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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다큐에세이

4부 - 6장 (노인봉산장과 동대산초소)

by 당당 2022. 1. 23.

6. 노인봉산장과 동대산초소

 

추워서 뒤척이며 새우잠을 잤는데, 여러번 잠에서 깨어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어깨와 팔다리가 결리고 치통까지 덮치고 있었다. 바로 누우면 땅속의 냉기가 매트리스를 뚫고 올라왔다. 추워서 잠들 수 없었기에 허리를 구부리고 다리를 모아 옆으로 누워 다시 잠을 청해야만 했다. 그렇게 몇 번이고 뒤척이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일어나 앉아 버너불을 켰다. 아직 밖은 어둠이 짙게 베어있지만 어둠의 자취가 사라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여명 빛이 동녘하늘을 순식간에 물들이게 될 것이다. 추위로 잠못든 날에는 차라리 정좌하고 앉아 허리를 곧추세운 후 밤을 지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날이 밝아오길 차분히 기다리며 시공간을 넘어 우주와 하나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밤과 낮의 빈틈없는 전환이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증인으로 하나되어 함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신새벽에 펼쳐지는 창조놀이, 이 신성한 기운에 호흡을 맞추며 몸의 원기를 재충전하는 시간이었다. 탠트안에서 정좌하고 앉아있는 동안, 대관령 삼양목장 목초지에서부터 올라오는 거센 바람이 모든 체온을 휩쓸고 갔다. 탠트 밖으로 나갔더니 밤새 어둠을 밝혔던 강릉시내의 도시 불빛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과정과 동시에 자연빛깔인 황금색 새벽빛이 훤히 드러나고 있었다. 수평선 위에는 밤배를 몰고 바다에서 조업하고 돌아오는 오징어잡이 배 몇 척의 불빛이 바다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돌아와야 할 제 시간을 놓치고 마지막 어둠을 배경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들은 얼마나 먼 바다에 나가서 무슨 보물을 그렇게 많이 건져 올렸기에 이렇게 날이 밝아올 무렵에서야 돌아오고 있는 것일까. 어둠을 잠식하며 밝아오는 여명빛을 배경으로, 불커진 오징어잡이 배 몇 척이 항구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하늘엔 아직도 밤이 물러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새벽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 오묘하고 신비로운 풍경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떠한 말로도 형용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한폭의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난 더 바랄 것이 없는 삶이다. 난 지금 이 순간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지금 이 순간 여기 행복이 있음을 본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교실에서 배울 수 없었던 것들을 산과 혼연일체가 되어 자연 그대로의 사랑을 배웠다. 이 땅의 숭고한 자연의 이치를 하나둘 터득해가며 배워왔다. 내가 이토록 무모하게 걸어왔던 것도 바로 내 자신을 찾아나가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나는 결코 헛되이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었다. 이 순례기간중에 대자연의 순리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지 않은가. 바다와 하늘에서 빛나는 저 밤배와 새벽별, 그 아름다운 교접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간이란 얼마나 하찮은 미물인가 생각게 하며, 사람을 겸손하게 한다. 산은 내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지만 참된 것이 무엇인지 자연 그대로의 진실을 알게 해주었다. 내 안에서 타오르는 의식의 불꽃들을 품어주며 대자연의 이치를 보여주었던 백두대간, 백두대간 능선위에 핀 야생화가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꽃향기를 가득 품고 왈칵 달려드는 순간, 그것이 바로 내가 걸어야 했던 이유였다. 나는 자연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품어안고 모든 것을 너그러이 사랑할 줄 아는 지혜를 익혀가고 있다.

온종일 대관령의 광대한 고원지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면서 걸었다. 그 장대하고 광활한 능선들은 파도치는 물결처럼 소황병산까지 이어져 있었다. 황막한 초지일 따름이었던 소황병산(1430m)에 올라서니 노인봉(1338m)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시원하게 펼쳐서 보여주고 있었다.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서 노인봉 정상 밑에 있는 노인봉산장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그곳에는 산장을 관리 운영하는 산장지기가 있었다. 나는 그 분이 어떤 사람인지 사전에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성량수 대장님이다. 성 대장은 낙동정맥 백두대간 순례를 1980년대 초반에 걸어봤던 선구자였다. 그리고 남난희씨가 여성산악인 최초로 1984년 겨울에 낙동정맥 따라 백두대간을 단독종주 했을 때, 성 대장은 총괄지휘를 했던 배테랑급 산악인이었다. 남난희씨는 혼자서 76일동안 걸었던 등반기록을 하얀 능선에 서면(수문출판사)’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하기도 했었다. 나는 그 책을 보면서 그녀가 묘사한 성량수 대장의 성격을 간접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 책에서는 그를 매정하고 혹독한 사람으로 묘사해 놓았던 것으로 기억된다.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성량수 대장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갖기에 충분했다. 그런 성대장이 허름하고 퀴퀴한 산장 내부에 들어서자 누군가와 테이블 위에서 담근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갑작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선 나를 멀뚱히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대장님 안녕하세요? 부산부터 지금까지 43일째 백두대간 완주중입니다.”

