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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다큐에세이

4부 - 2장 (봉선생님의 행복론)

by 당당 2022. 1. 21.

2. 봉선생님의 행복론

 

환영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그곳에 올랐건 안올랐건 그것이 뭐가 중요해! 한시에 올랐건 두시에 올랐건 그것이 도대체 뭐가 중요하냔 말이야, 사람이 죽었는데.”

 

환영이가 살아나서 마루바닥을 치며 통곡하고 있었다.

 

도대체 중요한 것이 뭐냔 말이야.”

 

환영이가 통곡을 하며 울고 있었고, 나는 가슴을 졸이며 지켜만 보고 있었다. 식은 땀이 흐르고 온 몸이 얼어 버려서 꼼짝할 수 없었다. 가슴이 벌렁거리기 시작하며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그렇게 잠에서 깼다. 꿈이었다. 환영이가 꿈에 나타나 뭔가 억울해 하고 있었다. ‘뭐가 중요하냐는 말을 되풀이했다. 꿈속에서 했던 그의 말이 생생히 기억났다. 환영이는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최근에는 단 한번도 꿈에 나타나지 않았던 환영이가 무슨 일로 나타난 것일까.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면 무엇이 그렇게 중요했던 것일까. 도대체 중요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환영이는 그 질문을 잊지 말라고 꿈속에 나타났던 것일까.

나는 왜 고집스럽게 이 산행을 끝까지 하려는 걸까. 무슨 의미를 찾으려 이 길을 떠나왔는지 돌아본다. 부산에서 지금까지 기록해왔던 일체의 기록들이 무의미해 보인다. 찢고 싶은 욕망이 솟구친다. 하루에 몇 km를 걸었는지, 몇 시간을 운행하였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이렇게 일일이 기록해 왔던 것이, 그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아침에 눈을 뜨면 부지런히 움직여 출발할 때도 있었고 늦장을 부려 늦게 출발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행위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백두대간 순례 계획이 아니었어도 세상은 그대로인데 왜 이렇게 떠나와야만 했을까? 왜 이곳 백두대간을 홀로 걸어야만 했을까? 산은 항상 내 발길 닿는 곳에 있고, 언제나 내 가슴에 있는데 왜 이곳으로 떠나온 것일까?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데 또 다시 욕망의 산, 허영의 산을 찾아 떠나온 건 아닌 것일까?

 

밤새도록 등이 불편했다. 울퉁불퉁한 바닥의 돌부리가 잠결에도 등을 찔러서 뒤척거리며 잠을 잤다. 불편한 잠자리가 이젠 익숙해져 있어서 일어나자마자 스트레칭으로 엉킨 근육을 풀면서 고요한 아침을 맞이했다. 출발하면서부터 시작된 이슬비가 점점 굵어지더니 가랑비로 변하다가 이내 작달비가 되어 내린다. 빗소리가 요란하게 온 숲을 적시고 있다. 어느새 소나기로 변하더니 하염없이 쏟아붓고 있었다. 비를 피할 곳도 없었기에 아침부터 비를 맞으며 계속 걸었다. 온통 비에 젖어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비를 맞으며 쉬지 않고 10km를 더 걸어서 댓재까지 갔다. 댓재에 도착해 보니 두타산으로 가는 등산로 입구에 산신각이 있었기에 그 처마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산신각은 산신을 모시며 제사지내는 3평 남짓 작은 목조건물인데, 산악숭배나 마을신앙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산신당은 대체로 1365일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제사 때마다 음식을 바치며 절하고 기도하면서 마을에 풍운을 기원해 오는 곳이다. 초기 수렵생활부터 농경생활이 중심이었던 우리 조상들은 단군신화처럼 일종의 토테미즘(totemism) 신앙행위가 발달해 왔으나, 이렇게 깊은 산중에는 산신각을 세워 산신령들을 모시는 토속신앙이 번성했다. 아직까지도 이런 제사는 산골마을에서부터 뿌리깊게 이어져 오고 있다. 오는 날 이러한 산신각 처마 밑에 탠트를 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처마를 만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산신각 처마 밑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탠트를 치고 그 안으로 들어가 버너불에 옷을 짜서 말렸다. 소나기에 흠뻑 젖은 상태로 계속 순례를 이어갈 수는 없었다. 28번 아스팔트 국도에 부딪치는 거센 빗방울들이 전쟁터의 총성처럼 따갑게 고막을 때렸다. 소나기를 핑계삼아 오늘의 계획은 조기종료하기로 했다. 악천후(惡天候)에는 쉬어주어야 한다. 날은 흐렸지만, 밤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 옷을 말리며 무료한 시간을 달랜다. 소나기가 내리는 흐린 하늘, 새들도 비가 오는 날엔 어디론가 날아가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새들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안개가 서린 숲에 빗소리만 가득찼다.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문득 대천덕 신부님이 해주신 여러 말씀들이 떠올랐는데, 그 순간 나는 정말 막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하여 너무 무지했다. 라는 생각에 갇혀 나의 에고가 하느님을 변두리로 몰아냈던 삶은 아니었을까? 갑자기 내 안에서 회계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단 한번도 하나님의 존재를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내가, 단 한번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던 내가, 고난과 역경이 찾아온 시기에도 기도 한번 해보지 않았던 내가, 흔들리고 있었다. 무신론자였던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며 기도가 하고 싶어졌다. 내가 많이 괴롭고 힘들다고 기도하고 싶었다. 내가 많이 외롭고 쓸쓸하다고, 사랑받고 존중받고 싶다고, 호소하고 싶었다.

