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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다큐에세이

4부 8장

by 당당 2022. 1. 24.

8. 팔색조와 흡혈진드기

  태양은 이미 수평선 위로 올라와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떠오르는 태양의 원기를 받아 마시며 몸과 마음을 추스렸다. 스물셋 젊음은 하루이틀 잠을 못자도 견딜만한 몸이긴 했다. 밤새 치통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아침이 밝아오면 언제나 영락없이 내 몸은 다시 충전되어 태양처럼 다시 타올랐다. 민족의 고통과도 같은 이 치통, 앓아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죽으로 아침식사를 하며 숲에 우는 새소리의 선율에 마음을 조율하며 주파수를 맞춘다. 오늘 하루 온종일 걸어야 할 순례자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자 의식절차였다. 나는 날마다 저녁에 죽고 아침에 살아났다. 날마다 그렇게 부활했다.
  만월봉(1281m)에 도착하여 바라본 남쪽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두로봉부터 오대산 노인봉, 멀리 황병산까지 보였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죽네사네 하면서 땀흘린 보람과 감회어린 추억들이 올라왔다. 걸어온 산줄기들을 되돌아보면 저 산줄기들을 내가 어떻게 걸어왔나 싶다. 뒤돌아 바라보는 능선길들을 마음속에 깊이 되새기며 응복산(1359m)으로 향했다. 약수산(1306m) 정상에서 점봉산과 설악산 능선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순례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오늘로써 44일간 순례를 해왔으니까 앞으로 5일 남았다.
  구룡령으로 가는 길에 빗방울을 만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해에서 들려오는 천둥소리가 폭풍우를 불러올 것 같았다. 마침 구룡령에서 1톤트럭으로 장사하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오뎅과 감자전 컵라면 등 여러가지 식료품을 팔고 있던 아주머니는 나를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오뎅 국물을 떠 마시라며 종이컵을 건네주시는 그 분의 따뜻한 마음을 감사히 받았다. 나는 따뜻한 국물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눈치없이 여러 번 떠마셨다. 그러던 중 끓는 주전자 수증기에 손목화상을 입었다는 아주머니 이야기를 듣고, 비상의약품으로 소지하고 다니던 화상용 연고를 드렸더니 기뻐하셨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게 도움을 주었지만, 이번에는 나도 이렇게 도움 줄 기회가 생겼다. 오랜만에 쓸모있는 인간이 된 것 같아 너무 뿌듯했다. 지금은 내가 이렇게 산의 정령과 산사람들의 은혜로 순례를 이어왔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보시 받아온 그 이상으로 세상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살아있음으로 이미 풍족한 삶, 덤으로 사는 인생, 나누고 베풀며 살아야겠다.    
  비를 맞으며 구룡령에서 1km 가량 더 걷다가 탠트를 쳤다. 어둠속에서도 따다닥 따다닥 거리며 탠트에 부딪치는 빗방울 소리는 언제나 나를 각성시키고 심금을 울렸다. 적막공산에  물들어가는 최적의 하모니가 아닐 수 없다. 빗소리를 들으며 빛이 없는 어둠을 밝히기 위해 촛불을 켰다. 눈을 감으면 아롱거리는 촛불그림자. 누구일까. 오는 이는 없는데 누구일까. 흔들림이 없어야 하는데 어디서 누가 찾아왔는지 촛불이 타오르며 춤추듯 흔들렸다. 사방은 암흑인데,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람에 실려 젊은 혼불 하나 찾아와 문 틈을 주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오, 네가 왔구나! 외로이 네가 왔구나! 소리도 없이 설레임 가득 안고 내게 왔구나! 환영이 너였구나! 그리움이 사무쳐 혼불로 왔구나! 바람타고 왔구나! 밤에 우는 소쩍새와 함께 찾아온 너, 네가 왔구나!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여명이 찾아와도 비는 여전히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탠트안에 누워 숲의 속삭임을 듣는다. 새 한 마리가 어딘가에서 가까이 날아왔다가 젖은 날개짓 소리를 내며 멀어져 갔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새처럼 울다가 날개를 퍼덕이며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방랑자의 마음을 휘젓다가 떠나가버린 것이다.  
  날은 밝아왔지만 울음없는 아침이었다. 비는 내리고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탠트문을 열어보니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으로 치장한 팔색조 한 마리가 보였다. 부리로 먹잇감을 물고 올라앉은 나뭇가지에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사라져 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사람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나는 옷치장이 화려한 팔색조의 친구가 되고 싶어서 유심히 관찰하며 마음속으로 팔색조의 뜻을 살피기 위해 노력했다. 조심조심 지켜만 보다가 라면부스러기로 고수레를 하려던 순간, 팔색조는 깜짝 놀라 도망가 버렸다. 안개서린 나뭇가지위에 앉아 있었던, 자주 볼 수 없는 희귀한 팔색조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나에게 찾아온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팔색조는 그렇게 떠나가 버렸다.    
  빵과 우유로 식사를 끝내고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빈둥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잠이 든 사이에 팔색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팔색조가 다시 돌아온 듯 싶었다. 부리에는 어떤 큰 씨앗이 물러 있었다. 입이 찢어질 정도로 큰 씨앗을 물고 돌아온 것이다. 저 씨앗은 뭐지? 이것은 어떤 계시를 담고 있는 징조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던 중 장대비가 억세게 탠트 프라이 천장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었다. 팔색조가 큰 씨앗을 물고 돌아온 꿈을 꾸었던 것이다. 이것은 무슨 꿈이었을까. 꿈과 생시가 분간되지 않았다. 잠들기 전에 본 팔색조와 꿈에서 본 팔색조는 분명 똑같은 새였다.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팔색조는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곰곰이 생각에 잠겨 생각해 보고 있었는데 가슴속에서 어떤 확신에 찬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갑자기 몸 안에서 더운 피가 불끈불끈 솟아올랐다. 이것은 분명 이 순례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하나의 증표였다. 백두대간을 순례하며 만났던 사람들, 대자연의 풍광들, 그 모두가 또한 나를 성장시켜왔던 증표였다. 순례중에 경험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메신저들이 아니었을까. 내 자신안에 존재하는 내면의 빛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팔색조가 물고 온 씨앗, 그것은 하나님의 씨앗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분명한 건 내 안의 빛, 그 무엇, 거룩한 신성을 의미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씨앗에 물을 주듯 나는 내 안의 빛을 밝혀나가야 한다는 것이 느껴져 왔다. 이것이야말로 내게 주어진 사명이자 의무이지 않을까. 내게 주어진 길을 밝혀 나가듯 내 안의 성스러운 그 무엇, 그 씨앗에 물을 주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대천덕 신부님이 말씀하셨던 ‘거룩한 하나님의 씨앗’은 바로 ‘나’였다. 그 씨앗에 물을 주어야 할 사람도 나임을 알게 된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던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전혀 관심도 없었고 믿지도 않았던 영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영적인 눈이 열리면서 내 안에 꼭꼭 숨어서 드러나지 않았던 빛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었다. 나는 단 한번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는 않았지만, 매순간 순간 간절히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단 한번도 하나님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지만, 간절한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어쩌면 내 안의 그 빛을 밝히기 위하여 내면으로 향하는 문을 두드려 왔던 건 아니었을까. 정말 어떻게 해야 인간다운 삶을, 나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 위기와 절망의 순간, 나는 누구보다도 더 절실하고 치열하게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나는 숲으로 나가서 비를 맞으며 아름드리 나무를 끌어 안았다. 두 빰에는 감격의 눈물이 비에 섞여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외롭거나 슬퍼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내 눈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물 같았다. 뭐라 표현할 수도 없고 형용할 수도 없는 성령의 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하나님이 눈물 한방울로 나타나 나에게 응답한 것이었을까. 이 눈물 한방울의 의미로 내가 얼마나 거룩하고 성스런 존재인지, 얼마나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인지 깨달을 수 있음에 스스로 감격하고 있었다.  

