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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다큐에세이

3부 - 3장 (동갑내기 공익근무원)

by 당당 2022. 1. 19.

3. 동갑내기 공익근무원

 

경북 영양군의 남동쪽 끝에 있는 산, 명동산(812m)에 이르니 이슬비가 내린다. 며칠동안의 무리한 운행탓에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것같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온몸이 지끈지끈 아파온다. 숲길은 온통 안개에 파묻혀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었다. GPS로 내 위치를 확인하지 않는 이상, 길을 찾아가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내가 가는 길이 어디인지 도저히 분간할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맹동산(768m)을 향해 눈 뜬 장님처럼 걷던중에 비가 눈으로 변했다.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눈이었다. 황장재를 지나 포도산과 명동산에서 맹동산까지 초인적인 힘으로 걸어왔다. 오늘이 420일인데 영덕군에 이렇게 눈이 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처음엔 진눈끼비처럼 비와 섞여서 내리더니 어느새 바람을 타고 날리는 함박눈 폭설로 변해 버렸다. 가야할 산길이 전혀 보이지 않아 난감해졌다. 그래도 무작정 맹동산 정상 방향으로 오르막길을 치고 올라가며, 때 아닌 함박눈과의 사투를 벌여야 했다. 마침 맹동산 정상에는 산불 감시초소가 있었다. 감시초소에는 20대 초반의 공익근무요원 한명이 보였다. 산불감시 근무중이었다. 홀로 보초를 서고 있었다. 그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 말이 없다.

 

저기요. 제가 좀 그곳으로 올라가도 되나요? 좀 쉬었다 가려고 하는데요. 괜찮을까요?”

! , 올라오세요. 괜찮습니다.”

 

나는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십미터 가량 되어 보이는 쇠사다리를 타고 한평 남짓한 초소로 올라갔다. 날씨가 좀 풀리기를 기대하며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4시간이 넘도록 사투를 벌인 내겐 아주 편하게 쉴 수 있는 아늑한 쉼터였다. 날마다 축복처럼 행운과 기적은 동시다발로 찾아왔다. 그는 근무기간이 4개월 밖에 남지않은 말년병이란다. 눈발이 날리는 악천 후에도 왜 산불감시를 하고 있느냐고 했더니, 아직 하산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오늘 하루종일 홀로 있으면서 개미 한마디 보질 못했단다. 융통성 없는 군대 근무체계를 나무랄 수 없기에 무전으로 하산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눈발이 날리는 날, 산불이 날 일은 만무했지만 하산명령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 평 남짓 작은 공간에서 마주앉아 차를 끓여 마셨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호구조사를 해보니 스물셋 동갑내기 친구였기에 우리는 바로 말을 놓았다.

 

어허친구야 반갑다. 우린 이제 친구다. 그래 너 이름이 어떻게 되냐?”

 

동갑내기인 우리는 통성명을 하며 자연스럽게 반말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영덕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친구였다. 공익근무처로 매일 출근하는 창수면사무소도 집과 가깝단다. 나는 그에게 장군의 아들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랬더니 그는 나에게 신의 아들이란다. 우리 남자들 세계에서는 군대를 안가면 신의아들’, 공익근무나 방위인 경우에는 장군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하루종일 말 한마디 안하고 지내는 날도 많았던 내가 술술 말이 나왔다. 말을 잃어버린 줄 알았더니 말할 상대가 없었을 뿐, 청산유수(靑山流水). 그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병역의무를 마치면 서울로 상경해서 돈도 벌고 여자친구도 사귀고 싶단다. 시골에서는 농사일 말고는 변변한 일거리가 없다고도 했다. 그와 나는 말이 잘 통했다. 삶과 죽음에 대하여, 인생의 고민거리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아픈 부분들까지 공통된 관심사가 비슷했다. 서로의 입장과 생각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며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꼈다. 특히 난 그에게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소재로 삼아 열변을 토했다.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일까? 너는 한번쯤 생각해 봤니? 우리들은 왜 학교에 다니고, 왜 우리들은 여러 가지 과목을 공부하고, 왜 우리들은 시험에 합격해야 하고, 남들보다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서로 경쟁을 벌이는 걸까?”

 

교육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우리 자신에게 물어본 적이 한번이라도 있을까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것은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부모들에게, 선생들에게, 그리고 이 세상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정말로 아주 중요한 질문이라고 말했다. 그도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왜 우리들은 교육을 받기 위해 경쟁하고 대립하는 걸까? 단순히 무슨 시험에 합격하고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일까? 일자리를 구하고 생계수단을 마련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그것이 교육의 목적일까? 우리들은 오직 그 목적만을 위해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분명히 삶이란 놀랄만큼 광범위하고 심오한 무엇이지 않은가? 이 소중한 인생을 멋지게 살아갈 광대무변한 삶에 대하여 교육되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만일 교육이라는 것이 그냥 밥벌이를 하기 위한 준비 정도라면 삶의 가치와 의미는 무엇일까? 이 변화무쌍하고 예측불가능한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시험 준비나 하고, 수학이나, 물리학이나, 영어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가 받아왔던 교육이 삶을 위한 교육이었을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긴 했지만, 좀 당황해 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는 중간 중간 장단 맞추듯 추임새있는 말들로 내 흥을 돋아주었다. 제반 교육제도에 대한 나의 견해는 한결같이 비판적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불끈불끈 피가 거꾸로 솟구쳐 올랐다. 이 동갑내기 친구 앞에서 항상 품고 있었던 교육에 대한 울분들을 토하듯이 쏟아내 버렸다.

