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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실

고백시편 (1~20)

by 당당 2021. 9. 29.

고 백 시 편 1 ~ 20

 

 

[고백 - 1 (내가 안다는 것)]

 

내가 살고 있는가

내가 말하고 있는가

내가 가고 있는가

 

끝없이 회전하는

수 백 개의 내가

한얼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언제까지 휘말려

떠내려 갈 것인가

 

은총이 내리지 않았다면

내가 있다는 그 허튼소리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존재한다고 말하지 마라

존재하고 있는가

하나됨을 위하여

다가오는 손길에 입맞추자

 

이미 떠났다고 누가 말하는가

찰라에도

수천 수백 오고있는 것을.

 

내가 안다는 것은

사실

모르는 것이다

 

 

[고백 - 2 (하나되기)]

 

나는 이제

긴 고백으로 거듭나리.

그 길밖에 길이 없음을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요,

살아도 산 것이 아님을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닌,

그 분의 온전하심이 드러나고자

비워져야 하는 것임을

 

가만히 앉아 호흡속에서

하나되고 있음을 알았을 때

나는 없었네.

 

 

[고백 - 3 (나는 울었네)]

 

나는 울었네

꿈을 깨는 순간, 펑펑 울었네

바닥을 치며 모든 것을 시인했네.

(두 사제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었네)

 

나의 전생애가 낱낱이 기록된

그 지혜의 머리를 보았네

천상의 세계엔 지상의 언어가 필요없어

과거 행적과 살아온 내용들이

일거수 일투족 책으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었네

 

살면서 생각하고 행동햇던 모든 것들을

작고컷던 나의 거짓, 사기, 간음, 살생, 폭력 사건들이

두 사제의 총명한 머릿속에

훤히 밝혀져 들어있었네.

 

난 직감적으로

그들앞에 무릅꿇고 살려달라 애원했네

용서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네

나의 이 더러운 가면을 벗겨달라고 부탁도 하였지

 

모든 것을 들켜버린 기분을 아는가

그들은 그렇게 보고 계셨다네

 

마지막 한 번의 기회를 더 달라고 절규하였지

그것 밖에는 살아날 길이 없었네.

업장소멸의 기회를 한번만 더 주면

윤회의 사슬을 끊고 극락영생하겠노라고 다짐하며 부탁하였던 것이네

말은 필요없었지

이 생에서의 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으며 훤히 밝히고 있었으니까

 

처음엔 한 사제가 멈칫하더군

나를 아래 위로 훑어 보더니

아직도 멀었어, 아직도 멀었어, 저 위선자! 사기꾼! 나쁜놈!'이라고 하더군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나는 짐작할 수 있었네.

그래도, 저렇게 무릎꿇고 애원하는데 어떻게 좀 해보자구

또 다른 사제가 애정어린 마음으로 제안하더군

너무 힘들거야. 저 놈은 지금 이 상황만을 어떻게든 모면하려고 저러고 있는거야. 봐봐. 보이지? 이렇게 두꺼운 가면을 쓴 인간은 참 오랜 만인걸....’

그래도 저 친구가 간절히 애원하고 있지 않은가. 한번 해보자구.’

두 사제는 입으로 말하지 않았고 눈빛과 맘으로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내 마음은 들을 수 있었지. 그 천상의 언어를.

 

내게 냉담했던 그 사제는,

내키지 않았지만 나를 유심히 관찰하더니,

다시 고개를 흔들며 떨구기만 하더군.

진실의 눈을 가지고 내 속을 훤히보고 있던 그 사제는 다른 사제에게 큰소리 말하더군.

 

"하나님을 말하면서 하나님을 팔아먹은 자,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등쳐먹은 자, 수백 수천번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고도 회개하지 않은 자, 남들 앞에서는 몇 시간이고 기도하면서 헤어지면 한 순간도 기도하지 않는 자, 하나님과의 맹세를 한 순간도 못지키고 잊어버리는 자, 이러면 않되지 하면서도 돌아서면 게으름과 습관벽이 돋는자, 마치 남을 위해 사는 것처럼 위장하고, 철창같은 에고의 껍질을 스스로 벗지 못하는 자,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남 앞에서는 철저히 군림하는 자, 저런 친구를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끔찍해서 그러는 겁니다" 하며 고개를 절었던 사연을 밝히는데,

 

나에 대하여 친절하면서도 강압적이지 않았던, 그래도 어떻게든 나를 거듭나게 해주려던 그 사제가 강경하게 설득하더군. 드디어 옥신각신 끝에 두 사제는 내가 참된 회계를 할 수 있도록 손을 걷어 붙였다네.

 

그 때부터 나는 혼이 빠져 나가듯 정신을 잃기 시작했고, 채찍이 동원되고, 팔다리가 비틀리고, 온갖 방법으로 사지가 쥐어짜지면서, 피투성이가 되고 피멍이 들었네. 그렇게 고문을 당하면서도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는 생각에, 두렵고 무서운 마음은 아예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네. 눈물 콧물 핏물 똥물 땀물 다 흘려가며 기진맥진해져도 두 사제가 원하는 만큼 안되더군. 개과천선(改過遷善)하고 싶다는 나의 부탁과 달리, 너무 견고했던 내 안의 그것을 두 사제조차도 정화시켜내지를 못하더군.