이제부터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살아야 한다는 바울로의 고백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대천덕 신부님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신부님이 나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핵심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몸(Body)의 주인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일 뿐만이 아니라, 주객이 전도(主客顚倒)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도구를 쓰시는 그 분(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섬겨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갑자기 울컥하는 감정이 솟구쳤다. 복받치는 눈물샘이 떠질 것만 같았다. 나는 내가 얼마나 외롭고 가련하다는 것을 왜 고백하지 못했던 것일까. 내가 얼마나 사랑받고 싶어하는지 왜 말 못하고 살아야 했던 것일까. 나의 진심이 무엇인지, 내가 정말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나는 단 한번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내 안에서 울고 있는 작은 아이를 외면하고 있었다. 이미 주변의 사랑으로 살려지고 있는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약한 내 모습을 감추기 위해 얼마나 냉정하게 살아왔는가.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했다는 열등감에 스스로를 얼마나 학대해 왔는가. 눈물은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빗소리에 묻혀 소리없는 눈물만 흐르고 있었다.

속았다. 에고의 장난에 놀아난 느낌이다. 내 생각이 곧, ‘인줄 알고 살아왔다. 대단한 착각이었다. 생각하는 내가 참나인줄 알고 살았다. 내 안의 뿌리깊은 탐욕스런 에고에 휘둘려왔다. 내 안의 거대한 욕망, 본능적인 욕구, 이기심과 적개심이 가득한 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다. 그럼으로써 참된 자신을 망각한 채, 그런 허튼 생각이 곧 인줄 알았다. 에고와 내 본연의 자신을 동일화 함으로써 빚어진 어리석은 일들이었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 왜 죄인처럼 살아 왔을까. 하지만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그것을 내 개인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해야겠다. 내가 한 일이 아니었다. 이젠 그 분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 귀의하고 싶다. 전심을 다해 간절히 기도해야겠다. 하지만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아직 잘 모른다. 마음만 간절할 뿐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서 5시에 일어나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묵상하던 중에 관광버스 한대가 멈추는 소리가 났다. 아직 어둠속인데 댓재 공원 주차장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어느 모임에서 무박산행으로 두타·청옥산행을 하러 온 것 같았다. 토요일 밤늦게 관광버스 타고 이곳 강원도 삼척까지 밤새도록 달려온 것이다.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니 30명은 족히 넘을 듯 싶었다. 두타·청옥산행은 댓재에서 출발하는 코스가 잘 알려져 있는데, 두타산과 청옥상을 넘어서 무릉계곡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그들도 두타산 청옥산 산행을 온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아마 무릉계곡으로 하산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타산으로 가는 초입로가 산신각 처마 옆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은 내 탠트 옆으로 지나가야 했다. 나는 본의 아니게 그들의 행렬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내 탠트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에게 인사를 한다. 이곳에서 잤느냐고 묻는 이도 있었고, ‘참 대단하다고 중얼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신기하다는 듯 다들 한마디씩 하고 지나갔다. 졸지에 동물원 원숭이가 되어 가십거리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 중에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왜 혼자 다니느냐고. 나는 그 앞에서 쓴웃음을 지어 보이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실 내가 왜 혼자 다니는지 나도 모르겠다. 나는 정말 혼자인가? 그것이 궁금하다. 젊은 사람이 참 대단하다고, 무섭지는 않느냐고, 쓸쓸하지는 않느냐고, 애인은 왜 없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나는 아무것도 묻지 말아달라고, 날 그냥 내버려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대꾸하지 않고 참았다.

