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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다큐에세이

2부 - 3장 (들쥐와의 혼숙)

by 당당 2021. 11. 24.

3. 들쥐와의 혼숙

 

오뚜기에서 출시한 인스턴트 크림스프 한 봉지를 끓여먹고 아침 8시부터 출발했는데, 정족산(鼎足山, 700m) 부근에서 길을 잃었다. 지도정치와 독도법를 잘못하는 바람에 3시간 가량을 엉뚱한 길에서 허비하고 말았다. 주능을 완전히 놓쳐버린 첫 번째 실수였기에 내 자신의 분에 못이겨 맥이 빠져 버렸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내가 지도를 잘못 보았던 것이다. 지도를 자세히 살펴 보았어야 했는데 딴 생각하며 걷느라 신중치 못했다. 길을 잃었다는 자괴감과 허탈감에 허둥지둥 서둘러 걷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렇게 서두르다보니 솔밭산공원묘지쪽으로 급히 내려오다가 발목을 겹질렸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바위 둔턱에서 내려갈 때 점프하면서 오른발을 헛디뎠는데 발목이 돌아가 버렸다. 순간 머릿속에서 별이 반짝이며 기절하는 줄 알았다. ‘소리 낼 틈도 없이 고꾸라지면서, 배낭무게가 더해지면서 오른발목이 완전히 꺽여버린 것이다. 순간적인 고통으로 산기슭 숲 주위를 뒹굴면서 쓰러져버렸다. 뼈가 부러졌는지 고통이 심해서 한동안 꼼짝할 수가 없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심한 통증에 참을 수 없어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길을 잃었다는 조바심에 서둘러 내려오다가 당한 사고였다. 가야할 2천리 길을 어떻게 가야 하나, 망연자실 주저앉고 말았다. 아무도 없었기에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없어서 근처 병원으로 이송할 수도 없었고, 혼자서 이 사태를 해결해야 했다. 눈물나도록 고통스러웠지만, 통증이 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며 참고 견딜 수 밖에 없었다. 병원으로 간다는 의미는, 나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나는 이 종주계획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어떤 일이 발생해도 사수하고 싶었다. 궁여지책으로 주변에 보이는 나뭇가지 지팡이 두 개를 만들어 짚으며 걸어보지만 심한 통증은 마찬가지였다. 허탈한 심정으로 주능선을 찾아 엉금엉금 기어가듯 걸어서 내려갔다. 마을이나 인가(人家)가 나올 때까지 이를 악물고 걸었다. 너무 서둘러 운행을 하다가 다친 내 자신을 꾸짖으며 또 꾸짖었다. 병원에 가서 깁스를 해야 할 상황인 것 같았다. 솔밭산공원묘지 매점에 도착하여 다친 부위를 자세히 훑어보니 이미 많이 부어올라 있었다. 오른발목 복숭아뼈(복사뼈) 부근을 눌러보았더니 다행히도 뼈가 부러진 것 같진 않았다. 깁스할 최악의 상황은 모면한 것 같다. 하지만 이 발목으로 어떻게 강원도까지 걸어갈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다. 구비해온 진통제를 먹으며 참고 견디는 수 밖에 없었다. 통점(痛點)을 쾌점(快點)으로 바꿔가는 연습을 하며 정신력으로 버텨야 했다. 발목의 통증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희열속에서 내딛는 발걸음이어야만 했다.

