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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다큐에세이

3부 - 7장 (통리역과 산악잡지)

by 당당 2022. 1. 19.

7. 통리역과 산악잡지

 

날이 밝았는데도 도대체 비가 그칠 기미가 안보인다. 진퇴양란이다. 출발할 것인가, 기다릴 것이가. 나는 결정을 해야했다. 더욱 거세지는 산죽밭의 아우성에 당혹스러워졌다. 밤새도록 내린 빗물에 젖어있는 침낭을 보면서 떠나자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어떤 결정도 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탠트 안에만 갇혀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오늘 하루만 운행하면 계획상 3차구간은 종료된다. 그러면 나는 내일 하루 휴식일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오늘은 약 9km 가량을 걸어서 통리역까지만 가면 지원조를 만날 수 있고 내일 하루 푹 쉴 수 있다. 비를 맞아가며 젖은 탠트를 접어서 배낭안에 구겨 넣었다.

비가와서 지도를 볼 수도 없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선 독도법도 소용없었다. 오직 감각적인 판단에 의존해서 길을 찾아 가야만 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낀 주능선 길을 찾아 가기란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낙동정맥 주능선 통리재에 위치한 통리역에 도착했다. 이것으로 3차구간도 끝이 났다. 벌써 32일째 순례에 접어들었다. 앞으로 보름 정도만 더 걸으면 순례는 끝이난다. 해발 680m 고도의 통리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역 중에서 한 곳이다. 19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번성기를 누렸던 석탄산업이 급격히 몰락하면서 통리역도 명맥만 이어가는 형편이 되었다. 탄광이 문을 닫고 폐광촌들이 많아지면서 통리역을 이용하는 인구가 거의 없다고 한다. 통리역 대합실에는 역무원 이외로 아무도 없었고, 역무원도 할 일이 없어 멀뚱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통리역 근처의 정육점에서 삼겹살 반근을 구한 후에, 가게에 가서 소주도 한 병 샀다. 나 홀로 3차구간 종료파티를 하면서 허전함과 외로움을 달래고 싶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비를 피하기 위해 나는 대합실 현관입구 안쪽으로 들어가서 한 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코펠에 삼겹살을 구워 초고추장에 찍어서 소주와 함께 먹었다. 대합실을 오가는 사람이 없어서 눈치 볼 것도 없었다. 흠뻑젖은 몸으로 조촐하게 홀로 치루는 파티였다. 온종일 굶어가며 빗속을 걸어온 내 몸에 남의 살이 들어가고 있었다. 초고추장을 찍어먹는 삼겹살 맛, 거기에 소주도 곁들여 먹으니 형용할 수 없는 최고의 맛이었다. 꺼져가는 생명에 불꽃을 태우며 기름을 부어넣는 의식이었다. 코펠 뚜껑으로 후라이팬 삼아 삼겹살 한 접 한 접 정성스레 익혀가며 홀로 소주와 함께 먹는 축제였다. 식량이 바닥나서 며칠째 미숫가루와 비상식량으로 버텨온 불쌍한 이 몸뚱이에 대한 위로였다. 이 낭만적인 향연에 초대받은 나, 얼떨떨한 취기가 올라왔다. 취기가 올라갈수록 기분이 좋아지면서 세상 모든 것들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대합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대합실을 오가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역무원조차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있는 듯 했다. 대합실 건물 안에서 삼결살을 구워 먹으며 홀로 지켜가는 밤이었다. 취기가 훈훈하게 더해져 가면서 나는 고독하지 않음을 느꼈다. 고독? 고독이란 무엇일까. 고독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못했다. 고독이 찾아와도 아무런 고통은 없었다. 그것은 고독이 아니었다. 적막공산(寂寞空山)에서 홀로 한달을 버텨낸 사람에게 고독은 사치였다. 신령스런 산의 위엄과 변화무쌍한 자연속에서 살아남은 자에게 고독이란 한낱 망상에 불과하다. 고독은 나의 친구가 아니었다. 나는 비와 바람의 친구가 되었고, 달과 별의 친구가 되었다. 산새들과 벌레들의 친구가 되어, 자연속에 하나되어가고 있었다. 이젠 진부해진 고독은 더 이상의 아픔이 아니었다.