내 앞을 지나가는 무리중에 아는 사람을 만났다. 어디선가 많이 본 분이었다. 낯이 익어서 서로 랜턴 불빛으로 자세히 살펴보니 아는 사람이었다. 예전에 산악회에서 여러번 함께 산에 다녔던 봉 선생님이라는 분이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성이 봉씨였기에 우리는 봉선생님이라고 불러드렸다. 대한민국 땅덩어리가 아무리 작다해도 이런 우연의 만남이 있을까. 산 좋아하는 사람은 산에서 만난다더니 참 신기했다. 이렇게 약속도 없이 만나다니 참으로 기쁘면서도 놀라웠다. 봉선생님은 중학교교장으로 정년퇴임 후 열성적으로 산에 다녔다. 칠순을 넘겼는데도 젊은 사람들 못지않은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나도 반가워서 인사를 드렸는데 봉선생님도 해드랜턴 불빛으로 나를 알아보셨다. 나는 원정대에서 돌아온 후 산악회를 탈퇴했기 때문에 봉선생님을 못만날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 재회를 하게 되어 너무 반가웠다. 봉선생님은 일행들과 두타산 정상으로 향하던 길이라서 오래 머물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성정군! 반갑네. 백두대간 단독종주 한다는 소식은 들었네. 여기서 이렇게 만나다니. 정말 반갑군. 나는 나이가 들어서 먼저 천천히 올라가고 있겠네. 짐 정리되면 따라 오시게. 두타산 정상에 먼저 가있겠네. 거기서 만나자구.”

 

짧은 만남이었지만, 봉선생님은 두타산 정상에서의 재회를 약속하며 일행들과 사라졌다. 여명빛이 세상을 물들이고 있었는데도 보름달은 서편 산마루턱에 걸터앉아 있었다. 나는 전지분유 가루를 뜨거운 물에 부어서 식빵과 함께 먹었다. 가볍게 조식을 하며 떠오르는 일출의 장관을 바라다 보았다. 일출의 황금빛 광선을 몸에 쪼이니, 움츠러 있었던 몸에 활력이 솟아났다. 한편에서는 해가 떠오르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달이 지고 있었다. 해와 달, 낮과 밤은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며 나타났다 사라졌다. 뜨는 해와 지는 달의 교차되는 광경이 사뭇 신비해 보였다. 뜨고 지고, 살고 죽고 하는 흥망성쇠의 이 모든 양과 음의 조화야말로 진리인 것인지도 모른다. 우주가 끊임없이 생성소멸하며 윤회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왜 그리 서둘렀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사람이 너무 그리웠었나 보다. 한시간 가량 앞서있는 그 일행들의 후미라도 따라잡기위해 쉬지 않고 올라갔다. 얼마나 열심히 걸었는지 속옷이 땀에 흠뻑 젖어들었다. 댓재에서 두타산까지 20kg의 배낭을 메고 두시간만에 주파했다. 오직 봉선생님을 만나야겠다는 일념으로 걸었다. 두타산 정상은 안개가 산을 덮은채 부슬비가 날리고 있었다. 그곳에는 30명의 무리중에서 뒤쳐진 세사람만 모여 있었다.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알게된 건, 이 단체는 서울에 있는 거인산악회이며 전국을 돌며 백두대간만 전문으로 산행하는 단체란다. 백두대간에 관심있는 수도권 사람들을 모아 한 달에 두 번씩 안내산행하는 트레킹전문 산악단체였다. 두타산 정상에서 봉선생님을 만날 수 없었기에 나는 다시 청옥산으로 향했다. 오른쪽 무릅의 통증을 느끼면서도 쉬지않고 걸었다. 청옥산 정상에 가면 분명히 봉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 그리웠던 나는 귀신에 흘린 듯 산길을 거의 뛰다시피 걸었다. 무릎의 통증이 심해져 왔지만, 우여곡절 끝에 청옥산 정상에 도착하니 다행이도 봉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일행들은 무릉계곡으로 하산한 후였다.

