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실화다큐에세이

1부 - 1장 (내 친구 환영이)

by 당당 2021. 11. 4.

 

[ 1: 생사의 길목에 서서]

 

1. 내 친구 환영이

 

이 이야기는 청년시절 기억속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러니까 내 나이, 만으로 스물셋에 벌어졌던 이야기다. 그 때 당시 나는 전문산악인으로써 암벽등반, 빙벽등반, 장기종주산행을 하며 산에 미쳐 살았다. 그러던 중 산악회에서 추진했던 히말라야 한국원정대 대원으로 발탁되어, 인도 가르왈 히말라야 바기라티 (6193m) 세계 최초의 루트를 개척하여 오르는 계획에 참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린 등정에 실패했다. 끔찍한 참사를 당했다. 일생일대의 잊혀질 수 없는 큰 사고였다. 정상 어택(attack)중에 공격조는 거대한 눈사태를 만났고. 그 눈사태가 우리를 덮쳤다. 우리는 속수무책 당할 수 밖에 없었고, 그로인해 소중한 대원 한 명을 잃었다. 그는 내 친구 환영이였다. 나는 그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어블랜츠(avalanche), 눈사태였다.

 

내 친구 환영이. 그는 나와 둘도 없는 친구였다. 서로의 목숨을 내걸고 생사를 함께하는 자일파트너였다. 우리는 얼어붙은 거대한 설원의 눈덮힌 계곡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등반하고 있었다. 날씨는 아침부터 흐렸기에 우리는 모두 긴장하며 등반을 해야 했다. 바람은 불지 않았지만, 체감온도는 영하20도를 넘나들 정도의 혹한이었다. 계곡 전체가 암울한 기운으로 가득찬 고요한 적막감에 갇혀 뭔가 심상치 않은 전율감이 감돌았다. 거대한 빙하로 덮혀있는 하얀 침묵의 산, 히말라야 순백의 평온은 어느덧 암울하고 부정적인 기운을 품어가고 있었다. 우르릉 쾅쾅거리는 웅장한 눈사태 소리가 건너편 계곡에서도 음산하게 들려오며 귓가를 맴돌았고, 히말라야 지대에 지진이 발생한 것처럼 계곡 전체가 요동치고 있었기에 우리의 발걸음은 더욱 무거워지고 있었다. 정상 등정을 향한 선발대원들의 의욕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기에, 등정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일정대로 올라갔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들려오는 눈사태 소리에 극도의 공포심과 두려움이 엄습했고, 기가 꺾여 전쟁터에 나가는 졸개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평생을 소원하며 준비해서 성사시킨 히말라야 원정길이었지만 바기라티봉우리는 대원들의 의지와 열정을 무참히도 꺽어놓고 있었다.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예감이 들었을 때, 나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후 두시경 눈덮힌 계곡 사면을 대각선으로 건너가고 있을 즈음, 우리는 6000m가 넘는 바기라티봉 정상(6193m) 봉우리의 깎아지르는 절벽 부근에서 거대한 눈사태 폭발음을 들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해 올랐던 우리들은 5500m 지대에 이르러 육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눈사태가 우리를 덮칠 것이라는 것을 모두들 직감할 수 있었다. 그 거대한 눈사태는 정상부근에서 내달려 우리가 등반하고 있는 계곡으로 진입하여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700미터 전방에서 순식간에 내달린 눈사태는 고막이 찢겨나갈 정도의 폭발음으로 천지를 진동시키며, 우리가 등반하는 계곡 전체를 휩쓸고 쏟아져 내려왔다. 환영이와 나는 함께 자일(등산용로프)을 연결한 상태였고, 그가 먼저 선등을 하면서 등반 루트를 개척해 나가면 나는 뒤따라 올라가는 방식이었다. 90m 길이의 로프 끝자락을 서로의 안전벨트에 묶어두었기에, 그와 나의 간격은 85미터 내외의 간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환영이가 정상을 향해 선등을 하면 나는 그의 뒤에서 자일을 풀어주거나 당겨주면서 추락을 대비해 나갔다. 계곡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위험구간이었기에 정신 바짝 차리고 빌레이(belay - 암벽등반에서 동행자의 추락을 방지하기 위한 로프 조작 기술)를 봐줘야 했다. 그가 등반중에 추락해도 하켄과 아이스 스크류를 설치해가며 카라비너를 자일에 통과시키며 등반하기 때문에, 내 몸에 연결된 자일이 그를 일정 거리 이상 추락하지 않도록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확보기술이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우리는 눈사태를 피할 방도를 찾을 수 없었다. 