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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다큐에세이

4부 - 7장 (참교육에 대하여)

by 당당 2022. 1. 23.

7. 참교육에 대하여

 

지인이와 간밤에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셨는지 모르겠다. 주변을 둘러보니 1.8L 소주병과 2홉병들이 나뒹굴어져 있었다. 깨워도 인사불성인채로 편히 잠들어 있는 지인이의 얼굴에 홍조가 피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지인이에게 아침을 차려주기 위해 쌀을 올려놓고 버너불을 당겼다. 먼 곳에서 달려온 지인이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부지런떠는 일이었다. 7시가 되어 즉석 우거지국과 짜장으로 아침식사 준비를 했다. 지인이를 깨워 아침을 먹이려 했더니 자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한 술이라도 떠먹으라며 부추겼다. 지인이는 못이기는 척 한수저 뜨더니 다시 고꾸라져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나 피곤하면 코고는 소리가 탱크지나가는 소리같았다. 지인이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리는 모든 짐을 동대산 정상 헬기장으로 옮겨놓고 산불감시초소 안을 깨끗이 정리했다. 나는 헬기장으로 옮긴 짐들을 일일이 점검하고 풀어헤치면서 5차구간의 물품들을 내 배낭속에 챙겨 넣었다. 지인이와 나는 동대산 정상 그늘에 누워서 한동안 말없이 바람에 몸을 맡기며 휴식을 취했다. 그늘 밑에서 동대산 정상 주변 풍경과 자연의 정취를 마음껏 느끼고 있었다. 동해바다에 긴 띠를 형성한 실안개가 하얀색 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더없이 맑은 날이었다. 선선한 산들바람도 불고 있었다. 지인이는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지인이와 진한 포옹을 하며 서로 얼싸 안아주면서 뜨거운 우정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인사를 나눴다. 지인이가 진고개로 내려가는 하산길에서 한 남자가 올라왔다. 등산복 차림과 생김새를 보아하니 중년이었다. 평일에는 운행중에 사람 만나기 어려웠지만, 주말이면 상황은 달랐다. 일요일이 되면 산에서 여럿 만나게 되는 날이 오늘이었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언제나 반갑다. 우리는 기쁘게 인사를 나눴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내가 물었다.

 

주문진에서 오는 길입니다. ? 오우배낭이 아주 크네요. 보아하니 장기산행을 하고 있는 것 같군요. 맞나요?”

 

, 지금 백두대간 순례중이예요. 벌써 40일을 넘게 걸어왔어요.”

 

? 그렇군요. 참 보기 좋네요. 요즘 젊은이들이 산에 많이 다녔으면 좋겠는데, 원체 몸을 움직이려 하지를 않아요. 산이 참 좋은 곳인데. 얼마나 좋아요. 공기도 맑고 풍경도 멋있고.”

 

말투가 공무원처럼 조근조근하고 차분했다. 그 분은 내게 다가와 앉았다. 그리고 가져온 음식들을 펼쳤다. 김밥과 과일들을 펼쳐놓고 내게 함께 먹자고 한다. 나는 숙련된 조련사처럼 그 음식들로 함께 밥상을 차렸다. 나는 체면치레할 상황이 아니었기에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김밥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함께 음식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 아저씨가 전직 교사출신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저씨는 도시에서 교사생활을 하다가 조기퇴직 후 강릉 주문진으로 이사오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이십여년간 중학교 선생 일을 했죠. 지금은 주문진으로 이사와서 교육사업을 하고 있답니다. 주일날은 이렇게 가끔 등산을 하죠. 아내와 아이들은 산을 별로 안좋아해서, 혼자 다닌답니다. 산에 오면 참 좋아요.”

 

, 그러시군요. 학교 선생님이셨네요. 선생님인 것 같았어요. 말씀하시는 풍채가 그렇게 느껴졌죠.”

 

허허, 그런가요? 그런데 젊은이는 어떻게 순례를 하게 된거죠? 그것도 부산에서부터 지금까지 걸어왔다고요? 40여일을 지금까지?”

 

, 저는 좀 사연이 많아요. 고등학교 2학년 때, 그 때가 515일 중간고사 전날인 일요일이었는데,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충동적으로 자살한 친구가 있었어요. 엄마가 공부 좀 하라고 잔소리를 했는데 외출하고 돌아와 보니 화장실에 목을 매고 죽어 있었죠. 성격도 좋고 활발했던 짝꿍이었어요. 히말라야 원정등반 가서는 친구를 만년설 속에 묻고 오기도 했었죠. 이 인생이란 것이 정말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회의감에 빠질 때가 많았어요.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건지, 무엇을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제가 산을 아주 좋아해서 그런 생각들을 정리 좀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이 순례길을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 그런 슬픈 사연이 있군요. 안타깝네요. 그 큰 고통들을 잘 견디어 왔겠군요. 바로 그거죠. 이십대엔 어떤 계기와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그런 생각들을 정립하는 것이 중요해요. 아주 보기 좋아요. 부럽군요. 나도 이런 순례를 해보고 싶은데 사업 때문에 엄두를 못내죠. 젊음이란 이렇게 좋은 거예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는게 좋아요.”

 

선생님! 제가 항상 고민하고 있는 것 좀 여쭤봐도 될까요? 교육이란 도대체 뭔가요? 저는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인지 알고 싶어요. 무엇이 우리에게 진정한 교육인가요? 저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것들이 우리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쓰레기 같은 것들이 많아요. 사회에 나오면 내 인생이나 실제 생활에 별 도움이 안되는 것들 말이예요.”