 

술에 취해 나도 모르게 대합실 건물안 한쪽 귀퉁이에서 잠이 들었다. 칠흙같은 밤중에 누군가가 나를 깨운다. 불꺼진 통리역 대합실, 문은 열려 있다. 어둠속에서 낮익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 이름을 부른다.

 

성정아나왔어. 일어나!”

 

젖은 몸과 마음이 침낭 안에서 꿈틀거렸다. 인사불성인 채로 꿈을 꾸고 있을 즈음, 그가 온 것이다. 친구 지인이다. 지인이는 어젯밤 인천에서 밤새도록 자동차를 몰고 내게 온 것이었다. 아버지 차를 빌려서 타고 왔단다. 새벽 4, 나는 혼미한 정신을 스스로 깨워야만 했다. 망막속에 맺혀질 듯 맺혀지지 않는 지인이의 희미한 모습, 초점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 보았지만, 이내 다시 눈이 감겨 버렸다. 눈을 뜰 힘이 나질 않았다. 지인이의 모습이 내 눈망울에 선명히 맺히지는 않았지만 내 친구 지인이임은 분명했다. 그렇구나, 네가 왔구나. 울컥 쏟아져 내리는 안도감, 지인이가 왔구나. 밤 세워 먼 길을 달려온 나의 친구야, 안개낀 고속도로를 달려 나에게 왔구나. , 이젠 살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다가 이내 다시 잠이 들었다. 잠이 들면서 동시에 꿈을 꿨다. “바다다누군가가 소리쳤다. 푸른바다 모래해변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햇빛에 반사되는 부드러운 포말,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며 하얀 거품을 쏟아내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귀를 열고 파도소리를 들었다. 꿈속에서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파도소리에 귀를 열었다. 파도소리가 더욱 거세고 우렁차게 들려왔다. 바닷속으로 어떤 젊은 남자가 뛰어 들었다. 거친 파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헤엄치더니 사라져 버렸다. 나는 깜짝 놀랐다.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에 소리쳐 불렀다. “안돼안돼가지마

다시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 통리역 창밖은 이미 밝아 있었다. 지인이는 대합실 벤취에서 앉아 내가 깨어날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나보다.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눈을 뜨자 일어났구나!’ 하며 지인이가 다가왔다. 지인이는 4차구간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서 먼 길을 달려왔다. 우리는 이번 순례를 떠나오기 전부터 통리역에서 이 시간에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3차구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맞춰 장비도 점검하고 식량도 보충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나를 지원해주러 온 것이었다. 오늘은 하루 휴식을 취하고 내일부터 4차구간이 시작될 것이다. 이로써 부산에서 이곳 통리역까지 한달이 넘도록 걷고 또 걸어오면서 1,2,3차 구간을 모두 완료했다.

우리는 근처 여관방을 잡았다. 지인이가 내게서 몸냄새가 심하게 난다며 코를 막으며 놀려댔다. 완전 거지꼴이란다. 지인이의 지적에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이,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몸에서 찌든내가 올라왔다. 산에서 비를 맞으며 하루종일 땀에 쩔어 있었던 몸이지 않은가. 몸도 제대로 씻을 수 없었고, 빨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니 그런 지적은 당연했다. 여관방에 들어가서 나는 목욕을 하고 빨래를 했다. 그 사이에 지인이는 잠깐 잠을 잤다. 밤을 세워 자동차 운전을 하며 이곳까지 왔기 때문이다. 좀 쉬었다가 점심 무렵 바닷가를 가자고 했다. 바다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부터 이곳까지 낙동정맥을 따라 오면서 산능선에서 바라본 동해 바다가 그리웠다. 내가 본 동해를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지인이가 푹 자고나서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는 정오 무렵 차를 몰고 동해바다로 달렸다. 흐린 하늘이 잠시 게이고 있었다. 바다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장 가까운 곳을 찾아 보았더니 삼척시에 호산항이 있었고 우리는 호산항 근처에 있는 월천해수욕장으로 차를 몰았다. 한 시간 남짓 차를 몰고 운행하였을 즈음, 월천해수욕장 앞에 도착한 지인이가 운전을 하다말고 소리쳤다. ‘바다다’. 지인이는 어린아이처럼 신나서 절규하듯 외쳤다. 그 한마디가 침잠해 있던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새벽녘 꿈에서 본 그 바다가 생각났다. 그 때에도 꿈속에서 어떤 남자가 바다다라고 외치면서 바다에 뛰어들었던 장면이 생각났다. 그 꿈은 예지몽 같았다. 불길한 예감이 스쳐지나갔다. 그 꿈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날마다 죽음이라는 명제에 천착해 있어서 그런 꿈을 꾼 것일까. 우리는 멈추어 서서 동해의 일렁이는 푸른 물결을 바라보았다. 먼 수평선에서 떠밀려 오던 파도가 모래알에 부서지더니 하얀 포말을 그리고 있었다. 바다는 꿈에서 본 그대로였다. 나는 꿈속에서 나타난 장면이라고 말해주고 지인이에게 바다 가까이 다가가지는 말자고 했다. 나는 밀려오는 파도 가까이 갈 필요까지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인이는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그늘 벤취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우리는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인이가 잠시 자리를 비우더니 탄산음료를 가져왔다. 마시라 한다. 해변에서 들려오는 해조음을 들으며 우리는 사랑의 눈빛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한동안 아무말도 없이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래도 마음은 편안해졌다. 바다를 보고 있노라니 속이 시원해짐을 느꼈다.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왔다 밀려갔다.

