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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다큐에세이

2부 - 2장 (사슴과의 대화)

by 당당 2021. 11. 24.

2. 사슴과 외톨이

 

굿판은 새벽녘까지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가피한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는 나의 주문은 신기하게도 깊은 잠 속으로 안내해 주었다. 까마귀 소리에 눈을 떴을 때 날이 밝아 있었지만, 탠트문을 열고 하늘을 보니 날씨가 흐렸다. 흐린 하늘을 넋놓고 유심히 바라보니 먹구름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바꾸어가며 틈틈이 햇살을 내비치기도 했다. 밤새도록 굿을 하고 남겨진 고모당 주변 음식물에 눈독을 들인 것일까? 까마귀가 무리지어 배회하며, 시원하게 펼쳐진 창공아래 넉넉하고 절개있는 폼으로 까옥거렸다. 내 탠트 주변으로도 가까이 와서 염탐하는 것을 보니, 혹시 내 식량도 탐내는 것은 아닐까. 까마귀의 배회를 무심히 바라보며 아침으로 라면을 끓였다. 짐이 꽉차서 파일자켓은 배낭해드 위에 끈으로 묶어 맸다. 평상시에도 암벽 빙벽등반을 하면서 메고 다니던 배낭무게가 30kg 정도였기에 거뜬히 메고 산행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첫날부터 힘에 부쳤다. 장기산행에 대한 내 체력안배를 간과했던 것 같다. 이렇게 긴 장기산행은 처음 시도하는 것이었기에 계획표대로 모든 짐을 다 챙겨 넣었더니 사달이 났다. 40여일 동안 30kg정도 되는 이 무거운 짐을 하루종일 메고 운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식량보급을 할 때까지 무거운 식료품부터 최대한 빨리 먹어치워야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형편이었다.

아침과 저녁은 등산용 버너로 음식을 조리하여 끓여먹을 수 있지만, 점심은 화식이 아닌 행동식으로 해야 했다. 배낭짐을 모두 풀어서 다시 펼쳐내야 하는 번거로운 문제도 있었지만, 점심시간을 짧게 함으로써 산행시간을 최대한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시간이 너무 지체될 수 있었다. 오늘 배정된 점심은 초코파이와 연양갱, 비스켓과 건과일, 그리고 사탕 몇 개가 전부였다.

정오가 되어서야 계명봉(596m)에 올랐을 만큼 게으름을 피워가며 천천히 산행을 했다. 행복했다. 산비탈에 널브러져 있는 억새밭, 상수리나무, 잣나무 지역을 지나오면서 산에 들어온 강력한 이유를 느꼈다. 지경고개를 향해 대나무밭을 헤치며 부산컨트리클럽 왼쪽 능선을 타고 299봉에 다다르니 왼쪽으로 떨어져 내리는 주능선 길에 사슴농장이 보였다. 태어나서 처음 본지라 가까이 다가가서 사슴구경 좀 하고 가고 싶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눈치없이 뛰놀던 사슴들이 인기척에 갑자기 멈춰섰다. 이방인의 불시방문에 깜짝 놀랐는지 30여마리의 사슴들이 일제히 휘둥그레 쳐다본다. 엄마사슴, 아빠사슴, 아기사슴, 농장안에 있던 모든 사슴들이 나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 무리중에 대장 노릇을 하는 제일 크고 튼튼해 보이는 큰사슴 한 마리가 내 곁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나무 철조망까지 가까이와서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며,

 

넌 누구냐?”

 

안녕, 나는 성정이라고 해. 사람으로 태어나서 부여받은 이름이지. 놀랐니? 미안해. 본의는 아니었어. 난 그냥 지나갈거야. 걱정하지마.”

 

마음속으로 큰사슴에게 화답했다. 그리고 사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행동했다. 사슴들도 이 깊은 산중에서 오랜만에 외지인을 만나서 놀랐던 모양이다.

 

뭣하러 왔어? 이곳엔 왜 온거냐고?”