 

나는 그런 놈이라는 것을 보았네. 사제들도 난처해 하더군. 지독한 놈 만났다는 거야. 천년을 생매장해도 죽어지지 않을 독기, 어디를 갔다 놓아도 놓치 않을 악기, 하나님도 뚫지 못할 것 같은 아상(我相)의 살기, 두 사제의 노고에 피투성이 된 나는 예전 그대로 남겨진 채 꿈에서 깨어났네.

 

형편없이 박약하고 거짓되게 살아왔던 인생살이를 꿈에서 확인한 순간,

내 자신을 원망하며 대성통곡하였네

바닥을 치며 한탄하해도 소용없었고

무엇이 꿈이고 현실인가

알 수 없었네

 

 

[고백 - 4 (무위당)]

 

무위당(无爲堂)께서

고백의 시대가 온다고

보듬고 껴안으면서

함께가야 한다고 울먹일 때

 

칼바람 새벽녘까지

거지도 불구도 몸파는 여인도 아름답다고

회 한 접시에 소주잔 기울이다

중생구제 보은보시 하던날,

 

함박눈 쌓이어 지워진 귀가길

보름달 뜬 강둑에서

콧노래 흥얼대며

 

사랑이라고 사랑이라고

휘엉청 휘엉청

사랑이라고

 

* 무위당(无爲堂) : 조한알 장일순 선생의 호.

 

[고백 - 5 (사랑을 먹는 기계)]

 

나는 사랑을 먹는 기계

사랑의 수혈로 연명(延命)한다

단 한 순간도 멈출 수 없는 내 생명의 젖줄

그 연료가 끊기면 숨져가는 가련한 촛불

사랑 안에서 사랑으로 일어서는

떠 받쳐든 영혼

 

사랑밖에 없어 사랑밖에 몰라

서성이는

 

우두커니 온종일 춤추고 노래하며

사랑과 하나되네.

 

 

[고백-6 (나의 안위는)]

 

1.

 

나의 안위는

땅 깊숙이 보이지 않는

지구 끝자락 반대편

대지에 깃든 형제의,

 

목발을 짊어메고

뜬 눈으로도 걷지 못하는

거렁뱅이 민족의

피에서 온다

 

하늘 한자락 살포시 뜯어내어

천년물든 이끼 옷으로 갈아입은

영험(靈驗)있는 나무의

긴 호흡에서

 

온다 온다 그렇게 온다

내가 모르고 관여하지 않은

빈자(貧者)의 손길에 얹혀진

씨알 하나의 헌신에서.

 

2.

 

나는 이제

부드러운 포말(泡沫)을 꿈꾼다

생명을 살찌웠던 숨겨진 혈육의 음성

노역(勞役)의 거친 황톳길

시를 쓰지 못하는 시인의 가슴속에는

무엇이 잠겨 있는가.

 

[고백 -7 (내가 그대라는 것을)]

 

나의 안위와 영광을

뒤에 숨어서 드러내는 그대

말하라, 나의 몸으로!

내가 그대라는 것을.

 

[고백 -8 (그와 나)]

 

그가 죽었다.

왜 죽었을까

곰곰한 생각 끝에

죽음의 실체를 보았다.

 

정말 죽었을까

죽음에 대하여 골몰하다가

문득

죽은 것이 아니었던

그와 마주하였다.

한얼이었다.

 

길을 걷다가

죽지않고 살아서

함께 걷고있는

그를 만났다.

만남이 깊어지면서

그가

내 안에 들어와 있었다.

 

비로소

내 안에서 떠나갔던,

내가 찾아 헤맨

였음을 알았다.

 

[고백 - 9 (바로 너)]

 

, 거기 있었구나

나는 너를 부르지 않았는데

, 거기 있었구나

밤낮없이 하얀빛 안고 있었구나.

 

바로 너, 이 놈!

가지도 오지도 않고 어설프게

죽자살자 붙들어 매었구나, 나를.

 

[고백 - 10 (바로 나)]

 

나는 너를 보았다

네 형편 뒤에

커다란 나라가 있다는 것을.

 

이 지구별이

우주 전체가

낙엽 하나와도 연결되듯이

 

나의 축복과 광휘를 받들고 숨어서

웃음짓고 있었다는 것을,

살려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바람뒤에 숨어있는

물결

물결을 실어나르는

태풍

태풍을 일으키는 눈,

그 눈의 고요함이

바로 나였다는 것을.

 

기적을 일으키는

너의 씨앗이

내 안에 깃들어

살려지는 존재였다는 것을

이젠 알았다

 

 

[고백-11 (은총이 내리어)]

 

집이 없었다

고향도 잃었다

부모도 떠났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쌓아둔 양식도 바닥났다

죽을 일만 남았다

덩그러니 혼자 남아

좀 더 가까워졌다

 

비로소

만났다

은혜를 입었다

남은 건

온전히 살아갈 일 뿐

하리 하리

그 이름을 부르며

 

[고백 - 12 (부활)]

 

지금 이 순간

여기서

매일같이

부활의 때를

맞이하노라

 

그래서 오늘도

죽는다.