 

지인아! 인생이란 것이 뭐냐? 이거 어떻게 살아야 하는거냐? 난 잘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만년설에 환영이를 묻어두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났던 걸까?”

 

성정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는 너무 무거워. 좀 가볍게 생각하라구. 뭐가 그렇게 심각하냐. 그냥 즐기란 말이야. 그냥 살면 되는거야. 너는 너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거야.”

 

지인이는 내가 왜 이 길을 가려 했는지 알고 있다. 히말라야에서의 아픔도 잘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내가 염세주의에 빠져 세상을 비관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던 친구다. 어른에 대한 불신과 반항심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어떤 우울감에 빠져 있는지도 알고 있던 친구였다. 그는 언제나 형이상학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나의 개똥철학에 아낌없는 조언을 해왔다. 나는 언제나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았다. 사회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선으로 이유없는 반항심을 키워왔다. 사회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세상 밖으로 도망치고 싶어했던 나를 지인이는 잘 알고 있었다.

 

이젠 좀 잊어버려. 너는 너야. 왜 아직도 그런 생각에 갇혀있니. 이젠 충분해. 충분하다구. 넌 이미 잘하고 있어.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아. 힘내라구. 넌 아주 특별한 존재야. 알겠니?”

 

고맙다. 그런데 어떻게 잊을 수 있겠니? 사람이 죽었는데.... 산다는 건 뭐고, 죽는다는 건 뭘까? 아니다. 내가 또 너에게 생뚱맞은 얘기를 하고 있구나.”

 

바다는 무겁고 뜨거운 바람을 몰고 왔다. 우리는 그늘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의 눈빛도 마주치지 않고 부서지는 파도에 시선을 맞추며 대화는 이어져갔다.

 

성정아!”

 

지인이는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기다렸다. 그가 어떤 말을 할 것인지 궁금했다. 나뭇가지 사이로 뜨거운 햇살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태양빛 때문이었을까. 지인이의 이맛살이 찡그러졌다. 얼굴을 타고 내린 목줄의 핏대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차분하고 평온해 보였다.

 

그것이 너 자신과 무슨 관계니? 너하고 도대체 무슨 관계냐구. 분리 좀 해봐. 환영이의 죽음과 너 자신을 너무 동일시 하는 것 같아. 그 생각에 너무 붙잡혀 있다구. 어떤 상황이 벌어졌든 너는 너야. 너란 존재는 그것과 다르잖아. 넌 아주 소중한 사람이야. 왜 너 자신을 스스로 불행에 가두려고 그러냐? 넌 잘못 없다니까! 과거는 지나갔어. 과거는 잊어버리라구! 과거는 너 자신이 아니야. 네 입장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좋은 쪽으로 해석하라구. 왜 자꾸 불행한 이야기만 생각하냐구. 네가 자꾸 그렇게 말하고 생각하면, 결국 너는 그대로 불행해질수 있어. 과거의 감정은 지금 너 자신이 아니야. 항상 지나간 무언가를 결론짓고 해석하려하기 때문에 과거에 얽매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살 사람은 살아야지. 너는 지금 여기서 나랑 현재를 살고 있는 거잖아.”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경험한 것들은 다 뭐냐고. 왜 나에게 원하지도 않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 내가 원했던 건 아닌데 말이야. 이런저런 일들이 왜 나를 우울하고 슬프게 하는거냐구.” 나는 그를 보면서 대답했다.