 

엄마아빠 사슴들까지 다가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다. 무엇하러 이곳에 왔느냐는 시선으로 다그치고 있었다.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아기사슴들은 처음엔 겁에 질려 있었지만, 대면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호기심 가득한 눈빛들로 흘러넘치고 있었다.

 

, 나는 이 능선길을 따라 강원도 속초까지 걸어서 갈거야. 50일 정도 걸려. 아주 아주 긴 산행이란다. 너희들처럼 나도 산에서만 생활할거야. 난 너희의 친구란다.”

 

나무말뚝에 둘러쳐진 울타리 철선을 사이에 두고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를 통해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그런 나의 진심이 사슴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랬지만, 본능처럼 새끼들을 보호하려는 큰사슴들은 일제히 나를 공격할 것 같은 분위기로 돌변해 버렸다. 빨리 꺼져버리라고 윽박지르고 있었다.

 

알았어. 알았어. 빨리 사라져 줄께. 하지만 난 너희들을 헤치지 않아. 난 착한 인간부류란다. 잘지내나 간다.”

 

나는 위압감이 느껴져서 줄행랑치듯이 자리를 빨리 피해줘야 했다. 혼자서 지레짐작 겁을 먹고 살금살금 길을 비껴갔다. 사슴 무리로부터도 이방인 취급을 당하고 돌아서는 기분에 좀 착잡해졌다. 그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보니, 스스로 주눅이 들어 위축되어 버렸다. 자격지심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슴들은 내가 얼마나 외로운 사람인지 한번 더 각인시켜 주었다. 그랬다. 나는 언제나 외톨이였다. 쓸쓸하고 외로웠고, 내 마음을 나눌 친구도 없었다. 고독만이 나의 친구였다. 참을 수 없는 이 존재의 가벼움, 누군가에게 주목받고 싶었고, 존중받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벌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남들보다 부족하다는 열등감이나 콤플랙스에 사로잡혀 주눅만 들어갔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지도 않았지만, 또한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지도 않았다.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 침범하지 않도록 했다. 어쩌면 내가 세상 사람들을 멀리하고 있는지도, 철저히 혼자이기를 원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 고민의 깊이에 공감하고 함께할 친구나 스승들은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알고 싶었고, 직접 찾아나서야 했다. 뭔가 정리가 필요했다.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이 삶의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어 가야할지 알고 싶었다. 어떻게 태어난 인생인데, 얼마나 소중한 인생인데, 이 끊임없는 방황은 언제 멈출 수 있을까!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

 

문득 헤르만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어린 생명이 이제 알에서 깨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찾아 첫 발을 내딛었다. 지상에 태어난 인간은 누구나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 나도 예외일 수 없다. 알에서 나오는 그 거룩한 행진, 나는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했다. 산길을 걸어오면서 온전한 삶으로 향한 강한 집착이 생겨났다. 이왕 태어난 인생, 더 잘 살고 싶은 욕구가 강렬하게 솟구쳐 올라왔다. 드디어 눅눅한 마음에 갇혀있던 생명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음을 느꼈다. 이번 순례는 결코 포기하거나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저녁 6시가 넘어서야 437봉에 겨우 도착했다. 송전탑 한 쪽 기둥 억새군락 한 가운데 자리를 틀고 앉아 바닥에 탠트를 쳤다. 오늘도 10시간동안 25kg의 배낭을 메고 잘 마무리했다는 안도감에 기쁨이 넘쳐 흘렀다. 쒹 억새끼리 나부끼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실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들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보면 신비스런 전율감마저 올라온다. 억새밭을 휘젖고 내달려오며 쉭쉭거리는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중이었다. 억새밭 위로 걸쳐 있는 하늘도 살랑이며 춤을 추었다. 가만히 앉아 귀기울여 듣다보면, 영락없이 바람의 지휘아래 억새밭이 연주하는 천상의 음악회였다.