2천년 전 부활만이

부활이 아니다.

 

땅을 딛고 산다는 건
꽃망울 터지는

봄 날이 된다는 것

 

눈 뜨고 보면

매 순간이

부활하여 일어서는 것을

오늘도

기뻐하셨다.

 

[고백시편 - 13(돌아오라)]

 

여행에서 돌아오라.

당신은

충분히 행복하다.

 

두발을 딛고 서서

땅의 전율을 안으라.

언제까지 퍼덕이고 있을 참인가

날아갈 지구 저 편 너머는 없다

 

여행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찾아 헤매는 꽃봉오리

지금 여기

그대 안에서 웃고 있다.

 

돌아오라 돌아오라

그대 안의 향기를 품으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고백시편 - 14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집없이 떠돌던

시름깊은 청년이

길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눈길닿은 원 안에

하늘이 가물거렸다

 

한때는

이름없는 꽃들을 사랑했었다

벼랑에 핀 꽃

지상에는 없는 꽃

가 닿을 수 없는 먼 거리에 두고

그리운 하늘가에 떠가는

뭉게구름을 보고 싶었다

 

저녁을 몰고

노숙터로 돌아오던 길목

선도 악도 아닌 열매로

목을 축이며

풀잎따다 피리를 불고 싶었다

 

 

 

고백시편 - 15 (눈이 내려)

 

춥다

배고파도

괜찮다

온세상 하얗게 눈이 내려

행복하다

 

오히려 고맙다

너무나 감사하다

 

모두가 아름답다

 

 

고백시편 - 16 (남의 일이 아니다)

 

남의 일이 아니다.

그 시대에 그 환경에 그 땅에

그 조건에 그 상황에 그 곳에

태어나지 않아도

없었다 하여도

네게 일어나지 않았다고

아무일도 없을거라는 그 믿음은

어디서 오는 것이냐.

 

태초에 이어졌던

고삐가 풀어진 상태로

기쁠때나

슬플때나

그 이름을 몇 번이나 불렀는가

 

한 눈 팔다가는

남에게 벌어진 일들이 당신에게서

벌어질 수 있음을

모든 일들은

그대에게도 벌어질수 있을을

명심하시게.

 

고백시편 - 17 (승천-昇天)

 

사랑과 미움은 하나다

나는 또 하나의 사랑을 만들고

또 하나의 미움을 만든다

서로를 떠밀려 하지만 결국

한 몸 속에 모아지는 자락이다

 

그 눈부신 사랑과 미움의 결합속에

불끈한 혈관 태워 흰 타래로 몸을 감고

솟구쳐 하늘로 흩어진 휘장(揮帳)넘어

피멍들 듯 헐떡이며 빛난다

 

나는 어디에도 없이

사랑과 미움속에 하나가 된다

 

 

고백시편 - 18 (영혼으로 서리라)

 

무슨 소용이 있으리.

소리를 깨쳐 울리는 마음이

네 영혼위에 지긋이 내려앉지 않는다면

잠든 영혼을 일으켜 세워

낮은 음성의 부름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대를 안고 서서

안개낀 저문 강변 둑을 홀로 걷다가

문득

소리없는 외침

소리없는 절규

소리없는 통곡

소리없는 밀어(密語)

 

울음삼킨 달빛강에 서서

발없이 건너오는 손길을 향해

타는 가슴으로 노래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으리

온마음 온정성으로 나를 맡기지 않는다면.

 

 

고백시편 - 19 (사랑의바다)

 

사랑의 바다에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의

사연을 알 수 있다면

온전히 하나되리

 

무엇이 너이고 나인가

억겁을 태워

사랑의 빛으로 모인 곳에서

눈물꽃이 피었네.

 

오호라, 그저

마음껏 꽃잎 떨구다

때가 되면

흡수통합 되는 것,

 

형체도 없고 이름도 없어

애도할 수 없으니

놓아라!

너는 누구의 것인가, 나는.

 

우리는 언제나

살아온 때를 낱낱이 벗겨내고

바다에 내리는 눈처럼

그 품에 녹아드는 것.

 

티끌조차 남으면

강가에 죽벌로 남아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나니

 

사랑의 바다를 끌어안고

하나됨을 이루는

한 방울의 눈물

그게 너다.

 

 

고백시편 - 20 (지천명)

 

불혹의 산넘어 지천명(知天命) 강을 건너다가

모험보다 포기가

변화보다 보호가

고생보다 편안함이

목표보다 안주함이

사랑보다 미워함이

성실보다 게으름이

언제나 나를 흔들어도

 

나답게 사는 것이

나처럼 사는 법이

나에게 가는 길이

나되어 지는 맘이

나없이 나로 사는

사랑의 시작이자

하늘의 뜻임을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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