도망갈 수 없는, 영락없이 독안에 갇힌 쥐였다. 몇 초 사이에 휩쓸려 내려 올 것 같은 눈사태 앞에서 단 몇 걸음만 내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산증세도 견디기 어려웠지만 강인한 정신력으로 죽을 힘을 다해 어택(정상공격)하던 과정에서 불의의 일격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치할 수 있는 건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밀려오는 눈사태를 바라보아야만 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죽음의 그림자가 밀려오며 눈앞을 아른거렸다. ‘곧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엄습하니 만감이 교차했고 지나온 삶의 모든 장면들이 그 짧은 몇 초 사이에 압축되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 눈 앞에는 유년기와 학창시절이 인생파노라마처럼 펼쳐졌고, 불꽃튀는 찰나의 순간에 지나온 과거들이 반짝 나타났다 사라졌다. ‘, 죽음이여! 저승사자가 벌써오다니!’ 순식간이었지만, 망연자실하며 숙명을 마중하고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떨어져 내려오는 눈덩이와 함께 정신 바짝 차리고 함께 굴러 내려가는 것 뿐이었다. 이 거대한 눈사태를 피할 방법이 없었기에 그저 우리를 휩쓸고 갈 때 땅 속 깊이 파묻히지 않도록 노력하는 길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눈속에 묻힌 나를 발견하면 살아날 확률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 가능성은 히말라야 원정대의 다양한 사고 사례를 공부하고 훈련하며 터득한 내용이었다. 단 몇 초만 주어진 짧은 시간의 대처요령이었지만, 실제로 가능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눈사태의 속도와 이동경로를 살피며 두 눈 부릅뜨고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눈사태는 계곡 중앙을 휩쓸며 환영이에게 달려갔고, 대각선 방향 아래의 완만한 비탈에 서있던 내 자리는 중심에서 약간 비껴 있었다. 스노볼(snowball)이 형성되어 환영이에겐 큰 바윗덩이처럼 쏟아져 내렸고, 나에겐 대부분 작은 눈뭉치들이 돌격해 왔다. 그럼에도 나는 수십미터 떠밀려 내둥댕이 쳐졌다. 사정없이 몰아치는 눈덩이에 떠밀려 미끄러지면서 굴러 떨어져 내려갔다. 그 순간 나는 죽을 때 죽더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요령껏 목숨을 건질 시도는 해보자는 심정이었다. 우선 눈사태에 파묻히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눈덩이에 떠밀려 가면서도 수면위를 헤엄치듯 양팔과 다리를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렸다. 추락하면서 바위덩이와 돌부리에 어깨가 부딪치고 몸이 뒤집혀졌다. 너덜지대 바위언덕 구간까지 약 50미터 가량 떠밀려 내려가면서 다시 공중부양하듯 온 몸이 튀어올라 추락하더니, 결국 십여미터 아래 눈사면으로 고꾸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공중에서 몇 바퀴 몸이 뒤집히더니 눈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고 기절해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의식이 깨어나서 눈을 떴을 때 하늘 위에 구름이 보였다. 구름 사이로 비춘 광명빛이 방향을 틀더니, 그 작열하는 햇빛이 눈꺼풀에 반사되어 눈이 부셔왔다. 실눈을 뜨고 의식이 돌아왔을 때, 한동안 멍하니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여기가 어딘가, 무슨 일이 있었던가, 기절했다가 깨어난 후에 새롭게 펼쳐진 광경을 인식하고 있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것이다. 죽음의 사신은 나를 비껴갔다. 너덜지대 바위언덕 뒤로 떠밀려 추락한 것이 행운이었을까. 내가 떨어져 곤두박질 친 자리 뒷 편으로 눈사태로 형성된 스노우볼 덩어리들이 스쳐 지나갔다. 바위언덕에서 떨어져 내려와 곤두박질 쳐진 지점이 동굴 입구의 처마처럼 눈사태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해주었던 것이다. 덕분에 마지막으로 떨어진 내 사고지점에서는 다행이도 더 이상 눈사태에 떠밀려 내려가지 않을 수 있었다. 머리와 가슴은 눈에 덮히지 않은 채 산사면 위에 비스듬히 올라와 있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나는 정신을 차리고 눈사면에 쳐박힌 몸을 일으켜 세우려 애써 보았지만 생각처럼 되지는 않았다. 천만다행으로 크게 다친 부분은 없는 것 같았다. 천운이었다.

