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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다큐에세이

3부 - 2장 (최고의 구걸법)

by 당당 2022. 1. 19.

2. 최고의 구걸법

 

새벽에 눈뜨면 밤새 얼어버린 몸을 녹여야 하기 때문에 가스버너를 켜야 한다. 오리털 침낭속에서 잠이 들어도 새벽녘에는 추위탓에 새우잠을 자야만 했다. 사월 중순임에도 높은 산속의 밤기온은 섭씨 5도 이하인 경우가 많다. 어재와 마찬가지로 나는 5시반에 눈을 뜨자마나 즉석 곰탕을 끓여서 식은 밥에 말아 먹었다. 1차구간 중에는 보통 8시에 출발을 했었는데 2차구간 부터는 7시에 출발을 했다. 해가 중천에 올라서기 전에 운행을 하게 되면 덥지않아 좋고 상쾌하기도 했다. 한 시간 일찍 운행을 시작하면 정오가 되기 전까지 계획된 하루일정의 70% 정도는 진행할 수 있어서 효과적이었다. 그러면 오후 시간대는 여유감을 갖고 당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게 된다. 대부분 17km 안팎의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일정이었기에 아침부터 서두르면 오후일정의 부담을 덜 수 있어 좋았다.

독도 실패로 인하여 길을 잃고 헤매다가 질고개에 도착했다. 지도상의 거리를 측정하는 기계, 맵미터(map meter)로 하루마다 가야 할 거리를 다시 체크하다가 큰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통점재에서부터 대관령까지의 거리를 맵미터로 다시 재어보니 28km 였는데, 운행계획표에는 14km로 기재되어 있었다. 앗뿔싸! 순례를 기획하는 단계에서 애초부터 내가 잘못 기재했던 것이다. 내 잘못으로 14km의 거리는 누락했기 때문에 설상가상으로 14km를 더 가야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몸이 천근만근인데 하지만 어쩌랴, 나는 운행계획표를 수정하여 14km를 더 걸어야 했다. 몸이 좋아도 나빠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몸이 아파도 정신력으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 불굴의 의지로 극복해 나갈 때 나는 배움을 얻을 수 있다. 어쩌면 나는 산에서 배움을 얻기 위해 순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이라는 학교에 자동입학하는 것이 아닌가. 이곳에서 산이라는 참스승을 만났으니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가. 산은 내게 말했다. 온 힘을 다해 몰입하고 살라고. 에너지를 집중해서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삶이 우리에게 사랑하고, 일하고, 놀면서 별들을 바라볼 기회를 주었으니까.

 

즉석 해장국을 끓여 먹는데 탠트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우렁찼다. 소나기였다. 비는 그칠줄 모르고 계속 탠트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는지 탠트안으로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시에라컵을 이용하여 빗물을 퍼냈다. 침낭과 옷가지들이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다음날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운행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한꺼번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고막이 터질 것처럼 탠트 플라이에 부딪치는 빗소리는, 아수라장이 된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그런 와중에도 귀가 멍해지는 경지에 다다르게 되면, 결국 빗소리조차도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필하모니 연주처럼 나를 사로잡을 뿐이었다.

한나절을 쉬었을까? 흐린 하늘에서 흩뿌리는 비를 맞으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배낭과 몸이 젖어들고 마음까지도 적셔왔지만 게의치 않고 나아갔다. 소낙비가 물러난 후, 운해가 골짜기마다 가득 들어차면서 산맥들은 구름위로 섬처럼 드러나기 시작했다. 모든 골짜기에 밀물 들어오듯 구름의 수위가 골짜기로 치솟아 올라오고 있었다. 골짜기에 모인 운해가 출렁이며 서서히 섬으로 들어 올려지며, 바다에 뜬 섬처럼 수십개의 봉우리가 운해에 들어올지는 풍경이었다. 낮은 기압이 형성되어 재나 고갯마루를 간신히 넘어다니는 운해들과 골짜기에 쌓은 안개구름 때문에 섬으로 태어난 능선들. 능선 뒤편의 안개구름들이 피어오르다가 이내 다시 하늘로 흩어져 사라지는 장면도 연출되었다. 소나기가 지나간 자리, 비 갠 후 펼쳐지는 온 사방의 파노라마, 그 장대한 스케일의 살아 움직이는 운해를 바라보며 걸으면서 구름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한 환상에 빠져들었다. 풀섶에 스민 빗물이 바지를 타고 신발속에 들어차면서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져만 갔지만, 마음만은 한결 가볍고 날아갈 것만 같았다. 내가 산을 걷고 있는지, 산이 나를 걷고 있는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대자연의 품에 안겨 나는 산이 되고 바다가 되고 구름이 되었다.

