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실화다큐에세이

3부 - 1장 (베레모아저씨와 유혈목이)

by 당당 2021. 12. 1.

[3: 길을 찾는 젊음에게]

 

1. 베레모아저씨와 유혈목이

 

8시에 출발하여 경주시 현곡면 남사리와 영천시 고경면을 가르는 마치재고갯마루까지 왔다. 2차 구간의 시작을 알리는 발걸음이다. 이곳부터 어림산(510m)까지 이어지는 주능선길을 이어가야 한다. 산길에 희미한 안개가 깃들어져 있어서 주변 경관이 보이질 않는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가야할 길을 살펴가는 작업에는 긴장감이 흐른다. 스스로 지도정치를 하며 길찾기에 나서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다. 잠시라도 넋놓고 걷다가는 주능선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생기기 때문에 항상 가야할 길을 살피며 걸어야 한다. 인생길도 이와 같지 않을까? 나는 어쩌면 산에서 인생의 이치를 깨달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림산(510m)정상에서 빨간색 조끼를 입은 아저씨 한 분을 만났는데, 베레모를 눌러쓴 대머리 아저씨였다. 궁근 베레모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대머리임을 알 수 있었다. 좀 궁색하고 외로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이마에 주름살 하나 없이 고운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젊은이, 이리와요. 같이 식사합시다.”

 

마침 바위 둔덕에 도시락을 펼쳐놓고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나 보다. 내가 불쌍해 보였던 것일까? 도시락은 한 개밖에 준비해오지 않은 것 같은데 막무가내로 함께 먹자 한다. 처음 만나는 나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음식을 배풀며 관심을 보여준다. 아저씨는 사용하던 나무젓가락을 반도막내서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염치불구하고 나무젓가락을 받아들고 허겁지겁 달려들었다. 산에 다니면서 터득한 것이 있다면, ‘기회 있을 때 먹어둔다. 허기지기 전에 먹는다. 먹기싫어도 먹는다라는 몇 가지 철칙이다. 특히 이번처럼 장기산행인 경우에는 무조건 닥치는대로 뱃속에 채워 넣고 그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허기가 느껴지면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 때는 이미 늦는다. 허기지기전에 미리미리 먹어두어야 하루종일 체력 안배를 하며 걸을 수 있는 것이다.

너무 재빠르게 먹는 바람에 정작 도시락 주인은 쳐다만 보고 있었다. 능청스럽게도 허겁지겁 먹는 와중에도 왜 안먹느냐고 물었더니 배부르단다. 그러더니 배낭에서 사과 하나를 꺼내서 먹는다. 내가 도시락을 먹는 동안 아저씨는 여러차례 베레모를 만지작거리며 사과를 씹고 있었다. 베레모를 쓰다듬는 버릇이 있는 것 같았다. 베레모를 고쳐쓸 때마다 이마를 쓰다듬어 올리니까 대머리가 살짝살짝 드러나기도 했다. 아저씨는 은은한 미소를 띄우며 내가 먹는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고 계셨다.

 

젊은이는 어디서 왔는가?”

서울이요. 부산에서부터 낙동정맥 산줄기만 타고 왔습니다. 이 산길만 걸어온지 벌써 13일차입니다.”

, 그렇군. 휼륭한 생각을 가진 젊은이군 그래. 밥은 잘 먹고 다니나?”

 

나는 그럭저럭 먹고 다닌다고 대답하고서는 도시락을 모두 비웠다. 아저씨는 등산용조끼 주머니에서 초코파이와 사탕 육포 등을 꺼내 주면서 넣어두라고 한다. 나는 손사레를 치면서 괜찮다며 사양했지만, 두 번째에는 사양하지 않고 넙죽 받아챙겼다. 도시락까지 다 뺏어먹었는데 행동식까지 보충하게 되다니, 냉큼 받아 챙기는 내 낯짝도 참 두꺼워졌다. 베레모 아저씨는 곧 하산하기에 행동식이 필요없다고 하셨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내가 미안해할 상황은 아니라고 말해주며 안심시켜 주었다. 그 말에 마음이 놓이면서 주는 자의 기쁨을 가로막아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은혜를 언젠가는 세상에 돌려주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산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언제라도 떳떳하게 감사히 받아 챙겨야 했다. 난 거지가 아니다. 받은 만큼 세상에 돌려주겠다는 양심만은 염연히 살아있다.