 

그래, 맞아요. 동의해요. 저도 교직생활 20년을 했었지만 충분히 공감해요. 교육이란, 무엇이 참된지를 스스로 발견하는 과정이어야 하거든요. 그 과정을 돕는 것이 교육이죠. 분명히 교육의 기능이란 저마다 두려움이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하는데, 일선 공교육의 현장에서는 그런 개념을 가르치기가 쉽지 않아요. 하지만 교육이라는 것은 바로 방금전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이 광활한 삶의 과정 속에서 저마다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거예요. 자기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며 무한한 창조의 세계로 날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이죠.”

 

그런데 학교에서는 그런 교육을 왜 하지 않죠? 부모님과 이 사회는 내가 안전하게 살기를 바라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체제에 순응하기를 바래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제가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죠. 저는 자유로운 영혼인데 말이예요. 구속받고 싶지 않거든요. 무조건 외워야 하고, 점수 잘 받고, 경쟁에서 이겨내야만 하고, 결혼 잘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야 하고, 좋은 집과 좋은 차를 가져야만 하고, 돈도 많이 벌어야 하고, 그런 게 교육인가요? 나는 좀 자유롭게 살고 싶고, 내가 원하는대로 살고 싶고, 자연속에서 편하게 살고 싶어요.”

 

! 오랜만에 멋진 젊은이를 만났군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하는 말을 따르기는 쉬운 일이지만, 자신의 길과는 다를 수 있죠. 거기에는 언제나 두려움이나 불안이 있어요. 하지만 무엇이 참된지를 발견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전통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반항을 하는 자들이죠. 무엇이 참된지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질문을 해야 합니다. 의심을 품어야 하죠. 그 의심은 나쁜게 아닙니다. 오히려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죠.”

 

나는 선생님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그동안 내가 만났던 학교 선생님의 이미지하고는 천지차이였다. 학교선생님들은 단 한번도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교육에 대하여 이렇게 실사구시적으로 논하는 선생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흥미로웠다. 한마디 한마디 가슴속에 깊이 새겨들었다. 전직 선생님이었다는 말이 믿겨지지 않았다. 나는 제반 교육의 부조리함에 치를 떨어왔던 사람이었다.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일까?’, ‘이런 교육이 아닌 다른 교육은 없는 것일까?’ 나의 방황은 거기서 출발했고, 산을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나타난 이 사람이 명쾌하게 정리해 주고 있지 않은가.

 

두려움 없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의 참된 목적입니다. 삶을 위한 교육이어야 하죠.”

 

그와 헤어지고 나서도 나는 바위둔덕에 걸터앉아 그의 말들을 꼼꼼히 기록했다. 그리고 약 6.7km 가량 이어진 두로봉까지 걸어갔다. 온 사방에 얼레지 군락이 흥건히 펼쳐져 있었다. , 무심히 지나가던 산길에서 왈칵 달려드는 이 꽃내음, 소리없이 다가와서 나를 끌어안는 이 꽃내음,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꽃밭에서 풍겨지는 향기는 내가 행복하게 걸을 수 있는 원천이었고, 그런 삶이라면 살아갈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온 산을 뒤덥은 향기로운 꽃내음, 봄의 화려한 축복, 기슭에 흩어져 피어난 꽃들의 향연,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길에 피어난 꽃밭 사이를 거닐며 홀로 봄의 향훈에 젖어 들고 있었다.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눈, 그 눈을 간직한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이다.

1296봉에서 내려가면서 나는 집채만한 바윗덩이를 만났다. 나뭇가지 사이로 무언가 밝은 빛을 발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가까이 다가가서 바윗덩이를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다가갈수록 바위 자체에서 빛이 발하는 바위였다. 움직이는 각도에 따라 눈부실 정도로 밝은 빛이 발산하며 태양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이 돌덩이는 한낮에 열기를 모아 두었다가 밤이 되면 그 빛을 내뿜는 바윗덩이였다. 아무도 찾지 않는 높은 산중에 홀로 빛을 발하는 광석, 광석 중에서도 금광석이었다. 황금빛을 품은 거대한 이 돌덩이는 수천 수만년 동안 태양과 바람과 달과 별의 노래를 들으며 익어왔을 것이다. 이것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보물이었던가. 비록 소유할 순 없었지만, 신비스런 이 바위 앞에서 문득 순례의 의미가 완성되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심연에서 허우적 거리던 내 영혼의 빛이 발하는 순간이었다. 보이는 자만 볼 수 있는 이 한낱 거대한 바윗덩이가 금광석으로 보이는 순간, 나는 이미 완전성의 문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보물같은 금광석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겐 눈앞에 놓인 이 바윗덩이가 한낱 거대한 돌덩이로만 보이겠지만, 이 바윗덩이가 얼마나 엄청난 보물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는 마음의 눈이 없기 때문이다. 삶이란 어쩌면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진실의 눈을 뜨고 보물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 아닐까. 그러한 의미에서 나의 유랑은 보물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 보물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포기할 순 없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 속에서 보물을 찾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그 길의 보물을 찾기 위해 오직 혼자서 나서야 한다. 그런 삶을 창조해 나가는 이의 삶은 정말 멋진 인생이지 않을까. 운명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생각하는 그대로 제 삶을 디자인해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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