발목 통증을 참아내며 걸어서 영축산(1,082m) 삼남목장 갈림길 근처에 탠트를 쳤다. 어느덧 보름달이 산넘어로 고개를 들고 있었다. 해가 떠오르는 광경처럼 산등성이 위로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일출(日出)이 웅장하고 화려하다면 월출(月出)은 비장하고 엄숙하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의 고난과 슬픔을 위로하듯 감싸 안아주는 보름달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길찾기에 있지 않을까. 저마다의 인생길을 찾아가는데에 자신의 에너지를 몰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에너지가 흩어져 있다면 가야할 길을 놓치거나, 중도에 멈춰서야 할 수도 있고, 다른 길로 가기도 하지 않는가. 그런데 정작 나는 내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도,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길을 어떻게 찾아가야 할 것인가. 그래, 찾아가기! 그것은 사람이 태어나서 누구나 겪어야 할 인생의 과정이 아닐까. 제 스스로 판단해가며 한 발자국씩 내디뎌야 할 우리들의 몫, 바로 우리 인생이란 길 찾아가기에 있다.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얼마나 열심히 찾아가고 있는 걸까. 오늘은 가야 할 길을 놓치고 다른 길에서 3시간을 허비했다. 가야할 주능선 길을 가지 못하고 헤매다가 엉뚱한 곳에서 힘과 열정을 소진했던 것이다. 그 잃어버린 것들은 아무도 보상할 수 없고 되돌릴 수도 없다. 오늘의 잘못은 나에게 큰 교훈이 되었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가야 할 주능선길을 놓쳐버리는 것처럼, 나는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가 정신 바짝 차리고 찾아나서야 한다. 내 젊은 날의 이 방황은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이 방황은 무죄다. 괴테가 쓴 소설 파우스트에서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착한 인간은 설령 어두운 충동에 휩쓸릴지라도 올바른 길을 잊지 않는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이 말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있다. 이 길을 떠나오게 된 이유도 내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가기 위한 첫 발걸음이지 않은가.

 

무거운 짐을 메고 5일내내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니 피로가 극에 달해 있었다. 전체 일정의 10분의 1가량 진행한 상태인데, 남은 날들이 까마득하다. 어제 다친 오른발목은 바이러스에 걸린 나무의 옹이처럼 퉁퉁 부었다. 그래도 뼈가 부러지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신발이 들어가지 않았다. 등산화 끈을 완전히 풀어 제친 후에야 겨우 끼워 넣을 수 있었는데, 혈액순환이 안되는지 더 큰 통증이 엄습해 왔다. 고민 끝에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뜨거운 물에 수건을 적셔 3시간 동안 발목 찜질을 했다. 따뜻해져 오는 탠트 안에 누워서 축 늘어져 있다보니, 한적한 겨울 양지바른 뜨락에 앉아 햇볕받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진통제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지 푹 쉬고나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무엇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을 하나 싶다가도, 이 순례를 통해 내 인생의 어떤 실마리라도 풀어봐야겠다는 강렬한 욕구가 올라와 위안이 되었다.

통증이 깊어지면 무감각해지는 것일까? 아픈 다리를 이끌고 영축산(1,082m) 정상에 올라서니 오른 발목의 감각이 없다. 용케도 천미터 이상의 고지대 산군들이 모여있는 영남알프스에 들어선 것이다. 영남 알프스는 울산, 밀양, 양산, 청도, 경주의 접경지에 형성된 가지산을 중심으로 해발 1m 이상의 산들이 수려한 산세와 풍광을 폼내고 있는 곳이다. 유럽의 알프스와 견줄만 하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낙동정맥인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 능동산, 가지산, 상운산을 중심으로 많은 산군들이 집약된 산악지대다. 취서산(영축산) 정상 전망대 벤취에 앉아 걸어왔던 길들을 돌아본다. 정족산, 천성산, 원효산 그리고 멀리 부산의 금정산 백양산도 한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왔던 길들을 뒤돌아 바라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고지대에 올라 하염없이 산풍경을 바라보고 있다보면 천상의 파티에 초대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지난 6일동안 부산에서부터 지도상으로 약 70km를 걸어왔으니, 실제 지형상의 거리는 지도상의 직선거리와는 다르기 때문에 하루 평균 17km를 걸어온 셈이다. 지난 6일간 실제 지형상으로는 100km를 운행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동안 하루 평균 17km 정도의 산길을 걸어왔다는 계산이 나온다.