  비를 맞으며 인제군과 양양군 경계에 있는 갈전곡봉(1,204m)까지 가기 위해서 나침반의 방향지시선을 맞췄다. 갈전곡봉은 칡넝쿨이 많은 밭골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온통 안개에 덮혀 그런 숲길 사이를 걸어가니 꼭 누군가에 의해 인도되어 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백두대간을 순례하는 것이 아니라, 백두대간이 나를 통해 순례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걷고 있는지, 백두대간이 나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는 순간들이었다. 구름타고 하늘을 걸어가는 하얀꿈길 같았다. 지금까지 혼자서 외로이 순례해 왔다는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었는가 하는 생각이 올라왔다. 오직 홀로 순례를 해왔다는 착각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고질적으로 속을 썩였던 아픈 발목과 고름잡힌 어금니들도 내 것이 아니었으며 내 고통 또한 아니었다. 나는 그저 할 뿐, 삼라만상 우주의 기운이 나를 위해 함께해 왔음이 느껴졌다. 미친 듯이 내 능력으로 걸어온 백두대간이 아니라, 나를 떠받들여주고 살펴주는 보이지 않는 손길, 그 보살핌과 사랑으로 걸어왔던 길이었다. 이 고된 49일간의 백두대간 순례는, 걷는 것만으로도 기도이자 명상 자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 나는 미쳐 있었다. 내가 미친 게 아니라, 내 안의 무엇이 미쳐 있었던게다. 그 무엇이 하늘과 소통하고 천지만물 우주 자연과 소통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죽였다 살렸다 담근질하면서 이 미친 순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도 8시간 동안 비를 맞으며 온종일 젖은 몸으로 걷다보니 저체온증이 찾아 왔지만, 그래도 상관치 않았다. 이 몸은 내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모든 고통도 기쁨으로 전환되기 시작했고, 내 의지로 걷지 않아도 어디선가 솟아난 힘에 의지해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내 몸을 돌보지도 않고 꾸준히 걷다보니, ‘나’라는 존재와 백두대간을 분간할 수 없는 산행길이었다. 나는 기진맥진 쓰러질 때까지 걸어야 했을 뿐, 그것만이 내 의무였고, 나머지 몫은 내 것이 아니었다. 온 우주가 힘을 모아 이 몸뚱이 하나 살려내어 결과를 만들어내는 모양새였다. 내가 걷는 게 아니라, 나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어떤 기운이 걷고 있었던 것이었다.
  온 천지의 별빛들이 내 가슴속으로 가득 차 들어왔다. 비가 갠 밤하늘은 내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강원도로 들어와서 맞이한 가장 빛나는 밤이었다. 하루종일 내리던 비가 그치자 하늘도 미안했던지 무수히 찬란한 별들을 드러내 보여준다. 늦은 봄날에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모든 잎들이 살랑대며 별들과 교감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별, 별들, 별들 뿐, 그 외의 아무것도 이곳엔 없었다. 강원도 깊은 산중에서 별똥별을 헤며, 침묵하는 별빛들이 수놓은 우주의 신비스런 전율감에 취해버리고 말았다.  

