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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다큐에세이30

3부 - 7장 (통리역과 산악잡지) 7. 통리역과 산악잡지 날이 밝았는데도 도대체 비가 그칠 기미가 안보인다. 진퇴양란이다. 출발할 것인가, 기다릴 것이가. 나는 결정을 해야했다. 더욱 거세지는 산죽밭의 아우성에 당혹스러워졌다. 밤새도록 내린 빗물에 젖어있는 침낭을 보면서 떠나자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어떤 결정도 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탠트 안에만 갇혀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오늘 하루만 운행하면 계획상 3차구간은 종료된다. 그러면 나는 내일 하루 휴식일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오늘은 약 9km 가량을 걸어서 통리역까지만 가면 지원조를 만날 수 있고 내일 하루 푹 쉴 수 있다. 비를 맞아가며 젖은 탠트를 접어서 배낭안에 구겨 넣었다. 비가와서 지도를 볼 수도 없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선 독도법도 소용없었다. 오직 .. 2022. 1. 19.
3부 - 6장 (승부터계곡) 6. 승부터 계곡 수북히 쌓여있는 낙엽더미를 헤치며 산비탈을 내려가다가 잠시 멈춰섰다. 지도에서 내 위치를 파악하고 있던 찰나, 갑자기 발밑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 아래를 자세히 쳐다보니 장지뱀 몸통이 뒤틀린채 발광하듯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뱃속 내장도 터져나와 있었고 잘려나간 꼬리가 파르르 떨며 꿈틀거렸다. 새끼손가락만한 장지뱀의 운명이 왜 이렇게 되었던 것일까. 장지뱀 입장에서는 낙엽속에서 편안한 안식을 취하고 있었을텐데, 재수없게도 내 신발바닥에 정확히 밟혀버렸으니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나도 억울한 거였다. 불쌍한 것. 웬 청천하늘에 날벼락이던가. 낙엽속에 숨어 있다가 내 발에 밟히는 순간, 찍소리도 못냈겠지? 나는 무슨 권한으로 장지뱀의 운명을 짓밟았던 것일까. 장지뱀은 꼬리가 .. 2022. 1. 19.
3부 - 5장 (다시 걷자) 5. 다시 걷자 경북 울진군 온정면과 영양군 수비면의 경계에 있는 백암산(1,004m)에서 이유없이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다. 왜 갑자기 담배가 생각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담배 생각이 났다. 부산에서부터 벌써 스무닷새를 걷다보니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따분하고 단조로운 일상이 지겨워질 때가 있다. 무념무상의 상태로 걷는 기계가 되어 산길을 걷다보면 가끔 일탈의 꿈을 꾸곤한다. 오늘은 오직 담배를 싶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니 미칠 것만 같다. 걸으면서도 담배를 구할 방법만 생각했다. 이 깊은 산중에 어디서 담배를 구할수 있을까. 나는 여러 가지 궁리 끝에 한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지도에서 가야할 길을 유심히 살피다가 장파천으로 떨어지기 전에 만날 수 있는 917번 국도를 확인했고, 3시간동안 열심.. 2022. 1. 19.
3부 - 4장 (별똥별과 지구의날) 4. 별똥별과 지구의 날 산불감시초소는 내게 최고의 숙박장소였다. 지면으로부터 7∼8미터 높은 곳에 있었기에 산짐승이나 뱀같은 파충류, 벌레나 개미로부터도 안심이 되는 곳이었다. 대각선으로 바로 누우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딱 맞는 사이즈다. 특히 사방이 창문으로 되어 있어 바람을 막아주면서도 주변 전경을 모두 둘러볼 수 있는 곳이었다. 잠결에도 그 친구를 만나 행복한 기분에 젖어 그 여운이 오래 지속되었다. 눈을 떠보니 여명의 황홀한 빛깔들이 창문가에 스며들고 있는 5시경이었다. 울치재로 향해 가는 산길위엔 영롱한 아침이슬들이 태양빛에 더욱 발하며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밤새도록 새벽의 온기를 끌어모아 태어난 이슬들이 이젠 다시 떠날 채비를 하며 나와 함께 아침을 맞이했다.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길섶에 .. 2022.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