 

성정군! 어서오게나. 한참을 기다렸네. 우리 일행들은 밑에 내려가서 하산주를 마시며 기다리기로 했다네. 2시간여 시간이 있다네. 우리 식사같이 하면서 얘기 좀 나누게나. 괜찮겠지? 여기 넓은 바위에 앉게나.”

 

봉선생님은 배낭에서 유부초밥과 불고기를 꺼내놓으셨다. 우리는 봉선생님이 가져온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 나는 산에서 음식물을 나누어 먹을때가 가장 좋았다. 산에서 얻어먹는 기쁨은 하늘의 선물이었다. 산신령이 봉선생님을 통해 이루어주셨다. 봉선생님은 식사를 마치고 배낭안에 있는 보온병을 꺼내 준비해 온 따뜻한 원두커피를 따라 주셨다.

 

그래, 얘기는 들었네. 부산에서부터 지금까지 벌써 며칠째인가?”

 

나는 대략 37일 걸었다고 대답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래, 아직도 히말라야에서 있었던 일들이 생각나는가?”

 

이젠 많이 좋아졌어요. 제가 환영이 몫까지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뭐 그런 생각들을 가끔해요. 삶과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주 생각합니다.”

 

허허, 그렇군. 쉽지 않은 화두를 안고 있군. 그래서 좀 정리가 되었는가?”

 

나는 엷은 미소를 내보이며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지만 순례기간 중에 다짐한 것들, 나 자신을 사랑하기, 나에게 죄가 없다는 것, 내 안의 거짓된 나에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다짐들을 고백했다.

 

그래, 보기 좋군. 아주 멋진 다짐들이야. 뭐니뭐니해도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건 제일 중요하지. 누가 뭐래도 자기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건 아주 중요해.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거든. 자신을 조건없이 사랑하는 거야. 성정군이 아주 중요한 것을 깨달았어. 아주 보기 좋아. 이번 백두대간 순례가 성정군에겐 인생의 새로운 터닝포인트(turning point)가 될거야. 그리고 이젠 죄책감에서 벗어나서 자네안에 깃든 그 거룩하고 신성한 씨앗, 그 씨앗에 물을 주고 보살펴야 할걸세. 자네에겐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네. 무한한 가능성이 있어. , 그렇고 말고! 사람들은 모두가 다 마찬가지야. 스스로 자학하지 말게나. 잘 해왔어. 괜찮다네. 젊었을 때에는 가끔 실수도 하는거지. 다 지나가는 거니까 잘했든 못했든 붙잡으려고 하지 마시게. 누가 뭐래도 자넨 자네 아닌가. 자네가 아닌 무엇이 될 수는 없지 않겠어? 오직 자네 자신의 길을 가는 거지. 그만 기웃거리고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중요한거야.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주변에 휘둘리지 말고 열정이 시키는대로 사시게. 자네는 아주 훌륭한 젊은이라네. 자네가 다짐한 것들이 꼭 이루어지길 바라네.

 

봉선생님은 내가 소중하고 거룩한 사람임을 기억하라고 하셨다. 그 무수한 수식어들을 붙여가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다. 나는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나 성취할 필요가 없었고, 그 무엇이 되어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내 모습대로 살면 된다는 것이었다. 누구와 비교할 것 없이 내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면 된다는 거였다. 나는 으쓱해졌다. 대천덕 신부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신부님은 육신이란 헌누더기에 지나지 않다는 것, 육체의 죽음과 영적인 죽음도 있다는 것, 몸은 성전이라고 하셨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봉선생님에게 순례중에 만난 사람들로부터 들은 얘기를 내 얘기처럼 늘어놓았다.

 

그래, 맞아! 오고 싶어 온 것도 아니고, 가고 싶어 가는 것도 아니지. 인생이란 그런 것이야. 생각해 보게. 환영는 이 땅 위에 살려고 어디로부터 온 것이냐, 이 짤막한 생을 살다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지. 이렇게 한 길로 왔다가 또 다른 길로 가는 것이 인생인 거야. 울 것이 뭐가 있겠나? 이 생이 그러하면 저 생도 그러할텐데.”

