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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다큐에세이

3부 - 6장 (승부터계곡)

by 당당 2022. 1. 19.

6. 승부터 계곡

 

수북히 쌓여있는 낙엽더미를 헤치며 산비탈을 내려가다가 잠시 멈춰섰다. 지도에서 내 위치를 파악하고 있던 찰나, 갑자기 발밑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 아래를 자세히 쳐다보니 장지뱀 몸통이 뒤틀린채 발광하듯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뱃속 내장도 터져나와 있었고 잘려나간 꼬리가 파르르 떨며 꿈틀거렸다. 새끼손가락만한 장지뱀의 운명이 왜 이렇게 되었던 것일까. 장지뱀 입장에서는 낙엽속에서 편안한 안식을 취하고 있었을텐데, 재수없게도 내 신발바닥에 정확히 밟혀버렸으니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나도 억울한 거였다. 불쌍한 것. 웬 청천하늘에 날벼락이던가. 낙엽속에 숨어 있다가 내 발에 밟히는 순간, 찍소리도 못냈겠지? 나는 무슨 권한으로 장지뱀의 운명을 짓밟았던 것일까. 장지뱀은 꼬리가 끊겨도 다시 자라난다고 들었는데, 내장까지 터져버렸으니 어쪄랴. 장지뱀의 생명은 여기까지구나. ‘장지뱀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용서해줘. 세상에 하찮고 불필요한 생명이 어디 있겠어. 잘가. 또 만나. 너를 위해 기도할게.’ 나는 나로 인해 곧 죽게 될 이 조그만 장지뱀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진심을 다해 기도해 주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열심히 내달려 오지중의 오지로 알려진 울진군 서면, 그곳에 편입된 통고산(通高山-1,067m) 정상에 도착했다. 계속된 무더위 때문에 한낮의 부담감을 덜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는 새벽6시에 출발하는 것이다. 하루 중 최고의 컨디션은 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녘이었기에, 오전 중으로 하루 운행일정의 70%에 도달할 수 있다면 오후 일정이 편안해진다. 하루 평균 20km의 산길을 걷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오전 10시까지 10km 가량을 목표로 주파하면 하루일정이 여유로워진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는 오전 10시 이후부터 체력은 급강하되어서 속도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상에는 헬기장과 산불감시 초소가 있었다. 360도 사방으로 훤히 뚤린 한 폭의 산수화, 더 이상 형용할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그림이 펼쳐져 있었다. 세상 어떤 위대한 예술작품도 이만하지는 못할, 이 거대한 산정 파노라마와 만나면 항상 힘이 솟구친다. 그야말로 대자연이 낳은 위대한 예술작품이다. 그래, 이 맛에 순례를 하는거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보는거야.’ 순례에 대한 절망감이 찾아올 때마다 산정 파노라마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다. 산에서 만끽할 수 있는 모든 고통에 대한 보상이었다.

초소 안에는 이불과 버너 등이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 누군가가 이곳에 놓고 간 모양이다. 아마 산불감시요원이 아닐까. 과자들과 초코렛이 한 쪽 귀퉁이에 처박혀 있었다. 출발하기 전에 먹고 온 호박죽가루 한잔과 미숫가루 한잔으로는 양에 차지 않아서 너무 배가 고팠는데 신의 선물이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 다 챙겨넣고 내려와서 헬기장 벤취에 앉아서 뱃속에 밀어 넣었다. 식량이 많이 소진되어 걱정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초소안에 있던 과자와 초코렛으로 배를 채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굶어죽다 살아난 사람처럼 게걸스럽게 달겨들어 허겁지겁 먹어대는 내 모습을 누군가라도 보았다면 까무라쳤을 것이다.