 

그래, 잘 알고 있지. 네가 얼마나 많은 슬픔을 견뎌왔는지 잘 안다구. 하지만 모든 벌어지는 일들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벌어질만한 이유가 있을거야. 분명히 뭔가 우리에게 가르쳐 줄 메시지같은 것이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보면 문제 아닌 것이 어디 있겠어. 하지만 그 어떤 사건 사고도, 경험들조차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를 더욱 단련시키고 온전하게 성장시켜 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지인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 정말 몰랐다. 약간 의외였기에 섬짓 놀랐다. 진정어린 마음으로 조언해주고 있음이 느껴졌다. 나는 왜 지인이의 그 깊은 생각을 몰랐을까. 그의 논리가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그에게서 이런 말을 듣다니 놀라웠다. 이런 친구를 두었다는 게 한편으론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지인이의 조언에 의하면, 내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건 나의 생각이었다.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내 생각이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 이제 더 이상 흔들리지 말자. 지금까지의 경험들은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 어찌보면 이 고통과 번민을 통해 나는 더 온전한 삶으로 성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화가 통하는 벗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이렇게 가까이 멋진 친구가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그의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위로의 말들이 나의 아픔을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며 침묵에 잠겼다.

그 때 지인이가 배낭에서월간 산악이라는 잡지책의 중간 부분을 펼쳐 바닷가 벤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는데, 환영이의 죽음과 관련된 세 쪽짜리 심층취재 내용이었다. 나에게 보여주려고 가져왔다고 했다. 그 기사에는 지난해 10월 인도 가르왈히말라야에서 실종된 환영이의 죽음을 조사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인도등산협회와 한국산악연맹이 몇차례에 걸쳐 구조작업을 진행한 내용과 수개월간 사고원인에 대하여 공동조사한 보고서를 토대로 작성된 기사였다. 기사 타이틀 제목은 무리한 알피니즘의 등정주의와 등로주의를 점검한다였다. 히말라야 정상 정복을 향한 산악계에 불어닥친 과열된 양상을 적나라하게 기사화 내용이었다. 기자의 시선에서 써내려간 이 기사내용은 산악계에서 이미 일파만파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 원정대 입장에서는 좀 억울한 측면이 있지만, 과도한 등정욕심이 죽음을 부르고 있다며 산악계의 성찰이 필요함을 지적하고 있었다. 사고의 원인과 당시의 날씨, 눈사태의 적설량 등을 조사한 내용인데, 기사내용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다가 중간 부분에서 나와 관련된 구절들도 볼 수 있었다.

 

최환영 군와 조성정 군에게 연결되었던 자일을 수거한 구조팀이 인도산악연맹 과학기술원에 의뢰하여 정밀 분석한 결과, 눈사태로 인해 끊어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88m 가량 남은 자일의 길이, 절단된 자일 부위 이외로는 손상된 흔적이 없는 점, 잘려나간 형태, 자일의 마모상태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최환영 군이 직접 나이프로 자일을 절단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소름이 돋아 까무러칠 뻔했다. 잡지책을 읽다말고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오금이 저려오며 뇌리속에 품었던 오랜 의구심의 실마리 하나가 풀려나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구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환영이가 계곡을 휩쓸고 내려오는 눈사태 앞에서도, 당시 목에 걸고 다니던 빅토리녹스 스위스제 맥가이버칼로 나와 연결된 자일을 먼저 끊었다는 말이었다. 만약 그 자일이 끊기지 않았다면 나도 환영이처럼 고스란히 육중한 눈덩이에 맞아 즉사했었을 것이다. 환영이와 자일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함께 죽어야 할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그는 대처를 정확히 했고, 나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자일을 끊어버릴 결단을 했던 것이다. 나도 환영이처럼 즉사할 운명이었지만, 눈사태에 떠밀려 내려가면서도 운좋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던 건 환영이의 필사적인 조치 때문이었다. 나도 가끔은 환영이와 함께 묶여 있던 자일은 도대체 어떻게 끊어진 걸까항상 의아해왔었지만, 그 때 당시엔 경황이 없었고 귀국한 이후에도 의문감을 뒤로한 채 잊고 지내왔었다. 이제 와서야 마지막 남은 의문의 퍼즐 한 조각이 맞춰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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