  쇠나드리를 지나 조침령으로 가는 능선길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풀밭에서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나는 다시 일어나 걸었다. 조침령을 지나 900봉 고지에 올라서면서부터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파도치는 모습도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하얀 거품으로 해안선에 와 닿아 흰 띠를 두루다가 사라지는 모습이 반복되었다. 1018봉에 도착하니 설악산 대청봉(1708m)과 중청봉(1676m)도 확연히 드러났다. 이젠 순례도 곧 마무리가 될 것 같다. 오늘 이 5월 15일이니까 앞으로 3일만 더 걸어서 설악산만 넘어가면 마지막 종착점인 진부령에 도착할 수 있다. 북서쪽 방면으로 점봉산도 보이고 알프스의 아이거처럼 불쑥 쏟아오른 안산도 보인다. 조침령에서 단목령까지의 능선길은 펑퍼짐한 구릉지대였지만 한국의 숨겨진 무릉도원 같았다. 급경사없이 산책길 걷듯 수많은 골짜기 사이로 백두대간 마룻금이 이어져서 잔잔하고 밋밋한 주능선길을 선보이고 있었다. 지난 46일간 고통을 감내하며 걸어왔던 이유가 분명해졌다. 순례중에 경험한 삶의 이치, 이 깨달음, 가치로운 삶으로 향하는 열정, 삶에 대한 통찰력,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분별심, 마음으로 보는 진실의 눈, 내 앞에 펼쳐지는 현재와 미래가 확연해졌다. 이 순례를 잘 마무리하고 나면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답게 살아갈 것이다. 이 세상에 오직 단 하나뿐인 나, 나로써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존재할 것인가. 나는 이번 순례를 통해 내가 경험하고 배운 것들을 세상과 나누며 살아갈 것이다.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흡혈 진드기가 내 몸속에서 기생하고 있었다. 46일간 목욕을 못해서 좋은 먹잇감이 되었던 것일까. 어떻게 알았는지 빨간 몸통의 검은 진드기들이 몸속에서 돌아다녔다. 내 살 속을 헤집고 다니며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 저녁식사 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등이 가려워 긁었더니 눈꼽만한 새빨간 벌레 한 마리가 손톱에 잘려 나왔다. 손톱 안으로 피도 묻혀 있었다. 처음엔 쌀벌레 같은 것이려니 생각했는데 피가 묻어나온 것이 미심쩍어 촛불 앞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쌀벌레는 아니었다. 몸통 전체가 피를 함껏 물은 흡혈진드기였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깜짝 놀라 부랴부랴 옷을 벗어던지고 몸수색에 들어갔다. 손 닿는 데까지 긁적거리며 진드기를 떼어내려 했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은 작업이었다. 피부 속에 머리가 깊숙이 쳐박힌 진드기는 몸통만 끊겨져 나올 뿐, 주둥이와 머리통은 살 속으로 깊이 들어가 박혀서 빼낼 방도가 없었다. 배꼽, 겨드랑이, 어깨, 팔뚝할 것 없이 갈고리 같은 검은 주둥이로 피를 빨아먹는 흡혈진드기 흔적이 보였다. 흡혈 진드기는 내 살과 한 살이 되고 싶어서 머리를 쳐박은 채 내 몸안에 눌러앉아 버렸다. 몸통에서도 등짝 부근이 가장 심하게 공격을 받았다. 열 댓군데 진드기 습격으로 내 몸은 온통 군데군데 핏자국이 맺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진드기의 안식처이자 밥줄이 되어 내 몸 안에 진드기 왕국을 키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낮에 지쳐 쓰러져 잠시 잠이 들었던 쇠나드리 부근 풀밭에서 진드기를 옮겨온 것일까, 갑자기 허탈감이 밀려왔다. 흡혈진드기에 물려가면까지 뭐하는 짓인가. 무엇이 이토록 나를 이곳으로 내몰고 온 것일까. 순례 막바지에 접어들수록 밀려드는 이 허탈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하루에도 천당과 지옥을 수십차례 왔다갔다 하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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