쉬엄쉬엄 한나무재를 넘어 봉우리로 올라가서 승부터 마을을 바라보았다. 25,000:1 지도를 보니 탄광기호와 함께 여러 채의 집들이 그려져 있다. 식수도 채워야 했기에 그 마을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산길도 없는 곳을 헤쳐 계곡 쪽으로 길을 만들어 내려갔더니 작은 둑을 쌓은 저수지가 보였다. 그런데 지도상에 있는 마을이 어디인가 둘러보니 보이질 않았다. 분명히 지도상으로 볼 때, 내가 서있는 이곳에 마을이 있어야 했다. 승부터 마을이 사라진 것일까? 승부터 계곡을 따라 더 내려갔더니 몇 채의 집들이 보였다. 하지만 인기척이 없었고,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과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집집마다 거미줄이 잔뜩 진을 치고 있었고, 담벼락과 지붕 등이 무너져 내린 곳도 있었다. 사람은 모두 떠나가 버렸고, 온갖 집기들과 망가진 가정제품들만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전쟁의 물결이 휩쓸고 간 마을같았다. 모든 집들과 창고들이 폐가로 변해 있었고 온통 폐허의 잔해들만이 널부러진 모습들이었다. 급하게 마을사람들 모두 야반도주를 한 것처럼 아무도 없었다. 거대한 공장 몇 채의 지붕도 무너져 있었으며 몇 년간 쓰지 않은 듯 방치되고 녹슬어 있는 지게차도 보였다. 공장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각종 중장비 기계들도 그대로 방치되어 녹슬어가고 있었다.

승부터 계곡 전체에 들어찼던 마을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마을사람 전체가 타임머신타고 다른 세계로 이동한 것일까. 폐허된 탄광촌의 잔상위에 고요한 정적만이 켜켜이 쌓인채 옛 명성은 오간데 없고 승부터 계곡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승부터 계곡, 이 알 수 없는 적막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인간이 떠나버린 마을, 신에게 버림받은 땅, 전쟁이 휩쓸고 간 마을처럼 질식할 듯한 이 침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집을 버리고 일터를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버린 사람들, 그곳엔 온 세상이 멈추어 선 듯 풀벌레나 새들조차도 찾아와 울지 않는 이상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마을을 돌아보고 올라와 승부터 저수지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저수지 물결조차도 잔잔하게 숨죽이고 있었고, 간혹 멀리서 뻐꾹새소리가 메아리로 들려왔는데 그 여운이 은은하게 번져왔다. 하루종일 무더위와 씨름하며 살아남은 이 육신을 위로하기 위해 알몸으로 물속으로 들어갔더니 물결의 파문이 산그림자와 함께 출렁걸렸다. 이 신비하고 비밀스런 계곡 전체의 분위기를 홀로 느끼며 하룻밤 묵어가려니 싱숭생숭했다. 저수지 물살을 헤엄쳐 가르며 수영하던 중에 거대한 상어가 내 다리를 뜯어먹을 것 같은 두려움도 엄습해왔다. 다른 곳보다도 거시기가 물릴 것 같은 엉뚱한 불안감이 올라왔다. 더 엉뚱한 건 어렸을 때 본 외국영화 죠스에서 사람 뜯어먹는 상어의 장면이 문득 떠올랐고, 진짜 죠스가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혼자서 유유히 수영을 즐기다보니 이젠 제법 찬기운이 몸안을 파고들어 으슬으슬 떨려왔다. 하루종일 더운 열기를 받아들였던 나의 몸에 자유를 허락하는 시간도 마무리할 상황이었다. 나는 서둘러 수영을 마치고 나와서 탠트를 설치하고 밥을 지었다. 그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꼬아리를 틀고 앉아 평온한 시간을 홀로 맞이했다. 황량한 사막의 아침이슬을 등으로 받아먹는 방울뱀처럼 몸과 마음을 위로하며 충전하는 옹글진 휴식시간이었다. 어둠이 내리기도 전에 반달은 높게 떠오르고 있었고, 산들바람이 잔잔한 호숫가에 불어오면서 물에 비친 달의 파문은 금빛 비늘로 펴져나갔다. 그 파문은 물결따라 지름 100m 저수지 끝닿는 곳까지 은은하게 번져 가다가 이내 잦아들고 있었다. 아름다운,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이 아름다운 광경들을 지상의 언어로는 도저히 무엇으로도 표현할 방법이 없을 듯 싶었다. 바람결에 잔잔한 수면이 흔들리면서 일구어낸 파문에 달빛이 번지는 모습을 보면서, 수면에 비친 달을 건져 올리고 싶어졌다. 저수지 가까이로 다가가 물위에 비친 반달을 손으로 떠올렸더니 반달은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부서지면서 떨어진 물방울들은 저수지에 황금빛 파문을 일으키며 다시 출렁거렸다. 그 위로 어둠이 짙어지면서 사랑으로 하나되는 연인의 숨결처럼 실안개가 수면위를 휘휘돌며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오염원이 없는 승부터 저수지 물 맛은 다디달았다. 물에 비친 산그림자, 산영(山影)에 비친 달을 함껏 먹었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올 것만 같은, 승부터 계곡에 진동하는 이 미묘한 기운에 매료되어, 시간도 공간도 없는 우주와 하나되어 란 존재는 사라지고, 자연과 하나된 그것만이 있었다. 이 거대한 침묵에 쌓인 황홀감이 가슴깊이 흘러 들어와서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아 버렸다. 산을 너무나도 사랑한 청년의 간절함에 대한 응답이었을까? , 나는 산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산을 사랑한 청년은 산에 들어 달콤한 연애를 하고, 산에 들어 산을 섬겼다. 산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산에서는 두려움의 강도 건너고 외로움도 이겨낼 수 있었다. 뭇생명에 대한 존엄과 경외감을 키워주는 산, 그런 산과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산은 내게 전부였다.