 

정신이 돌아온 나는 환영이를 찾아보기로 했다. 환영이가 있던 지점이 어디인지 시선을 집중하여 유심히 살펴 나갔다. 그런데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그가 보이질 않았다. 그는 계곡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등반하고 있었고, 나는 50여미터를 떠내려 온 상황이었다. 나보다 한참 높은 지점에서 사라진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그의 위치를 추정하며 생각해보니 계곡 한 가운데로 몰려든 눈사태가 환영이를 덮쳤다는 건 분명했다. 환영이는 나와 자일이 묶여진 채 90m 앞에서 눈사면을 오르고 있었고, 그곳은 계곡 한가운데 바위벽 크레바스 사이였다. 나는 아이스바일 (Eisbeil - 빙벽을 오를 때 얼음을 깨는 데 쓰는 손도끼) 과 크램폰(crampon - 신발에 부착해서 사용하는 발톱 12개 달린 도구)을 이용하여 눈사면을 거슬러 올라갔다. 좀 더 자세히 집중해서 주변을 살펴 나갔다. 그러다가 약 150미터 위쪽 대각선 방향에 검은 물체 한 점이 보였다. 어렴풋이 계곡 바위틈 크레바스에 환영이가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환영이는 눈사태에 떠밀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쓴 모양이었다. 가까운 바위벽 앙카볼트에 안전벨트 카라비너를 고정시키고 몸을 붙이는 방법을 선택했으리라 생각되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와 연결된 자일은 끊어져 있었다. 90mm(0.9cm) 굵기의 자일은 눈덩이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끊어진 것 같았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환영이를 부르며 그가 대답하길 바랬다. 계속 불러보았지만 150미터 위의 그 검은 물체의 움직임은 없어 보였다. 기절한 것일까. 나는 혼자서 무릅과 허벅지까지 빠져드는 눈사면을 헤치고 환영이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도 나처럼 기절한 상태라면 빨리 올라가서 그를 깨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숨을 몰아쉬며 한 걸음 한 걸음 발길을 옮겼지만, 산소가 부족했는지 눈앞이 아롱거렸다. 체력은 바닥났고 고산증세까지 몰려오고 있었기에, 150m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전진을 하려해도 속도가 나지 않았고 숨이 차서 한걸음 한걸음조차 힘에 부쳤다. 그래도 있는 힘을 다해 검은 물체가 보이는 지점으로 방향을 잡고 계속 눈사면을 가로질러 올라갔다. 이미 체력이 모두 소진된 상태였기에 정신력으로만 버티며 몸을 움직였다.

150미터 거리 정도 되어 보이는 지점에 도착하기까지 한 시간 이상은 족히 걸린 것 같았다. 환영이로 보이는 지점 근처에 다가갈수록 그 몸체는 허리가 뒤로 꺽여진 듯 U자형으로 뒤집혀진 모양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올라왔다. 검은 물체에 가까워질수록 사람임이 분명해져왔다. 환영이의 모습이 점점 선명해질수록 속울음이 떠지기 시작했다. 직접 가까이 가서 확인하지 않아도 환영이는 이미 숨이 멎어 있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몸이 뒤집혀 젖혀진 상태로 안전벨트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나는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환영아! 일어나, 내가 왔어. 나야. 일어나 봐.”

