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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다큐에세이

3부 - 5장 (다시 걷자)

by 당당 2022. 1. 19.

5. 다시 걷자

 

경북 울진군 온정면과 영양군 수비면의 경계에 있는 백암산(1,004m)에서 이유없이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다. 왜 갑자기 담배가 생각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담배 생각이 났다. 부산에서부터 벌써 스무닷새를 걷다보니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따분하고 단조로운 일상이 지겨워질 때가 있다. 무념무상의 상태로 걷는 기계가 되어 산길을 걷다보면 가끔 일탈의 꿈을 꾸곤한다. 오늘은 오직 담배를 싶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니 미칠 것만 같다. 걸으면서도 담배를 구할 방법만 생각했다. 이 깊은 산중에 어디서 담배를 구할수 있을까. 나는 여러 가지 궁리 끝에 한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지도에서 가야할 길을 유심히 살피다가 장파천으로 떨어지기 전에 만날 수 있는 917번 국도를 확인했고, 3시간동안 열심히 그 도로를 향해 가면 혹시 담배꽁초라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체없이 배낭을 메고 달렸다. 혼자서 게임하듯 목표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신나게 걸어 나갔다. 무언가 설정한 목표를 향해 간다는 것은 그 목표가 무엇이든 기쁨을 준다. 매일같이 혼자서 걷던 순례의 단순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재미난 놀이를 또 다시 만들어냈다. 목표를 향해 열심히 걸어야만 하는 미션게임으로 생각하며 짜릿하고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쉬임없이 세 시간을 달렸던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오지로 손꼽히는 경북 영양군 수비면 장파계곡 917번 국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2차선 아스팔트 도로였다. 이런 경우에는 담배꽁초를 구할 확률이 더 높다고 판단이 서서, 두 눈을 부릅뜨고 길가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찾기 시작했다. 돌멩이 사이사이를 들추어 보기도 하며 마치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도로 주변 구석구석을 뒤졌다. 한참동안 곳곳을 수색한 후에야 나는 꽁초 4개를 수집할 수 있었는데, 네 개의 꽁초를 수집하면서 눈시울이 불거지도록 감격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순례중에 처음 피워보는 담배였다. 꽁초냄새를 맡기 위해 코에 가까이 가져가 보았더니 매쾌하고 역겨운 냄새가 나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담배피는 사람들은 참 독종들이다. 이 독한 담배를 피우면서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어떤 꽁초는 젖었다 말랐다 반복하면서 수많은 밤낮을 견뎌낸 꽁초였고, 어떤 꽁초는 차바퀴에 여러차례 짓눌려 옆구리가 터진 꽁초였다. 대부분 두 세 모금 빨면 필터에 닿을 정도의 양이었다. 그래도 나는 네 개의 꽁초를 손안에 공손히 받쳐들고, 차례차례 정성들여 불을 붙였다. 담배를 구할 방법이 전혀 없는 나에겐 감지덕지였다. 큰 숨을 한번 몰아쉬며 폐 속 깊숙이 들이마실 때마다 담배꽁초는 역겨운 연기로 타오르며 태워졌다. 천천히 깊게 호흡하면서 배꼽 아래까지 담배연기를 밀어넣었다. , 눈물이 핑 돌았다. 다 피우기도 전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시공간이 사라지고 모든 만물이 멈춰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술에 취한 사람처럼 담배를 피운 후 도로가에 벌러덩 드러누워 하늘을 쳐다보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드러난 햇살이 제법 따사로웠다. 담배를 피고나니 긴장이 풀어지고 나른해지는 것을 느꼈다. 차츰 어질어질한 상태가 멎고 정신이 돌아왔을 때 부끄러움도 함께 올라왔다. 무모하고 모자란 내 자신의 행동이 웃펐다. 하지만 이 위선적이고 이율배반적인 행동 또한 내 모습이지 않은가. 어쩌랴. 받아들여야 했다.