 

울창한 숲에서 울려나는 새소리에 눈을 떴다. 그 울림은 실안개에 뒤덮인채 새벽숲을 한 바퀴 돌아오는 메아리였다. 태초의 신비스런 전율감마저 감돈다. 그 중에 나의 심금을 울리는 건 휘파람새 소리였다. ‘호리이이이 휘리릭긴 여운을 남기며 청명하게 들려왔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음악이 있을까. 반복해서 들려주는 휘파람새 소리에 귀를 열고 무한 반복 감상에 젖어들었다. 이 경이로운 순간, 시간이 멈춰선 것 같았다.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휘파람새 소리가 숲의 적막을 깨우고 있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온몸이 뻐근하고 아파온다. 어제는 13시간이나 걸었다. 일주일간 쉼없이 새벽부터 출발해서 2시간 이상을 운행했으니 체력이 고갈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이번 3차구간 계획은 1,2차 때와는 다르게 하루 평균 20km 정도를 운행해야 했기에 부지런히 내달려야만 했다. 한낮의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달려온 것이 화근이었을까. 몸이 천근만근 말을 듣지 않는다. 1136봉을 넘어 1119봉 가는 중에 여러번 길을 잘못 들었던 원인도 있었던 것 같다. 울진구간은 독도가 어려운 오지 중 오지였다. 어느 방향이 낙동정맥 주능선인지 분별하기가 무척 어려워서 독도에 유의해야 하는 구간이었다. 길을 잃어서 헤맬 때면 의욕을 상실하게 되고 기력이 다 빠져 나감을 느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아픈 몸을 끌고 무던히도 걸어왔다. 식량이 얼마 남지 않아 며칠 전부터 굶다시피 하다보니 힘이 부쳤다. 피와 살을 파먹으며 몸을 태워가면서까지 걷고 또 걸었다. 식량이 부족하다보니 점심도 거르면서 울진 소나무 군락 산림지대도 통과해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 낙동정맥의 최고봉인 백병산(1259m)까지 쉼없이 내달렸다. 행동식도 먹을 생각도 못하고 열심히 걷다보니 너무 허기져서 현기증이 올라왔다. 눈앞이 핑 돌았다. 쓰러질 것만 같았다. 이렇게 장기 산행을 할 경우에는 항상 많이 먹어주어야 한다. 먹는 양만큼 걸을 수 있는 법이다. 그 만고불변의 법칙을 어긴 죄값이었다. 그 죄값을 온몸으로 톡톡히 치루고 있다. 한발자국 옮기는 것조차 힘이 들어 정신이 혼미해졌다. 배가 고파서 도저히 운행하기가 어려웠다. 마지막 남아있는 힘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지만, 결국 나는 석개재에 도착하자마자 거꾸러지듯 쓰러지고 말았다. 그 동안 참고 버텨왔던 체력이 바닥나서 꼼짝할 수 없었다. 현기증을 동반한 두통이 나를 짓누르더니 이내 몸이 경직되어 갔다. 눈만 멀뚱거리며 거꾸러진 상태로 있어야만 했다. 움직일 수도 없었다. 식량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 인스턴트 호박죽가루를 한잔만 타서 마시고 출발하였던 것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이번 3차구간에는 식량이 부족해서 이런 사달이 났다. 내일까지 통리역에 도착하면 통리역에서 지원조를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4차구간의 일주일치 식료품을 조달받을 수 있었다. 그 때까지 만이라도 굶어가며 정신력으로 견뎌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풀숲에 주저앉아 고꾸라지듯 잠이 들고 말았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보니 쓰러져 버린 상태로 잠에 빠져 들었다. 잠이 들면서 이내 승부터 계곡으로 달려갔다. 아무것도 모르고 우연히 찾아들어간, 이방인의 시선을 머뭇거리게 했던 승부터 계곡의 거대한 침묵. 광부들은 어디론가 떠나가 버리고 산새소리만이 메아리쳐 들려오는 곳. 몇 해인지 알 수 없는 숨겨진 폐광촌의 비밀을 아는 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슬픔을 간직한 곳. 산을 버리고 집을 버리고 공장을 버리고 광부들은 어디론가 떠나가 버렸다. 승부터 사람들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낮과 밤이, 해와 달만이 교대해가며 승부터 계곡을 지켜가고 있었다. 꿈 속에서조차 생생히 떠오르는 승부터 계곡 기억의 편린들.