 

환영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시신 앞에서 목이 잠겨버렸다.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환영이는 눈사태와 맞서는 방법으로 바위벽에 매달려 카라비너로 몸을 픽스(fix-고정)해 놓은 상태였다. 카라비너는 안전벨트와 연결되어 있어 환영이가 눈사태에 떠밀리지 않도록 붙잡고 있었다. 환영이는 짧은 순간 피신한 지점에서 바위벽에 몸을 픽스한 채 쏟아져 내린 눈덩이들을 온몸으로 받아안고 그 자리에서 즉사한 것 같았다. 나와 함께 묶여 있던 자일은 눈사태의 무게 때문이었는지 끊어져 있었다. 환영이와 연결된 이 자일이 끊기지 않았다면 나도 눈사태의 무게를 그대로 받아 즉사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가 바위벽에 몸을 픽스(고정)한 상태에서 자일이 끊기지 않았다면 우린 함께 죽었을 운명이었다. 자일이 끊어지면서 자일파트너를 남겨두고 나만 자유롭게 떠밀려 내려간 것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스노우볼 속도와 함께 떠밀려 내려가면서 바위둔덕 아래에 운좋게 낙하하면서 목숨을 건졌다. 환영이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나를 살리려 했던 것일까. 환영이는 바위 절벽에 매달려 죽었고 자일이 끊어진 덕분에 나는 목숨을 건졌다. 사람의 운명이란 이렇게도 뒤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시신을 수습해서 내려가야 했다. 환영이의 입에서는 노랗고 누런 고름이 턱 아래까지 흘러내린 상태로 얼어 있었다. 피를 흘린 자욱은 없었지만, 눈 주위와 입술은 이미 검게 멍든 상태로 얼어 있었고 흰눈발에 고드름처럼 맺혀 있었다. 그의 몸에는 피켈이나 아이젠, 헬멧과 안전벨트, 스크류, 각종 쇠붙이 장비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기에, 시신을 옮기려면 바위에 고정한 보조 자일들을 풀어야 했다. 하지만 시신에 얽힌 그 자일들이 꽁꽁 얼어서 풀리지 않았고, 휴대해 온 칼날도 먹히지 않았다. 내 손가락 마디들은 동상에 걸린 듯 감각도 없었다. 마취된 상태처럼 감각은 없었지만 손아귀 힘만으로 혼신을 다해 어렵게 작업한 끝에, 자일을 끊고 시신을 조금씩 끌어내렸다. 하지만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였다. 혼자서 짊어매고 내려가기에는 쉽지 않았다. 경사면을 이용하여 끌고 내려오는 방법만이 가능했다. 더구나 영하 20도와 해발 5500m 고도에서의 작업이라 간단치가 않았다. 산소부족으로 고산증세가 점점 더 심하게 밀려와서 머리가 깨지는 듯한 통증까지 더해진 상황이었다. 혼자였기 때문에 수습작업 속도도 너무 느렸고, 혼자서 캠프2 (camp2)까지 하산하여 이동시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애를 쓰면 쓸수록 환영이는 복지부동이었다. 그의 몸무게는 나보다 20kg 정도 더 무거웠기 때문에 나의 남은 힘으로는 도저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진퇴양난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즈음, 갑자기 환영이가 나에게 하는 말이 귓전에 들려왔다.

 

성정아! 날 좀 내버려 둬! 날 좀 내버려 둬! 쉬고 싶어. 쉬고 싶어. 너 먼저 가. 너 먼저 내려가. 난 좀 쉬었다 갈께. 먼저 가. 제발 부탁이야. 쉬고 싶어.”