날이 어두워져서 다시 양초를 켰다. 산속은 도시보다 더 밤이 빨리 찾아온다. 깊은 산속에서는 칠흙같은 밤을 맞이할 수 있다. 어둠이 짙어지자 텐트문 밖으로 보이는 별무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깊은 산속이라서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유난히도 많은 별무리들, 깊은 산중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은 마음이 위로받는 시간이었다. 수많은 별들과 주변 풍경들이 나를 둘러싸고 춤을 추며, 내가 가야 할 길에 축복의 메시지를 띄우는 것만 같았다. 하루종일 고단한 산행을 마치고 저녁이 되면 천근만근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상태였다가도, 야영터를 잡고 지친 몸을 누이면 밤 시간은 그 하루의 피로와 노고를 보상해 주었다. 산속에서 홀로 지켜가는 이 밤, 숲을 울리는 바람처럼, 우두커니 온 몸으로 맞이하는 나무들처럼, 나는 밤의 정적속에 함께 있다. 오늘따라 유난히 바람은 불지 않고 이상하리만치 새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호랑지빠귀나 소쩍새, 검은등 뻐국새들이 이 밤을 적시곤 했는데, 시간이 사라져 버린 듯 이 알 수 없는 침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홀로 선 촛불의 진한 향이 어둠을 밝힐 뿐, 촛불의 흔들림도 없었다.

촛불을 끄고 침낭 안으로 들어가 누우니, 사물을 분간할 수 없어서 눈뜨나 감으나 마찬가지였다. 망막의 수정체가 완전히 닫혀서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장님 신세였다. 칠흙같은 어둠에 갇힌 채 꼼짝달싹 못하게 묶여서 새벽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렇게 무거운 침묵의 강을 건너다보면 이내 깊은 잠에 빠져 들어야 했는데, 여명 빛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암흑의 심연속에 묻혀 있어야만 했다. 한편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드라마틱한 측면도 있다. 잠든 내 몸속으로 무언가 흘러 들어와 다음 날을 살아갈 힘을 불어 넣어주고 간다. 밤을 건너오는 사이에 누군가가 내 몸 안의 모든 세포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날마다 한밤중에 이루어지는 내 몸의 변화, 삼라만상과의 교신속에 우주의 정기를 받아 다시 떠오르는 해처럼 100% 충전되는 초인적인 힘을 얻곤했다. .

 

아침에 일어나마자 어제 남은 밥에 즉석곰탕을 끓여 말아먹었다. 인간이란 먹기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위해 먹는 것 같았다. 오늘 하루 힘든 산행을 위해 뱃속에 집어넣는 양식일 뿐, 영락없는 짬밥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얻어먹을 힘을 주신 것만으로도 천지신명의 은혜다.

식사를 마치고 154KV 송전탑으로 올라가서 지형을 살펴봐야 했다. 오늘 가야할 길의 방향을 잡기위해서다. 실제의 산세를 잘 살피지 않으면 길을 잃어버릴 수 있다. 주능선에는 나뭇가지에 달린 표식기가 드문드문 있긴 했지만, 간혹 없는 구간도 있기 때문에 방향감각을 잃지 말아야 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 것인지 미리 살펴두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simulation)을 돌려봐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그렇게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가야할 지점에 대한 방향감각을 몸속 깊이 익혀두어야 했다. 실제 지형과 지도는 동서남북이 일치하지 않는다. 이것은 지도 제작상 인위적으로 정한 북극점(도북), 나침반이 가리키는 북극점(자북)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6도의 편차각이 발생한다. 그래서 지도정치(地圖正置)를 해야 한다. 지도를 정치한다는 것은 지도상의 북쪽과 지형상 북쪽을 정확하게 일치시켜 나침반에 맞추어 보는 것이다. 준비해 온 25,000 : 1 지도와 나침반을 가지고 위험을 무릅쓰고 송전탑이나 높은 나무에 올라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숲에 가려져서 가야할 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독도를 하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주위의 가장 큰 나무를 타고 올라가 전망하면서 지형지세를 관찰해야 한다. 방심하다가는 길을 잃기 쉽상이다. 하루 일과중에 가장 신경쓰는 일이 백두대간 마루금 주능선 찾기다. 딴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마음모아 매 걸음마다 집중해야 한다.