그렇게 운해의 장관에 흠뻑 취한 상태로 걸어오다보니, 식수를 미쳐 준비하지 못하는 바람에 빗물을 모아 야영을 해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한나절을 멍하니 운해속을 걷는데에 몰입하다보니 깜빡하고 말았다. 그래도 마침 다시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빗물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었다. 탠트 후라이를 타고 떨어지는 빗물이 코펠과 시에라컵에 가득차면 그 빗물을 수낭에 담았다. 갑자기 쏟아지는 장대비와 사투를 벌이며 고초를 겪었지만 순식간에 빗물을 모았다. 다행이도 오늘은 빗물을 이용하여 식수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녹물처럼 노랗게 보이는 이물질들이 떠다녀서 깨름직하긴 했지만, 위기상황에 몰린 내게는 감지덕지였다. 식수를 구하러 계곡으로 내려갈 상황도 아니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20km를 걷는 동안 모든 체력이 다 고갈되어 있었다. 그래도 누룽지를 끓여먹고 차를 마시고나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탠트를 송두리째 날려 버릴듯한 바람의 횡포에 겁을 먹고 밤새 잠을 설쳤다. 바람에 날리는 숲의 절규때문에 자다깨다를 반복케 했다. 비행 폭격하듯 휘몰아치는 바람으로 두려움에 휩싸인 삼엄한 폭풍전야, 회오리바람이 탠트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하느님 부처님 아버님을 찾는 기도가 터져나왔다. 정체가 의심되는 기도였지만, 처음엔 몰랐는데, 막다른 길목에서는 본능적으로 기도가 터지는 법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하여 누군가에게 기도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 나가는 중이었다.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과감히 수행해 나갈 수 있었지만,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것들 앞에서는 기꺼이 받아들이고 인내하는 과정을 견뎌야 했다. 밤새 뒤척거리며 새벽 추위와 바람의 횡포에 대항하며 공포의 밤을 건너오다 보면, 어느덧 어둠이 사라지고 여명이 찾아왔다. 살려주신 하나님 부처님 천지신명께 무한 감사를 드리는 진심어린 기도가 그 때 터져 나왔다. 몸을 오싹케하는 찬바람 때문에 탠트문을 계속 열어놓을 수는 없었지만, 용기를 내어 탠트문을 열어보니 일출의 장관이 온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형용할 수 없는 이 황홀한 일출의 광경은 언제나 다시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

 

오늘 목표로 잡은 황장재는 어제 저녁에 도착했어야 했던 곳이다. 운행 계획상 하루 반나절 가량이 뒤쳐져 있었다. 이곳에서 황장재까지 지도상의 거리는 19km. 만만치 않은 거리를 오늘도 걸어가야 한다. 쉬지말고 계속 걸어야만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주왕산국립공원 지구를 통과하는 곳이어서 주능선의 산길은 아주 잘 정비되어 있었다. 영동과 청송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갓바위산(740m)을 넘어 느즈메기재, 명동재, 먹두동 산봉우리를 지나가야 했다. 하루종일 계속해서 걷다보니 걷는 기계가 된 것 같다. 쉬지도 않고 하염없이 걸었다. 가끔 숨찬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멈춰서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내 다시 출발했다. 한번 컨디션이 올라오면 걷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내가 산길이 되어 걷고 있는지, 산길이 내가 되어 걷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경지가 찾아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순례의 기쁨을 만끽하며 능선의 곡선미에 하나되어 파도치듯 걷게 된다. 산길과 한 호흡으로 걷는다는 것은, 몸에 깃든 내 불결하고 부정적인 기운들을 맑게 씻어주고 닦아주는 행위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걸으면서도 생동하는 산의 영혼을 느낄 수 있었다. 산은 내 영혼의 통로를 이어주는 비상구였다. 이 깊은 산중에서 내 진면목과 맞닥뜨리는 시간이었다. 열아홉에 지리산을 만나 산에 미쳐 살다가 비로소 스물셋에 영혼의 눈을 뜨기 시작한 나, 내 영혼의 창을 열어주는 건 언제나 산이었다.