아저씨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왜 혼자 왔느냐 물었더니, 혼자 산단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 싶어서 더 이상 개인 가정사는 묻지 않았지만, 갑자기 이 베레모 아저씨가 어떤 분인지 궁금해졌다.

 

아저씨는 뭐하는 분이세요?”

? 나는 말이지. 그냥... 그냥 사람이지... 허허허... 젊은 양반, 뭐가 그렇게 궁금한가?”

 

베레모 아저씨는 자신의 얘기를 차분히 풀어놓기 시작했다. 원하지 않는 명예퇴직과 회사에 대한 배신감 같은 것을 토로하셨다. 분개심이 올라오고 울적할 때 기분 전환을 위해 자주 이 곳에 온다고 하셨다. 그런데 몇 개월 이렇게 산에 다니면서 회사에 대한 감정이 잦아들고, 인생무상(人生無常)의 감정으로 변하더라는 것이었다. 좀 우울한 이야기였다.

 

자네는 무슨 고민하면서 사는지 말해보게.”

저도 요즘 산다는 게 뭔지, 죽는다는 게 뭔지, 삶과 죽음이란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자주 해요. 왜 사람들은 어차피 죽을 목숨들인데, 마치 영생을 살 것처럼 사는지 모르겠어요.”

, 그렇구나. 좋은 의문이군. 그래 어떤가? 걸으면서 생각이 좀 정리되어가고 있는가?”

잘 모르겠어요. 뭐가 뭔지. 여하튼 이번 순례중에 곰곰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구먼. 나도 이제 오십이 되어서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자네는 좀 더 멋진 인생을 살고 있구먼. 자네는 나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네. 보다 더 훌륭한 인생을 살게 될 젊은이를 만나서 반갑구만. 나는 그동안 성공을 위해 열심히 달려왔는데, 돌아보니 남은 것이 없지 않은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그렇게 달려왔는지, 돌아보니 다 허깨비였지. 정작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고 바쁘게만 살아 왔던거야. 참고 견디고 인내하면서 단 한번도 나를 위해 살아본 적이 없었던 거지. 오직 회사밖에 몰랐고 승진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었는데,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아둥바둥 애쓰며 살았는데, 그렇게 삼십년 지나고 보니까 그게 말이야... 그게... 아무것도 아니더라고. 아무것도. 네버(never), 전혀.... 정작 나를 위해 살아온 건 없었지. 나를 위해 투자한 시간은 없었더라구, 결코.... 이게 뭔가 싶더란 말이야. 자네는 지금 젊으니까 내 말 명심하고, 제대로 인생을 좀 멋지게 살아봐. 나도 벌써 이렇게 오십대가 될 줄은 몰랐어. 마음은 지금 이십대인데 몸이 이젠 말을 듣질 않네 그려.”

 

나는 아저씨의 꾸밈없이 말씀하시는 진솔한 고백에 매료되었다. 어디에서 누군가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았는데, 한참 어린 나에게 이런 고백을 하실 줄이야 정말 몰랐다. 아저씨에게는 이런 속마음을 나눌 사람이 주변에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보는 내게 이런 고백들을 늘어놓는 걸 보면, 이 아저씨도 나처럼 많이 외롭고 쓸쓸한 게 분명했다. 나도 이 아저씨처럼 제대로 인생을 살고 싶어서 이렇게 바둥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저씨는 나의 고민을 뮌가 알고 있는 듯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젊은 친구! 이런 말 들어보았는가? 모든 것이 다 헛되고 헛되도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이지. 인생이란 한 순간의 꿈과 같은 거라네. 이 몸을 벗게 되면 우리들은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해야 해.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는거지. 이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일이야. 부자에게도 가난한 자에게도 애누리가 없어. 어떻게 살았든 무엇을 했든 죽음이란 필연적인 운명이야. 그 죽음의 실체를 이해하고 나면, 삶과 죽음이 결국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될 테지만 말이야. 나도 한때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서 갈팡질팡 살았지. 열심히는 살았는데 무엇을 위해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네.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 오랜 세월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거지. 사회적인 지위를 위해, 가정을 위해, 돈을 쫒아서 분주히도 달려왔는데 이렇게 중년이 되고나서 보니 별거 아니더군. 뭘 그렇게 먹고 살기위해 허둥거리면서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되더라구.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그때는 잘 몰랐지.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와서야 이제서 후회하곤 한다네. 30년 다니던 회사를 명예퇴직하고 나서 알게 되었지.. 그렇게 중요하다고 여기면서 목숨걸고 열심히 살았던 것들이, 죽네 사네 했던 것들이, 너죽고 나죽자 했던 것들이, 돌아보니 다 부질없는 짓들이었는데. 느즈막히 깨닫고 나서 한동안 힘들었지. 그래서 요즘에는 혼자 산에 다니면서 마음을 보살피고 있다네. 지금이 나에겐 최고로 멋진 인생의 시간이거든. 이제는 더 이상 허깨비에 속아 살지는 않을 것 같아.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까.”

