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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다큐에세이

4부 10장

by 당당 2022. 1. 24.

10. 신화가 쓰여지다

  설악산군에 포함된 마산(1,380m)을 넘어 마지막 구간 13km를 걸어와 진부령에 도착했다. 3월 31일 부산에서 시작한 순례일정이 5월 18일이 되어서야 49일간의 모든 일정을 마칠 수 있게 되었다. 북녘의 분단선에 가로막혀 더 이상 백두대간을 이어갈 수는 없지만,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기다릴 것이다. 그래도 단독종주를 감행하며 부산 금정산에서 강원 진부령까지 49일동안 남녘의 산줄기 770km를 완주했다.  
  짐작하고 있었지만 진부령휴게소 안에서는 자영씨가 차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순간 감격에 겨워 손을 맞잡고 포옹도 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위엄과 차분함에 눌려 인사조차 제대로 못하고 눈인사만 하게 되었다. 약속한대로 그녀는 순례 마지막 날에 맞춰 나를 찾아왔다. 어김없이 나와의 약속을 잊지않고 오늘 만남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나 또한 자영씨가 오기를 간절히 바랬고 분명히 올 것이라는 예감을 하고 있었다. 자영씨와 나는 자동차를 타고 속초 바닷가에 있는 콘도로 향했다. 오늘 하룻밤 편히 쉴 수 있도록 바닷가 쪽 콘도를 이미 예약해 놓았단다. 그녀가 와주길 바랬던 이유는, 그녀를 만나는 순례 마지막 날에는 이런 바다에 와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풀고 싶었는데,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소원이 이루어져서 기뻤다. 자영씨는 나를 위한 조촐한 파티를 해주려는 것 같았다. 내가 성공적으로 순례를 마친 것에 대하여 많이 기뻐하고 있었다.  
  우리는 속초 바닷가 콘도 2층 레스토랑 테라스에서 앉아 하얀 포말을 남기며 출렁이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토요일이라 바닷가를 걷는 사람들이 보였고,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도 어색한 나머지 마주보는 시선을 서로 피하기 위해 수평선을 응시하고 있었다. 지난 순례길의 추억들이 한컷 한컷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고 있었을 때, 자영씨는 밀봉된 편지봉투 한 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나에게 말했다.

  “환영씨가 성정씨에게 보낸 유서가 발견되어 가져왔어요. 이제야 전달해 드리게 되었네요. 제가 보관하고 있었는데, 성정씨를 만날 기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전달해 드리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야 드리는 겁니다. 이번 백두대간 순례에 영향을 끼칠 것 같아서, 계획을 잘 마무리 하시라고 지금 드리게 되었어요. 환영씨에겐 성정씨가 가장 소중한 친구셨잖아요. 이젠 저도 속이 후련하네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그러고보니 나도 환영이와 함께 유서를 쓴 기억이 있다. 히말라야 원정대원들이 도봉산 청소년수련원에서 한달간 합숙훈련을 했던 때였다. 그 때 대원들 모두가 함께 두 시간 가량의 유서쓰는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가르왈 히말라야 바기라티봉 세계최초 등정을 목표로 했던 우리 원정대원들은 죽음도 불사하며 각오가 대단했던 때였다. 나는 그 때 부모님께 보내는 간략한 글로 유서를 대신했는데, 환영이는 의외로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면이 많아서 그랬는지 여러편의 유서를 써놓았다. 그 중에 한 장의 유서가 나에게 써놓았던 유서였다는 사실을 지금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밀봉된 봉투를 받아들고 멍하니 자영씨 얼굴만 쳐다보았다. 길어지는 침묵의 시간이 파도소리에 묻히고 있을 때, 갑자기 환영이 생각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배낭을 메고 바닷가 모레사장으로 달려 내려갔다. 황혼이 물드는 시각, 파도소리는 더욱 거칠게 내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파도속 플랑크톤과 해파리가 콘도의 휘황찬란한 불빛에 반사되어 파란색을 띄우면서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자영씨가 뒤따라 오는 것도 모르고, 나는 움켜쥐고 있던 유서를 펼쳐들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성정아 보아라.
내가 만약 불귀의 객이 되어 히말라야에 묻힌다면
햇살이 비추는 바위아래가 좋겠어.
까마귀 밥이 되어도 좋아.
후회없이 살다간 이 청춘은 영원으로 들어갈 테니까.
영광된 나날로 빛날 수 있도록 슬퍼하지 않기를 바래.
나의 운명은 여기까지야.
아무도 원망하지 않을께.
내 대신 나를 살아줘.
나는 네 안에서 언제나 함께 할테니까.
유수와 같이 흘러가는 별들이 빛날 때
우리의 우정이 빛나는 것임을 기억해 줘.
사랑한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
홀로 계신 우리 어머니를 좀 살펴드려.
나만 홀로 키우며 외롭게 살아오신 분이야.
하나밖에 없는 이 아들 하늘나라에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전해줘.
어머니의 위대함을,
어머니의 거룩함을 드높이고 싶어서
정상에 케언(Cairn)을 쌓으려 했는데,
용서를 구해줘.』  

