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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 6장 (노인봉산장과 동대산초소) 6. 노인봉산장과 동대산초소 추워서 뒤척이며 새우잠을 잤는데, 여러번 잠에서 깨어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어깨와 팔다리가 결리고 치통까지 덮치고 있었다. 바로 누우면 땅속의 냉기가 매트리스를 뚫고 올라왔다. 추워서 잠들 수 없었기에 허리를 구부리고 다리를 모아 옆으로 누워 다시 잠을 청해야만 했다. 그렇게 몇 번이고 뒤척이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일어나 앉아 버너불을 켰다. 아직 밖은 어둠이 짙게 베어있지만 어둠의 자취가 사라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여명 빛이 동녘하늘을 순식간에 물들이게 될 것이다. 추위로 잠못든 날에는 차라리 정좌하고 앉아 허리를 곧추세운 후 밤을 지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날이 밝아오길 차분히 기다리며 시공간을 넘어 우주와 하나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밤과.. 2022. 1. 23.
4부 - 5장 (대관령아저씨) 5. 대관령아가씨 고루포기산(1,238m)에서 능경봉과 대관령으로 가는 산길을 걷는 동안 꼭 꿈속 길을 걷는 줄 알았다. 산길 주변으로 핀 진달래밭 사이로 왜현호색과 나리꽃, 동의나물, 피나물, 제비꽃, 산괴불주머니, 그리고 이름모를 야생화 군락들이 흐트러지게 피어 있었다. 산기슭 전체에 야생화가 펼쳐진 봄의 향연이었다. 홀로 지켜봐서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걸까. 군락을 이루어 흩날리는 꽃밭 사이를 거닐며 맛보는 이 기쁨, 이 아름다운 야생화 군락지를 함께 걸으며 마음나눌 누군가가 없음이 아쉬웠다. 사람들 손길에 닿지 않는 곳에서 형형색색 흩뿌려진 야생화가 나를 열렬히 마중해 주고 있었다. 그래, 우리 갈라서지 말자. 이름따위 몰라도 너희들은 하늘아래 피어난 지상 최고의 꽃들이다. 어쩌다가 이름을 얻게되.. 2022. 1. 23.
4부 - 4장 (어버이날 담배사건) 4. 어버이날 담배사건 아픈 다리를 잘 돌보지 못하면 평생후유증을 안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암울한 예감이 밀려왔다. 마침 아침부터 탠트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고막을 울려왔기에 침낭위에 누워서 다시 성경책을 꺼내들었다. 지쳐있는 내게 비는 언제나 쉬어갈 명분과 게으름을 피울 핑계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다리는 절뚝거렸지만, 지금까지 40일이나 걸어왔고 며칠 남지 않았기에 포기할 수도 없었다. 오늘도 두 나무지팡이에 의지한 채 느즈막히 출발해서 중간 중간 쉴 때마다 다리 마사지를 해주면서 대화실산을 넘어 들미재와 석두봉까지 평퍼짐하고 정감어린 산길을 걸었다. 조금만 힘을 내자며 스스로를 토닥여주며 하루종일 지도상 12km를 걸어 화란봉지나 닭목재까지 왔다. 닭목재에도 산신각이 세워져 있었는데, 처마 밑은.. 2022. 1. 23.
4부 - 3장 (기도원 할머니) 3. 삽당령 기도원 할머니 너무 추웠기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어 새벽 4시에 버너불을 켜고 몸을 녹였다. 깊은 밤중에도 탠트 밖 주변이 환했다. 무심코 탠트문을 열어보았더니 보름달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위로 보름달이 주변을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밤새도록 나의 곁에 머물러 있었을 보름달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있었다. 보름달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애틋한 감정이 몰려온다. 저무는 보름달을 지켜보며 차를 끓여 마셨다. 여명이 드리워지면서 어둠이 물러가기 시작했고 산굽이마다 산안개가 자욱하게 들어차 운해의 장관이 연출되고 있었다. 망망대해에 몇 개의 봉우리들만이 섬처럼 떠있을 뿐, 골깊은 계곡과 계곡 사이에 안개구름들이 온통 들어차서 백두대간을 휘감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2022. 1. 21.
4부 - 2장 (봉선생님의 행복론) 2. 봉선생님의 행복론 환영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그곳에 올랐건 안올랐건 그것이 뭐가 중요해! 한시에 올랐건 두시에 올랐건 그것이 도대체 뭐가 중요하냔 말이야, 사람이 죽었는데.” 환영이가 살아나서 마루바닥을 치며 통곡하고 있었다. “도대체 중요한 것이 뭐냔 말이야.” 환영이가 통곡을 하며 울고 있었고, 나는 가슴을 졸이며 지켜만 보고 있었다. 식은 땀이 흐르고 온 몸이 얼어 버려서 꼼짝할 수 없었다. 가슴이 벌렁거리기 시작하며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그렇게 잠에서 깼다. 꿈이었다. 환영이가 꿈에 나타나 뭔가 억울해 하고 있었다. ‘뭐가 중요하냐’는 말을 되풀이했다. 꿈속에서 했던 그의 말이 생생히 기억났다. 환영이는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최근에는 단 한번도 꿈에 나타나지 않았던 환영.. 2022. 1. 21.
4부 - 1장 (대천덕 신부님) [4부 : 내 안의 빛을 밝히며] 1. 예수원 대천덕 신부님 오늘부터 백두대간 주능선길이 시작된다. 이른 아침, 여관방에서 지인이와 헤어진 후, 통리역에서 들려오는 기적소리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제 하루 휴식일을 보냈더니 피로가 많이 풀렸다. 지인이와 대화하면서 마음도 많이 편안해졌다. 열흘치 식량꾸러미를 보급받아 배낭은 다시 20kg이 넘는 무게가 되었지만, 하루의 휴식일을 보내고나니 컨디션은 다시 최상이 되었다. 어제까지 걸어온 길은 낙동정맥 주능선 길이었다. 부산에서 지금까지 낙동정맥따라 한달동안 실제 산행거리 500km는 걸어온 것이다. 이제 4,5차 구간은 백두대간 본능선길이다. 오늘 그 시발점인, 낙동강과 한강, 그리고 동해바다 오수천으로 흐르는 삼수령(三水嶺)이 매봉산 근처에 있다.. 2022. 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