 

영남알프스 신불산(1,159m) 억새평원을 지나서 간월재에 도착하니 조립식 판넬건물로 만든 다섯평 남짓한 창고가 있었다. 조난자가 하룻밤 묵고 가기위해 딱 좋은 긴급대피소였다. 하지만 이 창고같은 대피소는 운영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버려진 상태였다. 문이 잠겨져 있지도 않아서 쉽게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 하룻밤은 여기서 묵기로 결정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실내에선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온갖 쓰레기더미와 낙엽더미들, 곰팡내가 뒤섞여서 난장판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황송하게 생각하고 하룻밤을 이곳에서 묵어야만 했다. 건물 밖은 너무 춥기도 했지만, 저녁이 되면서 거센 바람이 미칠 듯이 불어서 탠트를 집어삼킬 기세였다. 이런 날씨에는 탠트를 설치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페가가 된 이 대피소는 탠트를 설치하지 않고도 매트리스와 침낭만 깔면 잘 수 있는 곳이지 않은가. 쓰레기와 낙엽더미들을 한 귀퉁이로 밀어내고 대충 청소를 마쳤다. 그리고 먼지가 자욱한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앉아보니 어딘가에서 심한 암모니아 지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등산객들이 이 곳에 들어와서 소변을 본 것이 분명했다. 난감했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살아남아야 했기에, 내 후각을 마비시켜서라도 이곳 공간에 적응해야 했다. 이 건물을 만난 것만도 행운이었다.

입장이 정리되자 밤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여야 했다. 그저께부터 시작된 꽃샘추위에 몸이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우선 쌀밥에 인스턴트 즉석 육개장을 끓여 국밥처럼 말아먹었다. 해는 이미 천황산 너머로 사라져 버렸고, 밤이 깊어갈수록 보름달은 더 높이 치솟아 올라 영남알프스 산군들을 비추고 있었다. 깨진 유리창문 밖으로 보름달에 비친 억새들이 하염없이 손을 흔드는 광경위로, 떠오르는 별들이 반짝이며 나를 찾아왔다.

식사를 마치고 천지조화 자연현상에 감탄하며 황홀경에 빠져 있었는데, 어딘선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깜짝 놀라서 주변을 살펴보았는데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이 깊은 밤에 누군가가 이 곳까지 온 것일까. 어디에서 들려오는 소리일까 귀기울여 유심히 살펴 보았다. 이 시간에 누군가가 날 부르는 소리였을까. 그럴리는 없을 것이다. 이 깊은 산중에 사람일리는 없었다. 한참을 예의주시하며 숨을 죽이고 있던 찰나, 모퉁이 한 구석에서 찍찍거리는 소리가 명확히 들려왔다. 자세히 보니 들쥐였다. 들쥐들은 내 눈치를 살피며 모퉁이 구멍사이로 들락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실내에 쌓인 잡다한 쓰러기더미들은 그들의 놀이터로 딱 안성맞춤이었다. 아하! 손님이 와서 반갑다는 환영의 소리였구나! 하지만 원치 않는 불청객의 방문으로 쥐떼들이 내 눈치를 보면서 가까이 오려고 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좀 양보하시지? 내가 좀 불쌍한 사람이야. 나는 이 곳 아니면 잘 곳이 없어. 하룻밤만 쉬고 갈게. 좀 나가줄래?” 나는 쥐들에게 공손히 양보를 청했다.

 

어허무슨 소리! 여긴 우리 관리권역이거든. 우리는 밤마다 이곳에 놀러와. 먹을 것이 없어도 이곳에 와서 논다고. 가끔 사람들이 음식물 쓰레기들을 놓고 가면 잔치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말이야.”

 

그럼 양보를 못하겠다는 건가? 한 주먹감 밖에 안되는 건 알지? 너희들이 내 힘을 능가할 것 같애?” 나는 쥐들에게 겁박하면서 1차 경고를 하며 엄포를 놓았다.

 

어허이것봐라선전포고인가? 폭력을 쓰겠다고? 적반하장(賊反荷杖)일세. 한번 해보자는 건가? 우리 영역을 침범해 놓고 우리를 쫒아내겠다고? 미국애들이 아메리카대륙에서 원주민들을 몰아냈던 역사가 생각나는 군. 이게 어디서 점령군 행세야!”

 

내가 지금 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좋게 이야기하자는 거거든! 어차피 무력을 행사하는 건 좋지 않으니까 양보 좀 해달라는 거야.” 나는 신사적으로 좋게 말하는 것 같았지만, 거의 반강제적으로 몰아내려고 윽박지르고 있었다.

 

그건 니 생각이고. 우리도 생각이 다 있거든. 좋아! 우리가 니 안잡아 먹을테니 너도 우리들 신경쓰지 말고 여기서 지내고 싶다면 지내도록 해. 널 잡아먹지는 않을께. 오늘 하루만 봐준다. 알았지?”

