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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10장 10. 신화가 쓰여지다 설악산군에 포함된 마산(1,380m)을 넘어 마지막 구간 13km를 걸어와 진부령에 도착했다. 3월 31일 부산에서 시작한 순례일정이 5월 18일이 되어서야 49일간의 모든 일정을 마칠 수 있게 되었다. 북녘의 분단선에 가로막혀 더 이상 백두대간을 이어갈 수는 없지만,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기다릴 것이다. 그래도 단독종주를 감행하며 부산 금정산에서 강원 진부령까지 49일동안 남녘의 산줄기 770km를 완주했다. 짐작하고 있었지만 진부령휴게소 안에서는 자영씨가 차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순간 감격에 겨워 손을 맞잡고 포옹도 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위엄과 차분함에 눌려 인사조차 제대로 못하고 눈인사만 하게 되었다. 약속한대로 그녀는 순례 마지막 날에 맞춰 나를 찾아왔다... 2022. 1. 24.
4부 9장 9. 산과 하나된 신화 5시에 정좌하고 앉아 녹차를 끓여 마시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어젯밤 흡혈 진드기의 습격으로 이곳저곳에 반점들이 얼룩덜룩 붉어져 있다. 가려워서 자꾸 긁다보니 손톱에 긁힌 자국들이 영광의 상처처럼 온 몸에 그려졌다. 오늘은 야간산행을 감행해서라도 대청봉까지 21km를 걸어야 했다. 어제도 그만큼 걸어왔다. 설악산국립공원 권역에 들어서니 젖먹던 힘까지 올라온다. 오늘부터 3일만 더 걸으면 모든 일정은 끝난다. 단목령에서 출발하여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과 양양군 서면에 걸쳐 있는 점봉산(1,426m)으로 넘어가던 중 또 다시 무릅에 문제가 발생했다. 다리를 절둑거리며 평생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통증이 재발하여 더 이상 걷기가 힘들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불시에 찾아온 치통까지 나의 정신.. 2022. 1. 24.
4부 8장 8. 팔색조와 흡혈진드기 태양은 이미 수평선 위로 올라와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떠오르는 태양의 원기를 받아 마시며 몸과 마음을 추스렸다. 스물셋 젊음은 하루이틀 잠을 못자도 견딜만한 몸이긴 했다. 밤새 치통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아침이 밝아오면 언제나 영락없이 내 몸은 다시 충전되어 태양처럼 다시 타올랐다. 민족의 고통과도 같은 이 치통, 앓아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죽으로 아침식사를 하며 숲에 우는 새소리의 선율에 마음을 조율하며 주파수를 맞춘다. 오늘 하루 온종일 걸어야 할 순례자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자 의식절차였다. 나는 날마다 저녁에 죽고 아침에 살아났다. 날마다 그렇게 부활했다. 만월봉(1281m)에 도착하여 바라본 남쪽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두로봉부.. 2022. 1. 24.
4부 - 7장 (참교육에 대하여) 7. 참교육에 대하여 지인이와 간밤에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셨는지 모르겠다. 주변을 둘러보니 1.8L 소주병과 2홉병들이 나뒹굴어져 있었다. 깨워도 인사불성인채로 편히 잠들어 있는 지인이의 얼굴에 홍조가 피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지인이에게 아침을 차려주기 위해 쌀을 올려놓고 버너불을 당겼다. 먼 곳에서 달려온 지인이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부지런떠는 일이었다. 7시가 되어 즉석 우거지국과 짜장으로 아침식사 준비를 했다. 지인이를 깨워 아침을 먹이려 했더니 자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한 술이라도 떠먹으라며 부추겼다. 지인이는 못이기는 척 한수저 뜨더니 다시 고꾸라져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나 피곤하면 코고는 소리가 탱크지나가는 소리같았다. 지인이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리는 모든 짐을 .. 2022.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