 

먼 능선을 바라보던 아저씨는 뭔가 깊은 상념에 젖어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베레모 아저씨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침묵의 시간이 길어졌지만, 나는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베레모 아저씨는 지그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는가 싶더니 관자놀이가 떨리기 시작했다.

 

자네! 젊을 때 일수록 몸 관리 잘해야 해. 젊다고 막 다루면 안돼. 우리는 모두 영적인 존재거든. 요즘에 난 명상센터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데, 내가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그런 깨달음이 오더군. 우리 몸이란 단지 잠시 머물다가는 집과 같은 것이지. 우리는 모두 빛이야. 생명의 빛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봐야겠지. 영원성으로 가는 통로야. 영혼을 담는 아름다운 궁전이라는 것이지.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궁전에서 영원히 살수는 없어. 누에상태에 있다가 고치를 벗어던지는 에벌레 알지? 그 에벌레가 고치를 벗어 던지고 나비로 변하면서 다른 차원으로 날아가는 거야. 이 육신이란 것도 고치처럼 그 기간 동안 잘 가꾸고 있다가 흙에게 돌려주면 되는 거지. 우리 몸에 거하던 생명은 나비처럼 또 다른 길을 나서야 하는 거니깐.”

 

아저씨는 영원한 생명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사상일까? 우리는 무한을 바라보는 영적인 존재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몸 자체가 의 전부가 아니라고 역설하고 있었다. 몸이 사라진다고 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저씨는 내 종교관에 커다란 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바위 언덕에 걸터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구름위에 올라앉아 어디론가 떠나가려는 신선의 모습 같았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좀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눈을 감은채 깨어나지 않고 있는 아저씨를 남겨두고 돌아서야만 했다. 사실 난 아저씨의 말들이 처음 듣는 얘기여서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말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배레모 아저씨가 한 말들을 분명히 기억해 두기로 했다.

 

열흘치 식량이 들어있기 때문에 다시 배낭 무게는 25kg을 훌쩍 넘겼다. 그래도 2차구간 초반이라서 견딜만 했다. 오전부터 종아리까지 쌓여있는 낙엽을 물살 가르듯 헤쳐가며 열심히 걸었다. 쉑쉑쉑쉑무릅 깊이까지 쌓인 곳도 많아서 낙엽바다를 수영하는 기분이었다. 낙엽밟는 소리에 귀를 씻으며 걷는다는 건 언제나 상쾌하고 기분좋은 일이라서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았다. 쉑쉑쉑쉑낙엽 밟는 소리가 리듬을 타고 경쾌하게 귓가에 맴돌 때, 한낮의 태양이 작열하는 산길에서 뱀을 만났다. 숲 그늘이 드리워진 주능선길 위에 꼬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푸른 빛깔에 빨간 띠를 두르고 있는 것이 유혈목이였다. 유혈목이는 독사다. 구렁이나 누룩뱀은 독이 없지만 유혈목이는 달랐다. 물리면 끝이었다. 한 걸음 다가가자 유혈목이가 갑자기 머리를 꼿꼿이 들어 올리며 태세전환을 했다. 유혈목이는 머리를 들고 서서 꼬리를 흔들며 내 갈 길을 막아섰다. 나는 그저 그 옆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오해가 생긴 모양이었다. 유혈목이 입장에서는 자기를 공격하러 온 줄 알았나보다. 머리를 치켜든 상태로 나를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뱀은 사람이 볼 수 없는 적외선까지 볼 수 있지만 시력은 흑백만 감지한다. 흑백으로 먹잇감의 움직임을 구분하기 때문에 나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했다. 나의 움직임에 따라 바로 달려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순간 무척 긴장했다.

