동안에도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뭉게구름이 떠가는 파란 하늘에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 나는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왔다. 더 이상 이전의 나로 되돌아 갈 수 없다. 젊다는 건, 깨어있는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란 존재가 무엇인지 모든 것을 걸고 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이 근본적인 질문을 내려놓을 수 없다. 무기력과 나태함에 밀려 더 이상 물러서지 않으리다. 계획대로 끝까지 완주해서 성공적인 마무리를 하겠다는 나의 확고한 의지는, 또 다른 삶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번 백두대간 순례를 계기로 나는 거듭날 것이다.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였음에도,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주변 눈치만 살피면서 살아왔던가. 나는 이번 순례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해 나갈 것이다. 그래! 다시 걷자. 살아지는데까지 살아보자. 세상아! 세상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내가 어떻게 사느냐는 내 의식상태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내 의식상태에 책임지지 않는다면 나는 내 삶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