4월초 꽃샘추위가 시작되어선지 싸늘한 날씨였다. 원효산(元曉山, 922m)부터 천성산(千聖山, 812m)으로 넘어가는 능선 부근에는 억새군락 천지였다. 꺽일 듯 꺽이지 않고 바람에 저항하는 억새군락지, 온 몸으로 흔들리며 햇살을 받고 있는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황금빛 물결을 출렁이며 칼날처럼 반사되는 억새잎들의 율동, 척박한 땅에 뿌리내린 운명의 몸짓이었다. 바람이 불어오면 스르륵 스르륵 꼿꼿하게 서서 바싹 마른 잎새를 파르르 떨며 황금빛 칼날을 휘두르면서, 산정(山頂)을 항해 달려가며 피바람의 노래를 부르는 저 결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천성산에 도착했을 때에는 잿빛을 몰고오는 바람의 변덕으로 하늘이 온통 흐려져만 갔다. 야영하기에 적당한 곳이 나타나면 여장을 풀어야 했는데, 오늘은 울산과 양산이 굽어 보이는 등산로에 탠트를 설치하기로 했다. 전망이 최고로 좋은 곳이었다. 동녘바다와 영남알프스가 사방으로 드러나 보였다. 울산과 양산의 도심 야경까지 바라볼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아무도 없는 이 깊은 산속에서 나홀로 낭만의 밤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였다. 오늘 하루도 내 인생 최고의 야영이 될 것 같다. 이 대자연의 신비함에 넋을 놓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아무도 찾지 않는 이 깊은 산속에서 홀로 탠트치고 하룻밤을 보내는 체험, 나에게는 억만금을 준다해도 바꿀수 없는 귀한 시간이었다. 땀에 젖은 옷을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물샤워를 했다. 어느 누구도 오지 않고 아무도 보지 않기 때문에 눈치 볼 필요가 없었다. 비누나 샴푸없이 물로만 샤워를 했는데도 한없는 상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8시간 동안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어왔던 내 몸 곳곳을 어루만지면서 나의 하루는 그렇게 보상을 받았다. 사방이 휑트인 산정(山頂)에서 나체 상태로 몸의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끼다보면 육체적인 고통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육신의 고통이 아니었다. 영혼의 눈물을 받아줄 잔이 없다는 것, 그것이었다. 밤의 적막은 더 이상 아픔이 아니었고, 더 이상 고독이 되어주질 못했다.

홀로 적막공산(寂寞空山)에서 양초를 켰다. 산 아래 도시의 불빛들이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울산과 양산의 밤하늘을 훤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날이 밝아올 때까지 안식해야 밤, 반 평도 안되는 1인용 삼각탠트 안에서 양반자세로 허리를 펴고 자영씨가 건네준 돌멩이 (om)을 꺼냈다.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 돌을 매만지며 눈을 감았다. 몇 분이 지난 뒤 눈을 뜨고 돌을 바라보니, 자영씨가 말한대로 어둠에서도 돌무늬가 더욱 빛나 보이는 듯 했다. 불가사의한 이 작은 돌맹이는 정말 영험이 깃들어 있는 돌맹이일까. 영험이 깃든 돌맹이라는 말을 정말 믿어야 할까. ‘이라고 불리는 이 돌맹이의 정체는 무엇일까. 홀로 산상을 지켜가는 밤, ‘소리를 마음속으로 읇조려 본다. 정말 영의 세계는 존재하는 걸까. 불멸의 영혼이란 있는 것일까. 만약 영혼이 있다면 나는 아직 내 영혼을 돌본 기억이 없다. 그래도 영의 세계를 인정해야 하는 걸까. 내 안에 이미 깃들어 있고 온 우주만물에 가득한 그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는 어린왕자의 말이 떠올랐고 이내 잠이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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