 

넌 뭐냐? 지금 뭐하자는 거냐고? 한번 해보자는 거냐? 좀 쉬려는데 왜 방해하는 거지?”

 

! 아니야! 오해야! 나는 단지 능선길을 가기만 하면 된다고. 그냥 지나가기만 할게. 조금만 비켜줘. 우리 서로 오해는 하지 말자.”

 

어험! 비키라니? 난 너가 인간인지 짐승인지 관심 없다구. 오직 사물의 움직임만 보기 때문이지. 그런데 넌 계속 가까이 오고 있었잖아! 한 판 싸움을 걸어온 건 너라구! 난 널 믿을 수 없어!”

 

서로를 경계하면서 한참동안 눈싸움이 벌어졌다. 유혈목이는 내가 다가가면 바로 공격해 들어올 것 같았다. 혹시라도 내가 등을 돌리면 물어버릴 기세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서서 꼼짝 않고 있었다. 눈을 깜빡이면 지는 눈싸움 게임처럼, 서로 마주하고 보면서 일촉즉발 경계태세였다. 움직이는 자가 지는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유혈목이는 이 게임의 규칙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아니야. 난 평화주의자라고. 절대 너를 잡아먹을 생각은 없어. 나는 땅꾼이 아니야.”

 

그건 너 생각이고. 나는 내 생각이 있거든. 나는 오직 눈에 보이는 사물의 행동으로 아주 세밀하고 정교한 부분까지 판단하니까. 내게는 그게 가장 정확해. 넌 내게 다가오고 있었어!”

 

오케이. 좋아, 그럼 규칙을 정하자. 내가 천천히 한발자국 물러나 줄게. 날 물지는 마. 너도 내 갈 길을 비켜줘. 내가 지나갈 수 있게 말이야. 부탁해.”

 

나는 뱀의 속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선 한걸음 두걸음 조심해서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우리는 서로의 눈빛을 마주보고 서 있었다. 한참동안 실랑이를 하던 유혈목이는 뒷걸음질 치며 한걸음씩 물러나는 내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산기슭 숲으로 미끄러지듯 도망쳤다. 자기보다 더 독한 놈을 만난 모양이다. ‘! 이겼다. 유혈목이야! 고마워. 양보해줘서. 재미난 눈싸움 게임이었어.’ 어린아이마냥 기분이 좋아져서 갑자기 장난끼가 발동한 나는 뱀의 뒤를 쫓아갔다. 썩은 나무막대기 하나를 급하게 주어들고 사라져간 수풀 사이를 헤치며 휘저었다. 결국 바위틈 사이로 사라지는 뱀이 목격되었지만, 그 이상 뱀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기세등등하던 뱀이 줄행랑을 치고 도망가는 꼴을 보면서 나는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바위틈 사이에 썩은 막대기를 끼워 넣고 그 자리를 떠났다. 승리의 증표를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자칫하면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식상한 하루 하루마다 찾아오는 사건사고들을 새로운 놀이로 만들어야만 온몸에 짜릿한 쾌감과 엔돌핀이 올라왔다. 나에겐 그렇게 좀 가끔 엉뚱한 면이 있었다. 하루종일 걷기만 해야하는 밋밋한 산행중에도 가끔 이렇게 엉뚱한 방식으로 창조해내는 놀이에 강렬한 희열감을 느꼈다. 한참을 희희낙락거리다가 제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니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혼자 킬킬대고 웃었다. 미쳤다. 그래, 미치지 않고 이런 행동들을 아무 생각없이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사정도 모르는 사람들이 보았다면 정말 미친놈 소리 들었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하루에 한번조차 웃어보기 힘든데 뱀을 만나서 오랜만에 혼자서 껄껄대며 웃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