918봉에 도착하여 보니 걸어왔던 봉우리와 능선들이 훤히 보였다. 멀리 남서쪽 방향에서 산불이 나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연기는 기둥처럼 솟구쳐 오르면서 검은 구름으로 변하면서 맑은 하늘을 뒤덮었다. 오늘처럼 바람도 없이 맑고 건조한 봄날에는 산불을 조심해야 한다. 작은 불씨 하나에도 산불로 번질 확률이 높은 날씨였다. 북쪽으로는 뽀족히 솟은 일월산(1,219m)과 낙동정맥 산줄기들이 늠름하게 펼쳐져 있었다.

 

날이 밝아오면서 숲속에 산까마귀가 우짖고 있었다. 여느 때와는 달리 여러 마리의 까마귀들이 함께 탠트 주변 가까이 내려와 앉아 있는 상황이었다.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걸까? 탠트 주변에 맛있는 먹잇감이라도 찾아낸 것일까? 허락도 없이 탠트치고 하룻밤 자는 사람을 처음 경험한 것일까? 점점 가까이에 다가와서 우짖는 것이 느껴져 탠트 문밖을 봤더니, 3미터 앞에 까마귀 두 마리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서 좀 난처한 상황이 되어버렸는데 총총 걸음으로 나뭇잎을 밟으며 나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오려고 했다. 대여섯 마리의 까마귀가 주변 나뭇가지에 앉아 망을 보고 있었고, 그 중 가장 큰 까마귀 한마리가 갑자기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1미터 가량의 넓은 날개를 펴고 까옥거리며 배회하기 시작했다. 창공에서 수차례 원을 그리며 아군 지원요청을 하는 것 같더니 다시 내려와 앉는다. 이곳은 행정구역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지로 소문난 청송 울진 영양군 깊은 산속이고, 나는 혼자였기 때문에 겁이 좀 났지만 의연히 대처해야 했다. 까마귀떼 공격으로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좀 낯선 풍경에 긴장되긴 했지만, 난 산송장이라서 잡혀 먹히진 않을 것이라고 위안하고 있었다. 그 때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몽골사람들의 장례법인 풍장(風葬)이 생각났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까마귀밥이 되도록 지상에 노출시켜 소멸시키는 장례 의식을 치루는 민족이다. 하지만 난 오늘 그 풍장의 대상이 되어선 안되기 때문에, 탠트안에서 꼼짝없이 숨죽이고 까마귀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인기척도 조심해야 했다.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아깝지만, 라면 부스러기를 주먹에 쥐고 고수레고수레하며 탠트 밖으로 흩뿌렸다. 아니나 다를까 까마귀 무리가 몰려왔다. 나는 우선 까마귀들 배를 불려주며 안심시키기 위해 마지막 남은 식량봉투에서 라면 부스러기를 털어 몇 차례 더 고수레 의식을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다시 주능선을 잡았다. 지도정치하기가 꿰나 어려운 구간이었다. 고도가 낮은 구릉지대에서 낮은 산줄기들이 여러 갈래로 뻗쳐나가고 있어서 어디가 낙동정맥 마룻금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능선들이 다 비슷해 보이기 때문에 정확히 판단하지 않으면 다른 길로 접어들기 일쑤였다. 이럴 때에는 지도를 보면서 곡선과 점선, 등고선의 휘어짐 하나 하나 실제 지형과 맞추어 나가야만 했다. 지도상의 나의 위치가 정확히 확인될 때 까지는 침착하게 행동해야 했다. 그럼에도 여러차레 길을 잃고 깊은 산중을 헤매다 지쳐버렸고,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짜증이 올라와서 힘이 다 빠져버렸다. 무엇 때문에 이 무모하고 부질없는 산행을 하고 있을까 의문감이 올라왔다. 갑자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27일간 걸어온 이 길, 나는 왜 이 산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그 끝모를 의문의 심연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었다. 왜 이 고통을 스스로 짊어지고 있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길을 잃고나니 아침에 우짖던 까마귀처럼 울고 싶어졌다. 인생을 다시 시작해 보고 싶어서 걸어온 이 길,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떠나온 이 길, 나는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일까! 나는 시지프스의 후예인가!