잠결에 누군가가 날 깨우며 일어나라 한다. 이 곳 석개재까지 사람들이 올라온 것일까. 이 깊은 산중에 누구일까. 희미하게 정신을 차려본다. 분명 누군가가 날 깨우는 것 같았다. 며칠째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걷기만 했는데, 드디어 사람을 만난 것이다. 그러나 어디서 누군가 날 부르는 것 같았는데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사람은 보이질 않았다. 아하, 빗방울이 잠든 내 얼굴을 두드리며 깨웠구나!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잠든 내 마음 깊은 곳까지 들어와 흔들어 놓고 간 것이다. 흐린 하늘의 먹구름을 보면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운행을 해야 했다. 면산(1246m) 정상을 지나 1071봉까지 올라서보니 가랑비에 옷이 많이 젖어들었다. 흐린 서녘 하늘을 울리는 기차소리가 철암역과 통리역 방향에서 들려왔다. 내게 빨리 내려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그래, 조금만 기다려라. 내일 모레 새벽이면 나는 통리역에서 지원조를 마중하기로 약속되어있고, 하루를 휴식하며 충분한 식량을 조달받을 수 있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내렸고, 두리봉산(구랄산)을 지나 토산령(대끼재) 부근에서는 소나기가 퍼부었다. 나는 민첩하게 탠트후라이를 꺼내서 배낭과 함께 덮어썼다. 나무에 기대어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비는 점점 더 굵어져서 더 이상 운행하기가 어려워졌다. 비는 점점 굵어져서 장대비를 퍼부었다. 하늘이 운행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소나기가 나를 살리는구나. 산죽밭에 탠트를 치고 최후의 보루인 마지막 한끼분의 밥을 지어 먹었다. 탠트문을 닫아 놓았더니 훈기가 감돌면서 몸이 따뜻해졌다. , 다시 살 것 같다. 인간의 육신이란 참으로 이상했다. 밥을 몸 속에 넣어주니까 다 쓰러질 것 같았던 몸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산죽밭 조릿대잎들에 부딪치는 빗소리는 탠트 천장을 후려치는 빗소리와 손을 잡고 포효하고 있었다. 이젠 이런 환경에 적응이 되어 차분히 앉아 골짜기에서 불어 닥치는 바람소리에 귀를 열고 녹차도 마셨다. 폭우가 쏟아지는 이곳 토산령(대깨재) 산죽밭에서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살아남아야 했다. 촛불을 켜고 지새는 밤의 적막, 침낭은 반쯤 젖어있었지만 그대로 침낭을 깔고 누워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