  그 때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대성통곡하며 울기 시작했다. 가슴속 어딘가에서 그 무엇인가가 툭 터져버리고 말았다.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면서 소리내어 평펑 울기 시작했다. 나는 양 주먹을 불끈 쥐고 목이 터지도록 고함을 질러댔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소리가 내 울음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있었고, 그런 바다를 향해 내 마음속 암울한 찌꺼기들을 송두리째 쏟아내고야 말았다. 절망속의 희열이 복합적으로 뒤섞인 채 솟구쳐 오르는 가슴속 그것들을 게워내고 있었다. 나는 마치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는듯 술취한 사람마냥 비틀거리고 발광하며 절규했다. 내 안의 깊숙한 그 곳 어딘가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리던 오물들이 솟구쳐 올라 목구멍 밖으로 터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나는 이 찌꺼기들을 다 토해내고 나면 모든 것이 맑고 깨끗하게 정화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가슴속 찌꺼기를 치우고 나면 내게 얽혀 있는 모든 굴레와 제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안의 우울함과 불안감, 온갖 부정적인 기운들이 오장육부에서 도망치듯 밖으로 튕겨져 나와 바닷속으로 탈출하고 있었다. 자영씨는 내 앞으로 다가와 아이를 달래는 엄마마냥 제 품속에 나를 꼭 안아주었다. 얼마나 절규하며 울부짖었을까, 그녀의 품에 안겨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나니 한결 평화로운 상태에 접어들었다. 젖은 눈가의 눈물을 닦고 눈을 뜨고 보니 온 세상이 평화로워 보였다.
  생각해 보니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내 잘못이라는 확고한 믿음으로 자책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죄인이 아니었기에 용서를 구할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내가 저질렀다고 생각되는 그 행위가 일어난 적이 없음을 인식함으로써 이제 나는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밖에 알지 못했고,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으므로 그때는 그것이 최선인줄만 알았다. 아무것도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이해하기 전까지, 나는 나의 실수라고 생각하는 것을 짊어지고 다니면서 오랜 세월 죄책감에 시달려야만 했던 것이다. 이것은 환상이었다. 이 환상을 환상으로 알지 못하고, 실체로 오해하고 있는 동안 나는 환상속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환상을 환상이라고 알아차리면 환상은 즉시 소멸한다. 이번 순례는 나에게 그것을 알려주었다. 환상을 깨는 방법을 말이다. 히말라야에 묻혀 있는 환영이에 대한 죄책감에 갇혀 있었던 나, 그것도 환상이었다. 살면서 겪게되는 사건사고들, 어떤 상황과 그 경험들은 하나의 메시지다. 그러한 고난의 길은 우리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보물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내게 주어진 운명과 그 고통을 받아들이며 용서를 구하기 위해 달려왔던 49일간, 이미 환영이는 내게 응답했다. 다 괜찮다고, 수고했다고, 아무 일도 아니라고, 용서를 구할만한 행위가 일어난 적이 없다고 말이다.
  