 

왜 참된 교육이 우리에게 중요한지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 새들과 꽃들과, 무성하게 자라는 나무들과, 하늘과, 별들과, 강과, 동해바다와, 바람과 구름들, 비와 눈들, 우리 삶에 펼쳐진 이 무한광대한 자연의 놀라운 현상들까지 왜 교육은 삶의 전체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는거지? 참된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의 실천을 위해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를 갖추어야 할 것인지, 언제 어디서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왜 가르쳐 주지 않는 걸까? 우리들은 어떤 시험에 합격하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그리고는 점점 기계처럼 작동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우리들은 삶의 의미와 진정한 가치를 모르고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건 아닐까? 지금까지 우리가 받아왔던 교육들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릇된 교육이고, 무엇이 진정한 교육인가? 지금까지 우리가 초중고 학교에서 받아왔던 교육이 무엇이었는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진지하게 나의 이야기를 경청했던 그는 내 논조에 크게 공감하고 호응하면서,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나는 넋두리 하듯 가슴속에 쌓아두었던 교육제도에 대한 내 철학을 하소연하고 있었다.

 

학위를 얻고 좋은 직장을 얻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성공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지, 무엇을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근본적인 질문들이 없다면 다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삶이란 과연 무엇인지 그 의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처음 만난 친구에게 이렇게 느닷없이 내 넋두리를 털어놓을 줄은 나도 몰랐다. 그는 내 눈빛을 마주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교육 문제에 대하여 귀기울여 집중하며 깊이 공감해 주고 있었다. 이야기를 하던 중에 나의 몸은 뭔가 야릇한 기분이 느껴지고 있었는데, 온마음을 다해 낮은 자세로 경청하는 그의 모습에 감전되듯 내 몸은 찌릿한 전율감에 젖어들어 갔던 것이다. 사랑으로 바라보는 눈,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 주고 있는 단 한사람이 내 앞에 있음을 새삼 느끼고 있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감싸 안아주는 사랑, 그는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듣기만 했지만, 그의 눈빛과 몸짓 하나 하나에 깃든 사랑어린 마음이 내 가슴 깊이 전달되어 왔다. 동성간에 이런 감정은 처음 느껴보는 것이라서 좀 어색하긴 했지만, 황홀한 사랑에 감전되어 나는 하던 말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었다. 그 사랑에 취해 눈 먼 사람처럼 멍하니 그를 바라만 보다가 사랑에 충만한 분위기에 휩싸여 잠시 황홀경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는 내 상태를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이미 그도 나처럼 황홀경에 휩싸여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함께 침묵의 강을 건너며 신비한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의 울분과 한탄은 환희와 기쁨으로 넘쳐나기 시작했고, 온전히 귀기울여 들어주던 내 앞의 지혜로운 이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앞에서 지랄하다가 온순해진 한 마리 양처럼 원초적이고 때묻지 않은 순수한 의식상태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언어를 넘어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능력이 있어 보였고, 지혜로움이 체내화되어 이미 깨달음의 경지에 있는 사람 같았다. 신비로운 체험이 진행되던 그 때,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던 찰나에 무전으로 하산명령이 떨어졌다. 두시였다. 그는 차분히 짐을 정리한 후 잠시 멈춰서서 강력하면서도 짧은 포옹으로 나에게 감미로운 사랑의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오늘 얘기 잘 들었어. 나도 같은 생각이야. 너를 만나건 행운이야. 잊지 못할거야. 기억해. 오늘의 이 순간을. 나도 기억할게. 넌 정말 멋진 친구야. 존경스럽고 사랑스러워. 순례 무사히 마무리하고 연락해. 인연 닿으면 또 만나자. 그럼 안녕.”

 

친구는 근무매뉴얼에 따른 몇가지 체크사항을 무전기로 교신하더니, 산불초소 쇠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아무말도 못하고, 내려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아쉬움이 남아서 마지못해 잘 가라는 인삿말을 던지긴 했지만, 워낙 목소리가 작게 나오는 바람에 아마 듣지는 못했을 것 같았다. 그는 영덕으로 내려가는 숲길로 사라지기 전에 뒤를 돌아보며 나에게 말했다.

 

성정아! 넌 충분히 멋진 사람이야. 너 자신을 사랑해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손을 흔들어 보이며 멍하니 뒤돌아가는 모습만 지켜보았다. 짧고 강렬한 순간이었다. 잠깐 스쳐지나는 인연인 줄 알았는데, 서로의 가슴과 가슴이 연결되어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된 것 같았다. 숲 사잇길로 사라지진 그를 보내고 나는 다시 홀로 남겨졌다. 산불감시초소 모퉁이에는 빵과 라면, 육포와 과자 등이 비닐봉투에 담겨져 있었다. 그가 나에게 말하지도 않고 슬그머니 음식물들을 남기고 간 것이다. 다시 혼자가 되었지만,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친구가 좀 더 오래도록 머물다 갔으면 하는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다. 그가 떠나고 나서도 그의 말이 메아리쳐서 들러왔다. 나는 그의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이고 있었다.

 

너 자신을 사랑해 봐. 너 자신을 사랑해 봐. 너 자신을 사랑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