나는 문득 시지프스의 운명이 떠올랐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그 시지프스’. 신에 맞서 불굴의 의지를 태웠던 인간 시지프스 이야기는 나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배짱과 근성으로 신의 영역을 넘보다가 제우스 신으로부터 형벌을 받게된 시지프스. 인간의 신분으로 경솔하게 신과 대립하고 놀려먹다가 신의 분노를 사서 형벌이 내려진다. 그 형벌은 바윗돌을 굴려서 뽀족한 정상위에 올려놓아야 하는 것, 하지만 정상위에 올려놓으면 바위는 다시 굴러 떨어져 아래의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면 또 다시 뾰족산 위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한다. 올려놓은 정상에서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시지프스는 바윗돌을 굴려야만 하는, 무익한 노동 앞엔 헤아릴 길 없는 고통의 시간만이 기다리고 있었던 너무나도 가혹한 형벌을 감내해야만 했다. 시지프스는 자신의 노력이 아무런 희망도 안겨 줄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 형벌을 받아들이고 성실히 수행한다. 하지만 시지프스는 그 고통마저도 삶의 과정으로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바윗덩어리를 굴려 올리는 과정 자체가 기쁨이요, 행복이라면 그 형벌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정상위로 밀어 올리는 과정에서의 고통을 이겨내며 무념무상한 황홀감에 빠져 들어갔던 시지프스, 다시 굴러 떨어진 바윗돌을 들어 올리며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과정에서의 그 무한 자유와 인간 해방의 성취감을 느꼈을 시지프스. 신의 응징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묵묵히 주어진 의무를 수행했던 시지프스의 인간적 투쟁이 생각났다. 나도 시지프스처럼 신의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굴 위해 이 길을 걸어야 하는건지 회의감이 몰려오며 운행을 중단할 것인가 말 것인가 마음의 갈피를 못잡고 있었다. 일정표와 상관없이 내 맘대로 여유있게 순례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날마다 평균 20km 산길을 걷는 일정이라서 너무 힘에 부쳤다. 그렇게 한참을 울주군 온양읍에 있는 발리 면민휴식소 벤취에 앉아 서성거렸다. 그 휴식소에는 삼백년 이상 고령의 나무들이 즐비했다. 한그루의 나무에 깃든 새들의 개채수가 5백마리는 넘을 듯 싶었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새벽부터 지저귀는 소리가 우렁찼다. 한나무 안에서 올려오는 거대한 새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다보면 귀가 멍멍해져 왔다. 가만히 앉아 새소리에 귀기울이다보니, 순례를 계속 이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 망설이며 심각해 했던 고민거리가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곤 이어서 포기할 순 없지라는 생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결국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조금씩만 운행하기로 마음을 다독이며 한걸음 한걸음 가볍게 내딛어 나가기로 했다. 포기하고 싶을 때에는 함께했던 사람들을 생각하자고 마음을 다독였다. 이번 순례를 위하여 지금까지 나를 밀어주고 이끌어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순례 첫날 부산 백양산에서 만났던 개량한복 도인 아저씨, 영남알프스에서 샤워실을 제공해주고 쌀을 조달해 주었던 경비원아저씨, 운문령 천막휴게소에서 만난 집배원 아저씨와 주인아주머니, 황수장여관 창성식당 주인아줌마, 명동산 산불감시초소 공익근무요원 동갑내기 친구, 독경산 정상에서 만난 동래고 동창회팀, 그리고 송전탑 인부들. 순례중에 만나 아낌없이 나의 배를 채워주고 마을을 다독여 주었던 그 모든 사람들이 떠올랐다. 이 모든 인연들을 떠올리다보니 혼자 걷고 있지만 혼자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나는 주변으로부터 떠받들여지고 살려지는 존재였다. 내가 순례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순례의 목적이 드러나는 것이며 삶의 길이 열리는 것이었다. 어쩌면 우주가 나를 통해 스스로 실현해야 할 목적이 드러나도록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침낭속에 들어가 라디오를 듣다보니 어깨가 가려웠다. 