 

쉬지않고 19km를 건너와 결국 황장재에 도착했다. 너무 지쳐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황장재에 도착하니 휴게소가 있었다. 휴게소에 들어가서 물을 한잔 얻어 마시고 컵라면을 사먹었다. 체력이 고갈되어 취사를 포기하기로 하고 매식으로 결정했다. 핫도그와 아이스크림도 사먹었다. 음식이 몸으로 들어가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죽을 것만 같았던 몸에서 다시 힘이 솟아난다. 죽을 것처럼 기력이 없었는데, 음식을 입속에 넣으면 기적처럼 다시 살아났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이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천지의 은혜다. 빵과 유우도 사먹고 나니 온 몸에 에너지가 충만해져 왔다. 배를 불린 후에 화장실 건물 처마 밑에 탠트를 쳤다. 화장실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비바람을 피할만한 장소로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특정한 냄새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후각에도 마비가 오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코끝도 무뎌지면서 화장실의 그 독특한 냄새가 사라졌다. 천만 다행인 것은 후각 신경계가 마비되어 제 기능을 못하니,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화장실 처마밑 복도에서 탠트를 치고, 8시간 숙면을 취하고 일어나 공중화장실에 들어가 세면을 했다. 따뜻한 물이 나와서 얼씨구나 부리나케 머리도 감고 발도 씻었다. 물비누가 비치되어 있기 때문에 오랜만에 제대로 된 세면을 할 수 있었다. 주인아저씨가 화장실로 다가오더니 이곳에서 잤느냐고 물으시길래, 그렇다고 대답하니까 춥지는 않았는지 안부를 걱정해 주셨다. 견딜만 하다고 대답했더니 한참을 서서 걱정스런 눈빛을 하고선 휴게소로 돌아가셨다. 나는 그를 따라 황장재휴게소에 들어가서 어제 저녁과 같이 다시 빵과 우유로 아침식사를 했다. 식량이 거의 바닥나서 열흘치 행동식과 식료품도 구매해서 배낭에 구겨 넣었다. 쌀과 라면, 김치, 밑반찬류는 주인아저씨에게 부탁해서 그냥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동량을 잘하는지 내 말에 구슬림 당한 주인아저씨가 나중에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주능선 길에 올라 걷다보니 빨간 끈이 뛰엄뛰엄 묶여 있다. 단체산행팀을 위해 낙동정맥 주능선을 표시해 주기 위한 표식기였다. 등산객들에게 잘 보이도로 노란색 리본형으로 만들어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곳은 약간의 표식기만 확인하고 걸어도 길을 잃을 염려는 없는 구간인데, 과다하게 걸려있는 표식기들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 이유는, 나일론 섬유와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진 표식기가 썩지도 않는 산쓰레기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송전탑 건설을 위해 임의적으로 만들어 놓은 작업도로를 지나왔다. 그 주변으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마구 쓰러져 있었다. 주위의 나무들은 모조리 베어서 시체더미처럼 한 곳에 쌓아 놓아진 상태였다. 송전탑 설치 부지를 만들기 위해 포크레인으로 5m 폭의 작업도로를 내는 과정에서 여러곳에 산사태가 발생해 있었다. 흙과 바위덩이들을 산기슭 아래로 밀어내면서 굴러 떨어진 나무들과 돌덩어리들이 뒤엉켜 계곡을 초토화 시켰다. 송전탑 하나 세우기 위해 이 깊은 산의 심장을 도려내야만 하는 공사방식이었고, 산림을 이렇게 파괴해 놓고도 법적인 제재를 받지 않고 있는 무법천지 같았다. 경상북도 영양군의 석보면 포산리에 있는 포도산(748m)으로 가던 중 송전탑 공사를 하는 인부들을 만나 여쭤보니, 이 송전탑공사는 수도권을 향하여 수백키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점, 송전탑 부지를 조성하기 위해서 항상 작업도로를 개설할 수밖에 없다는 점, 더 중요한 건 전원개발특별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점, 주민민원으로 공사를 중지시킬 수 없다는 점이었다. 