 

들쥐들과의 협상은 중단되었다. 아무리 평화적으로 대화를 하려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오른발목 통증이 심해져서 그냥 침낭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가만히 누워서 조용히 있으면 영락없이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쥐새끼 소리가 들릴때마다 짧은 단말마의 비명소리를 내거나, ‘에햄!’ 하면서 헛기침 소리를 냈다. 그러면 들쥐들은 화들짝 놀라 부리나케 구멍속으로 도망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조금만 지나면 다시 들어와 찍찍거린다. ‘이놈들!’ 하고 더 크게 소리치면 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들쥐들과의 실랑이가 시작됐다. 들쥐들은 인기척을 내면 귀신처럼 사라졌다가도 다시 나타났다. 한동안 그들과의 사투는 주고받으며 치고 빠지기를 반복됐다.

들쥐들은 바람을 피해서 들어온 것일까. 나처럼 꽃샘추위를 타는 것일까. 들쥐들이 이곳에 먼저 와서 살고 있는 것도 모르고 하룻밤 묵어가려는 나, 참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 아마 내가 잠이 들면 쥐떼들이 습격해 올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몸이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에 움직일 수도 없었다. 고민 끝에 들쥐의 출입처를 틀어막기로 했다. 우선 쥐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올만한 구멍들을 찾아 모두 틀어 막았다. 쥐들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나보다 더 집요하고 끈질겼다. 하루쯤 이곳에 출입을 못한다고 설마 쥐떼들이 굶어죽진 않을 것이다. 혹시 몰라서 쌀봉지와 식료품들이 있는 내 식량 꾸러미들은 비닐봉투로 몇 겹으로 두껍게 감쌌다. 내 식량 보따리를 갉아먹지 못하도록 한 조치였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아마 식료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들쥐들이 침입할만한 구멍들을 모두 막고나서 다시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살쾡이가 무서운 기세로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 듯 휑휑 거리며 미쳐버린 바람의 횅포가 시작됐다.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아 불안불안해서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거친 바람소리에 잠이 들 수 없는 상황에 공포감마져 엄습해 왔다. 조립식 판넬건물이 날아갈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쓰러져 무너질 것 같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마음 편히 잠들 수 없는 이 여정은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이런 곳에 묵으면서까지 이 순례를 지속해야 할 것인가 의문감이 밀려왔다.

사건은 잠 든 사이에 벌어졌다. 밤새도록 쥐새끼들이 진저리나도록 부스럭거리더니 새벽녘엔 아예 내 머리맡까지 진출해서 배낭에 있던 식량을 갉아 먹었다. 이중 삼중으로 감싸두었는데도 소용없었다. 필사적이었다. 한 녀석이 내 머리맡 귓가에 대고 찍찍거리는 바람에, 그 소리를 듣고 잠결에 갑자기 소름이 돋아 벌떡 일어나 버렸다. 자기전에 막아놓았던 쥐구멍을 다시 뚫고 들어온 쥐새끼들! 잠든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부스럭 거리는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몸은 피곤한데 그냥 놓아둘 수도 없었다. 들쥐들을 모두 쫒아내고 나서는 다시 모든 구멍들을 좀 더 단단히 막아 버렸다.

이제는 좀 잠잠해지겠지 안심하며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쌀주머니에 여러 곳 구멍이 뚫려있었고, 라면봉투도 갉아먹힌 자국이 보였다. 잠깐 잠든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미쳐 몰랐다. 비닐봉투 정도는 쉽게 갉아서 뚫어버리는 놈들이었다. 내 소중한 쌀과 라면을 갉아먹다니, 얼마나 많은 쥐들이 내가 잠든 사이에 왔다 갔는지는 알 수 없다. 가지고 있던 쌀의 삼분지 일은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참 많이들 쳐 먹었다. 쥐새끼들! 하지만 이것은 솔직히 말하면 내가 들쥐들과의 동침을 선택하면서 벌어진 불가피한 일이다. 돌아보면 한편으론 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이곳의 주인은 원래 그들이고 나는 손님이지 않은가. 숙박료를 지불한 것으로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래도 이런 삥은 처음 뜯겨본다. 씨펄! 독한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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