손으로 가려운 부위를 긁어보니 개미들이 손톱에 끼어서 나왔다. 화들짝 놀라 일어나서 주변을 살펴보니 개미떼들이 탠트안에서 밤의 왕국을 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엇이 문제였는지 원인을 찾아야 했다. 탠트안에서 참치통조림 투껑을 뒤집어 놓고 촛대로 사용한 것이 화근이었을까. 해드랜턴을 켜고 살펴보니 참치캔 투껑 주위로 모여든 수백 마리의 개미떼가 보였다. 참치캔 안을 들여다보니 난리가 났다. 서로가 짓밟고 짓밟히고 개미성을 쌓고 있었다. 개미들의 치열한 싸움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개미의 응집력에 감탄이 절로 났다. 나는 재야의 인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캔속에 남겨진 기름과 살코기들만이 그들의 먹잇감이었다. 궁리 끝에 캔통을 밖으로 던져버리고 탠트 바닥을 쓸어냈다. 나름대로 꼼꼼히 청소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어디선가 끊임없이 개미들은 출현했다. 일개미 군단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들과 헤어지려면 내가 탠트를 다른 자리로 옮겨야 했다. 깨끗이 청소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아닌 밤중에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아무리 청소를 해도 어디선가 출현하는 일개미군단, 탠트를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그냥 포기하고, 개미들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자는동안 만이라도 괴롭히지 않길 바라면서 일개미들과 혼숙을 해야하는 이 불가피한 동침을 인내해야 했다. 침낭 안에서 얼굴만 나오도록 끈을 조이고 잠들려 했는데 개미들이 내 얼굴위를 기어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컴컴한 어둠속에서도 내 얼굴위를 걸어 다니며 놀이터삼아 뛰어다니는 것은 분명 개미였다. 그럴때마다 모기잡듯 빰을 때리거나, 손바닥을 이용해서 침낭 밖으로 털어내야만 했다. 몸은 너무 피곤한데도 도저히 잠들 수가 없어서 뒤척이며 누워만 있었다. 술 한잔 생각나는 밤이었다. 술만 있으면 술기운으로 깊이 잠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디서도 구할 수 없으니 너무 그리워졌다. 술없이 지새워야 하는 불면의 밤은 너무 길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김종삼 시인의 방대한 공해 속을 걷자. 술 없는 황야를 다시 걷자라는 짤막한 시가 생각났다. 시 제목은 걷자인데, 그 짧은 싯구를 계속 곱씹으며 의미들을 생각해보니까 의외로 재미가 솔솔해졌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는 것도 아니고 공해속을 걷자고? 그것도 방대한 공해속을? 그리고 좋은 길도 아니고 황야를 걷자고? ? 그것도 술도 없이? 술없이 그 거칠고 광막한 황야를 걷자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방대한 공해 속을 걷자. 술 없는 황야를 다시 걷자라는 짧은 시 전문을 되뇌이며 싯구를 천천히 음미해보니, 불가피하고 부조리한 세상에서도 꿋꿋하고 떳떳하게 살아가자는 메새지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삭막하고 황량한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희망과 불굴의 의지를 내려놓지 말자고 스스로 다독이는 시였다. 술 없이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거친 황야를 술 없이도 갈 수 있는 결기와 집념으로 살아 가자는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방대한 공해 속을 걷는 심정으로 포기하지 말고 술 없는 황야를 다시 걸어야겠다.

 

937봉 가는 능선길에서 광대하게 펼쳐진 산줄기들을 물끄러미 뒤돌아 내려다보니 아침부터 걸어왔던 884봉과 842봉이 한 눈에 들어왔다. 오늘도 하루종일 걸어서 저녁 6시반이 되어서야 937봉에 도착했다. 일정대로라면 울진군에 있는 통고산(1,067m)까지 가야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도저히 갈수가 없었다. 오늘도 최선을 다해 15km를 걸어왔다. 한동안 넋을 놓고 앉아서 녹차 한 잔 마시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차를 마신 후에 헬기장 한가운데 탠트를 치고 라면으로 저녁을 간단히 해결했다. 일개미군단과 사투를 벌이다가 잠을 못잤더니 너무 피곤했다. 씻지도 않고 땀에 범벅된 몸 그대로 침낭속으로 들어가 바로 곯아떨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