정부에서 토지강제수용령 같은 것이 발동하면, 사유재산도 무슨 보전금을 넣어놓고 공탁 걸어서 강제할 수 있는 무서운 법이라고 했다. 국책사업을 시행한다는 미명하에 정부에서 위헌소지가 있는 악법을 합법의 허울로 가리면서 대규모 산림파괴를 일삼고 있었던 것이다. 가슴이 아팠지만, 고된 일을 하고 있는 인부들에게 내 속마음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들은 한국전력 소속으로 해야 할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오십미터 높이에서 송전탑 선로에 매달려 부품들을 끌어올리며 고공에서 줄타기하듯 위험천만한 고난이도 작업을 하는 분들이다. 이들은 공중곡예하는 서커스단처럼 송전탑 선로를 설치하는 전문 설치팀이었는데, 송전탑 아래에서 지원조 2명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대리석 불판에 삼겹살을 구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점심때가 되었는지 송전탑에서 내려온 곡예 전문가 인부들은 미리 데워놓은 대리석 불판에 생고기를 굽기 시작했는데, 구워지는 삼겹살 냄새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국가정책을 비난하며 산림훼손으로 마음이 착찹하고 우울해 있었던 내가, 순식간에 군침을 흘리는 한 마리의 짐승이 되어 있었다. 비스듬히 놓인 대리석 돌판 모서리 끝으로 삼겹살 기름이 땅바닥에 흘러내리면서, 누르스름해질 때까지 기름을 빼버린 바싹하고 부드러운 삼겹살을 구워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당장 달려가고픈 마음을 억제하며 체면상 덤덤히 군침만 흘리며, 배낭을 메고 앉아서 고기굽는 곳을 멍하니 응시하며 넋 놓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내 간절한 시그널을 받았는지, 처량해 보이는 내 모습을 보고 아저씨들이 함께 먹자며 가까이 오라 하셨다.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식사를 빵 우유로만 먹었기 때문에 몹시 배가 고팠는데, 얼씨구나 쾌재를 부르며 달려갔다. 기름기가 빠져나간 상태로 야들야들하게 잘 구워진 삼겹살 맛은 그야말로 끝내줬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최고의 고기맛이었다. 기가 막혔다. 미칠 지경이었다. 눈이 뒤집혀서 허겁지겁 달겨들어 먹는 내 모습을 보면서 옆에 있던 아저씨가 나보고 며칠 굶은 사람처럼 왜 그리 많이 먹냐며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허겁지겁 먹는 내 모습을 보면서 옆에 있던 아저씨들은 모두 배꼽을 잡고 웃고 있었다. 뭐라고 나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았는데, 먹는데에 완전몰입 모드 상태였기에 잘 들리지도 않았다. 삼겹살 맛에 정신이 나가서 무작정 먹어 재끼느라 무슨 말인지도 못 알아들었다. 고기가 충분하다며 많이 먹으라 하셨기에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달려들어 하이에나처럼 헤치워 나갔다. 분명한 건 내 먹는 모습에 웃음바다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순례 20일째를 축하해주기 위해 하느님이 나를 위해 준비한 삼결살파티였다. 환경훼손 현장을 고발해야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은 온데간데 없었고, 죽은 돼지짐승의 살맛에 눈이 뒤집힌 궁휼한 사람짐승이 되어 있었다. 이 짐승사람 한 마리를 불쌍히 여겨 보내준 하늘의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고 하지만, 점점 구걸을 잘하는 방법에 도가 트여간다. 20일째 얻어 먹으며 터득한 구걸법이 꽤나 도움이 되고 있다. 최고의 구걸법은 상대방의 선한 마음을 훔치는 고도의 전략에 있다. 내가 얼마나 불쌍한 상태인지, 그런 나를 당신이 왜 도와주어야 하는지, 그리고 당신이 나를 도와주면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 보여주면 된다. 또 어떨때는 상황 설명을 많이 해야 할 때도 있지만, 오늘처럼 간절하고 애절한 눈빛으로 묵언의 신호를 보내야 할 때도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