 

봉선생님은 환영이와 내가 얼마나 막역한 관계인지 잘 알고 있었다.

 

태어남은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지. 태어난 모든 젊은이들은 백발의 노인을 향해 달려가고, 죽어가는 모든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그리워하며 기도한다네. 사기꾼의 내면에는 하나님의 씨앗이 깃들어 있고, 성직자의 내면에 거지가 들어서 있기도 하지. 모든 것이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면만을 보아서는 안된다네.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은 착각이야. 우리는 모두 영적인 존재들이지. 빛 자체라네. 그 빛은 사라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야. 그런데 사람들은 그 신비한 비밀을 까마득하게 잊고 살지. 환영이는 이미 자기 몫의 삶을 살다가 자기 길을 간 것이라네. 울 것이 뭐가 있겠나? 죽음이란 착각이야. 실체가 없는 거라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할 수 없는 개념이거든.”

 

순례내내 가슴에 품고 다녔던 화두가 터져나오는 것 같았다. 항상 궁금해 했던 내 안의 물음들에 대한 답이 펼쳐지고 있었다. 봉선생님은 지금 이순간 내가 꼭 들어야 할 말을 전해주고 있는, 하늘에서 내려온 메신저 같았다. 순레중에 항상 놓치지 않고 부여잡고 있었던 이 화두, 삶과 죽음에 대한 이 화두를 사무치도록 붙들고 있었는데, 이렇게도 응답하는구나. 나의 절실함과 갈구함이 달과 별과 해와 비와 바람에게도 얼마나 사무쳤는지 우주는 알고 있을 것이다. 미망의 어둠을 쫓아버리는 빛처럼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전율과도 같은 감동이 찾아왔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면서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와서 봉선생님은 나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래, 보기 좋군. 잘 하고 있어. 자네가 아주 자유로워 보이는 군. 바로 그거야! 지금 이 순간 자네가 참 자유로워 보여. 지금 그렇게 보이는 자네가 전부인 거야. 계속 그렇게 살게. 문제는 벌어진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해석이 중요한 것이라네. 삶이란 것이 풀어야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같은 것 아니겠어? 인생은 간단해. 벌어지는 모든 걸 신비함으로 보면 신비인거야. 그냥 즐기시게. 행복이 어디에 있겠는가. 바로 지금 이 순간이야. 지금 이순간 행복을 선택하기만 하면 되는 거지. 아주 간단해. 어디가서 찾아 헤매야 할 그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깃들어 있는 행복을 건져 올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이 순간 순간들의 행복이 쌓이면 행복한 미래가 되는 것이지. 걱정하지 말게나. 성정군, 이 순간을 즐기시게.”

 

봉선생님과 헤어지고 나는 고적대, 갈미봉, 이기령을 지나 상월산(970m)으로 넘어갔다. 동해가 바라보이는 소나무 밑에 최적의 야영터를 발견했다. 이 얼마나 꿈꿔 왔던 로맨틱한 야영이던가! 삼척시의 야경과 밤바다 풍경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삼척시에 불빛이 밝아오고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도 불을 켜기 시작했다. 북쪽방향의 고루포기산과 노인봉을 비롯하여 백두대간 능선길들도 보였다. 백봉령까지 이어지는 능선길도 수려하게 뻗은채로 꿈같은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있었다.

침낭속에 들어가 누워 봉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떠올렸다. 당신께서는 행복을 찾아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야말로 행복에 대한 가장 치명적인 오해라고 하셨다. ‘행복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불행이 시작된다는 말이었다. 행복이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행복은 밖에 있는 그 무엇과도 상관이 없다. ‘직업을 바꾸면 행복하겠지’, ‘저 사람과 마주하지 않으면 행복하겠지’, ‘연인이 생기면, 결혼을 하면 행복하겠지’, ‘어떤 무엇이 내 소유가 되면 행복하겠지이렇듯 우리가 원하는 무엇을 쟁취하거나, 욕망을 해결하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건 착각이라는 것이다. 지금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미래의 나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불행을 선택하라고? 지금 당장 여기서 행복을 선택할 수 없다고? 그건 아닌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다른 사람이나 바깥의 어떤 사물, 어떤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봉선생님의 말씀은 달랐다. 누구든지 자기 가슴을 열면 지금 이 순간 여기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행복이란, 찾아 헤매는 어떤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란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하느냐의 문제라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