  포효했던 마음이 평온하게 진정되어지자 문득 자영씨가 순례전에 건네주었던, 영험하다는 그 돌맹이가 생각났다. 달걀만한 이 넙죽돌멩이를 나는 왜 49일간 배낭속에 넣고 다녔던 것일까. 배낭을 내려놓고 배낭 바닥 가장 깊숙한 곳을 뒤져 보았다. 순례를 시작하던 무렵에 한번 만져본 기억밖에 없었던 이 돌맹이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은채로 배낭 커버집 밑바닥 깊숙이 넣어놓고 쳐다보지도 않았었다. ‘옴(om)’돌의 위력을 자영씨로부터 전해 듣긴 했었지만, 믿겨지지도 않았고 믿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영씨는 ‘옴(om)’자가 새겨진 이 돌을 지니고 있으면 행운이 찾아오고, 환영이가 나를 지켜줄 거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환영이와 소통할 수 있는 돌맹이라며 순례중에 꼭 챙겨가라 했었다. 이제 그 돌맹이를 건네주어야 할 시간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자영씨가 건냈던 이 ‘옴’돌의 존재가 나를 지켜주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자영씨의 성의와 진심어린 맘을 받아들이고 ‘옴’을 상징하는 이 작은 돌맹이와 함께 걸었을 뿐이었다. ‘옴’은 배낭 가장 밑바닥에서 고인 습기에 젖었다 말랐다 반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옴’돌을 배낭속에서 꺼내든 순간,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우리는 휘둥그레진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여러 빛깔 무늬로 빛났던 ‘옴’돌은 스스로 빛을 뿜던 그 돌맹이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옴’에서 반짝이던 색깔 무늬들이 희미해져버린 상태였고. 더욱 특이한 건 어떤 빛도 띄지 않았다는 것이다. 각도만 약간 비틀어도 빛깔 무늬의 색채가 달라지는 신비한 돌맹이였는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순례를 함께한 ‘옴’돌에서 빛이 사라졌다. 어떻게 된 것일까? ‘그럼 그렇지’, ‘그저 평범한 작은 돌맹이에 지나지 않았어’ 라고 생각하던 찰나, 갑자기 내 안에서 불끈거리는 그 무엇이 튀어 올랐다. 강렬하게 다가오는 내 안의 음성이 들리면서 뜨거운 피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군가를 향해 내 가슴의 언어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너는 이미 내 안에서 부활했다. 나는 깨어났고, 부활은 히말라야 만년설 속 너의 육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았다. 부활은 몸의 부활이 아니라 마음의 부활이었다. 마음에서 평화를 얻지 못한다면 나는 결코 평화롭게 살 수 없다.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졌던 비밀의 문이 열리는 순간에 이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부활은 육신과 상관이 없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 실상과 마주하는 순간, 너의 부활은 이미 내 안에서 이루어져 있었음을 알았다. 신은 죽음을 창조하지 않았다. 신의 아들은 죄의식이 없으며, 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신의 아들이었고, 너와 내가 언제나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신의 자녀들이다. 신성을 잃어버린 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 사실로부터 무지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들, 태어남은 죽음을 기약하고 있었기에 시작이 아니었으며,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을 내포하고 있었기에 끝도 아니었다. 육신이란 삶과 죽음의 실상을 가리는 장막일 뿐, 영원한 것이 아니다. 어떤 이유로든 죽음이 실재한다면 생명도 영원할 수 없는 거니까. 그러나 빛이 오면 어둠이 사라지는 것처럼, 생명의 근원을 알면 환상은 물러간다. 육신은 한갓 상징일 뿐이며, 죽음은 착각이다. 내 자신이 곧 육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한 걸음 물러서서 내가 품고 있는 환영(幻影)의 세계가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무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신화가 쓰여지고 있었다. 내 눈앞에서 목격된 ‘옴’의 광채가 사라져 버린 건, 나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 빛은 실재로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옴’의 빛깔무늬가 밝게 빛나지 않았던 건, 순례 기간중에 그 빛을 내 안으로 흡수했기 때문이리라. 순례전에 보았던 ‘옴’빛이 지금 이 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옴’돌의 가치는 내 마음의 눈을 통하여 새롭게 해석되어 신의 세계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 일련의 과정을 경험하며 나는 영적인 기운이 충만한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순례중에 나는 마음으로 보는 눈을 간직하게 되면서, ‘옴’의 빛깔과 내 안의 빛깔이 원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내 의식상태에 따라 달라보였을 뿐이었다. 세상 이치가 그러하듯, 어떤 의식 상태에 있는가에 따라 대상은 달라 보이기 마련이다. 눈 뜨면 고운 세상, 새로운 눈을 뜨고 나면 온 세상에 빛이 가득한 세상이 열린다. 평화롭고 평등하게, 편견없이 자유롭게,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실체를 볼 수 있다. 내가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옴’돌은 스스로를 태워가며 순례길에 함께했던 것이다. ‘옴’돌의 빛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서 하나되어 또 다른 길을 밝히고 있었던 것이다. 어둠이 짙어져 가면서 항해를 시작한 오징어잡이배의 불빛들이 수평선 넘어 하나 둘씩 어디론가 사라져갔고, 우리는 파도치는 모래사장에서 연민에 가득찬 포옹을 하며, 얼싸안은 그대로 오랫동안 말없이 먼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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