 

성대장님은 예리한 눈빛으로 나를 날카롭게 쏘아보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어디까지 가는데?” 그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진부령까지 갑니다. 북한 땅이 보이는 곳까지 가서 백두대간 종주를 마무리하려고 해요.”

 

완주는 무슨 얼어죽을 완주냐! 그게 어떻게 완주냐고! 그래봤자 반쪽짜리인데. 다들 뭘 그리 호들갑 떠는지, ..”

 

나의 답변에 미동도 하지 않고 대뜸 혼쭐만 내서, 혹시 뭐가 잘못되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백두대간 완주가 아니라, 정확한 표현은 남한 백두대간 완주라고 표현해야 맞긴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악인들에게 뭔가 심술이 나있던 모양이었다. 동석한 지인과 거나하게 술에 취한 듯 보여서 산장 안에서 쉬었다 가기엔 어정쩡한 분위기여서, 산장안의 분위기상 인사하고 다시 문밖을 나서려고 했는데, 성 대장의 퉁명스런 말 한마디가 들려왔다.

 

담근 술이나 한잔 먹고 가.”

 

떠나려던 나는 흔쾌하지는 않았지만 사양할 순 없었다. 산악계의 한참 어린 후배 입장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의 기분과 분위기에 맞춰야 할 것 같았다. 제안을 뿌리치기 힘든 상황이었기에 정오도 되지 않아 낮술을 마셔야 할 상황이 되었다. 가끔은 원하지 않는 보시를 기꺼이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흔쾌히 기쁜 마음을 내보이며 받아야 할 때도 있었다. 성대장의 위엄있고 권위적인 모습에 압도당하긴 했지만, 나는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며 술잔을 받았다. 아주 귀한 돌배주라고 해서 시에라컵으로 알파인스타일로 몇 잔 돌렸는데, 취기가 빠르게 올라왔다. 알파인스타일 방식은 등산용 시에라컵이나 코펠에 술을 한 가득 부어서 각자 마시고 싶은 양 만큼 마신 후에 옆사람에게 술잔을 넘겨 주는 방식인데, 산악인들 사이에서 주로 사용하는 술문화다.

성대장은 예의를 다하고 있는 내가 맘에 드는 눈치였다. 내가 걸어오면서 경험한 에피소드를 이야기 할 때에는 웃기도 했다. 내가 편해졌는지, 성대장은 아내를 만나 결혼하게 된 본인의 가정사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어느날 산 속에서 다 죽어가는 처녀를 살려주었는데, 그 처녀가 지금의 아내라는 것이었다. 아내에게 성대장은 그야말로 생명의 은인이었다. 아내는 만약 그 때 성 대장을 만나지 못했다면 하이포서미아(저체온증)에 걸린 상태로 죽을 운명이었단다. 죽다 살아난 처녀는 생명의 은인에 대한 감사함이 인연이 되어서 성대장과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평생 노총각으로 살 것만 같았던 산장지기 인생에 천사같은 아내를 얻게 된 것이었다. 두 딸도 낳아 아내가 잘 키우며 가정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산을 떠날 수 없어 산장지기 생활을 하고 있단다. 소설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계획서상 4차구간도 오늘로써 마무리되고, 마지막 일주일만 걸으면 49일간의 모든 일정은 끝이 난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지인이를 만나 5차구간 지원을 받는 날이다. , 오늘을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식량도 어제부터 모두 바닥나서 누룽지와 행동식으로만 버텨왔다. 진고개에서 지인이를 15시경에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노인봉산장에서 낮술에 취한채 진고개로 하산했다. 한 시간만에 하산코스로 내려와 지인이와 만났다. 나의 마지막 5차구간 식량과 장비보급을 위해 또 다시 인천에서 예까지 온 것이었다. 지인이는 5차구간에 필요한 일주일치 식료품들을 날짜별로 포장해서 가져왔다. 우리는 동대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야영하며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동대산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었다. 지인이와 함께 동대산 정상에 도착하니 저녁 여섯시가 되어가고 있었고, 우리는 숙박장소로 낙점해 둔 산불감시초소 철제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2평남짓 바닥에 은박매트와 매트리스를 깔았다.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즐기며 프라이펜에 삼겹살을 구워 준비해 온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지인아! 고마워. 너밖에 없구나. 친구가 있어 좋다. 이 놈아!”

 

됐어, 새꺄! 몸 관리나 잘 해. 네가 고생이 많지. 나야, , 아무것도 아니야.”

 

씨부럴, 고맙다는데.”

 

절친한 지인이와 가볍게 던지는 담백한 욕설도 서로 기분좋게 받아주며 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나 순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해. 이미 많은 생각을 정리했어. 돌아보면 우리 아버지도 나를 무척 사랑하셨어. 표현하는 방법이 좀 서툴렀던거야. 많이 외롭고 불쌍한 분이야. 내가 잘 모셔야 할 것 같아. 지난 4년간 못 만났던 어머니도 많이 보고 싶어졌어.”

 

그래, 잘 생각했다. 집도 절도 없이 떠돌면서 사는 네 모습이 그리 좋아보이진 않았어.”

 

그래, 알아. 가진것도 없이 몸 하나만 믿고 이곳저곳 많이도 돌아다녔지. 이젠 돌아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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