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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다큐에세이30

4부 8장 8. 팔색조와 흡혈진드기 태양은 이미 수평선 위로 올라와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떠오르는 태양의 원기를 받아 마시며 몸과 마음을 추스렸다. 스물셋 젊음은 하루이틀 잠을 못자도 견딜만한 몸이긴 했다. 밤새 치통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아침이 밝아오면 언제나 영락없이 내 몸은 다시 충전되어 태양처럼 다시 타올랐다. 민족의 고통과도 같은 이 치통, 앓아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죽으로 아침식사를 하며 숲에 우는 새소리의 선율에 마음을 조율하며 주파수를 맞춘다. 오늘 하루 온종일 걸어야 할 순례자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자 의식절차였다. 나는 날마다 저녁에 죽고 아침에 살아났다. 날마다 그렇게 부활했다. 만월봉(1281m)에 도착하여 바라본 남쪽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두로봉부.. 2022. 1. 24.
4부 - 7장 (참교육에 대하여) 7. 참교육에 대하여 지인이와 간밤에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셨는지 모르겠다. 주변을 둘러보니 1.8L 소주병과 2홉병들이 나뒹굴어져 있었다. 깨워도 인사불성인채로 편히 잠들어 있는 지인이의 얼굴에 홍조가 피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지인이에게 아침을 차려주기 위해 쌀을 올려놓고 버너불을 당겼다. 먼 곳에서 달려온 지인이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부지런떠는 일이었다. 7시가 되어 즉석 우거지국과 짜장으로 아침식사 준비를 했다. 지인이를 깨워 아침을 먹이려 했더니 자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한 술이라도 떠먹으라며 부추겼다. 지인이는 못이기는 척 한수저 뜨더니 다시 고꾸라져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나 피곤하면 코고는 소리가 탱크지나가는 소리같았다. 지인이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리는 모든 짐을 .. 2022. 1. 23.
4부 - 6장 (노인봉산장과 동대산초소) 6. 노인봉산장과 동대산초소 추워서 뒤척이며 새우잠을 잤는데, 여러번 잠에서 깨어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어깨와 팔다리가 결리고 치통까지 덮치고 있었다. 바로 누우면 땅속의 냉기가 매트리스를 뚫고 올라왔다. 추워서 잠들 수 없었기에 허리를 구부리고 다리를 모아 옆으로 누워 다시 잠을 청해야만 했다. 그렇게 몇 번이고 뒤척이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일어나 앉아 버너불을 켰다. 아직 밖은 어둠이 짙게 베어있지만 어둠의 자취가 사라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여명 빛이 동녘하늘을 순식간에 물들이게 될 것이다. 추위로 잠못든 날에는 차라리 정좌하고 앉아 허리를 곧추세운 후 밤을 지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날이 밝아오길 차분히 기다리며 시공간을 넘어 우주와 하나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밤과.. 2022. 1. 23.
4부 - 5장 (대관령아저씨) 5. 대관령아가씨 고루포기산(1,238m)에서 능경봉과 대관령으로 가는 산길을 걷는 동안 꼭 꿈속 길을 걷는 줄 알았다. 산길 주변으로 핀 진달래밭 사이로 왜현호색과 나리꽃, 동의나물, 피나물, 제비꽃, 산괴불주머니, 그리고 이름모를 야생화 군락들이 흐트러지게 피어 있었다. 산기슭 전체에 야생화가 펼쳐진 봄의 향연이었다. 홀로 지켜봐서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걸까. 군락을 이루어 흩날리는 꽃밭 사이를 거닐며 맛보는 이 기쁨, 이 아름다운 야생화 군락지를 함께 걸으며 마음나눌 누군가가 없음이 아쉬웠다. 사람들 손길에 닿지 않는 곳에서 형형색색 흩뿌려진 야생화가 나를 열렬히 마중해 주고 있었다. 그래, 우리 갈라서지 말자. 이름따위 몰라도 너희들은 하늘아래 피어난 지상 최고의 꽃들이다. 어쩌다가 이름을 얻게되.. 2022.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