 

나는 환영이의 말을 듣고 기쁨과 슬픔으로 범벅된 감정으로 소리쳐 부르짖었다. 제발 놓아달라는 환영이의 애원섞인 음성이 들려왔고, 나는 강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내려가서 쉬어야 한다고! 여기는 너무 추워. 여기 있으면 얼어 죽어! 임마! 정신 좀 차려! 정신 차리고 내려가야 해!”

 

나는 목이 잠겨 속울음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아 눈물없이 절규하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안 돼! 가야해!’ 나는 환영이에게 함께 가자고 되풀이 말만 하면서 몸을 일으키려 애를 쓰고 있었다. 꿈쩍도 않는 환영이에게 내려가야 한다고 거듭 재촉하고 있었다. 서로 멱살잡이를 해가며 한참동안 실랑이가 벌어졌다. 나는 환영이의 몸을 부둥켜 안고 울고 있었다.

 

이백여 미터 아래에 보이는 등반대장에게 환영이의 죽음을 수신호로 알렸다. 아래에 있었던 대원들은 더욱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함께 선발대로 올라왔지만, 나와 환영이만이 초등루트에 자일을 설치해주는 어택(공격)조였다. 그들도 먼 발치에서 우리의 등반을 지켜보며 따라오다가 눈사태를 맞은 상태였다. 보다 못한 등반대장이 내려오라며 손짓을 하고 있었다. 결국 철수명령이 떨어져서 나는 알겠다고 신호를 보냈다. 명령이 떨어지기 이전에, 이미 나는 혼자서 시신수습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있었다. 사고 현장에는 아무도 없어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기력을 회복하고 다시 돌아와 수습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상황이었다. 등반대장은 그런 나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철수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나는 현실을 직시하고 시신을 눕힐 공간을 찾았다. 바위벽면에 비스듬한 크랙이 보였다. 나는 그곳으로 시신을 질질 끌어서 옮겨갔다. 그곳에 도착하여 가지런히 눕힌 후에 그의 양손을 가지런히 모아서 배꼽위에 올려주었다. 그렇게 시신을 수습하고 나는 부랴부랴 철수를 시작했다. 서쪽하늘에 붉게 물든 해거름이 어둠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기에 시신을 그대로 바위벽에 방치한 상태로 도망치듯 내려왔다.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2차 조난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내 생명도 위태로워질 상황이었다. 나는 스탠드글리세이딩(stand glissading) 기술을 활용하여 눈사면을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등반해서 올라갈 때는 하루종일 걸리던 거리였지만 스탠드글리세이딩 기술로 한시간 반만에 제2캠프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저녁 어스름 캠프2(camp 2)에 도착했다. 고소증세가 심해져 두통과 구토, 어지럼증이 이어졌고, 나는 응급처치를 위해 탠트 안으로 들어가 누워 박카스 병만한 작은 캔산소를 몇 통 들이마셨다. 고농도로 압축한 일본산 캔산소였다. 잠들기 전까지 산소 공급이 뇌까지 원활히 이루어진 상태가 되자, 며칠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기절하듯 쓰러져 잠에 빠져 들었다. 하지만 새벽녘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에 다시 잠을 깰 수밖에 없었다. 컴컴한 밤중에 어딘가에서 거대한 굉음이 들려왔는데 그것은 영락없는 눈사태였다. 오후 내내 멈춰섰던 눈사태가 다시 가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광풍을 동반한 폭설이 탠트를 날려버릴 기세로 폴대가 흔들리고 있었다. 날이 밝으면 다시 올라가서 시신을 가지고 내려와야 했기에 마음은 초조해졌고 왠지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눈이 내린다는 것은, 시신위에 눈이 쌓인다는 신호였고, 눈이 쌓이면 시신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구조작업이 더 어려워질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었다. 밤잠을 설치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지만, 날이 밝은 후에도 저녁까지 하루종일 눈이 내렸기 때문에 우리는 구조작업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또 그 다음날에도 거센 바람을 동반하며 눈이 내렸다. 탠트안에서 들려오는 계곡의 눈사태 소리는 굉음을 울리며 시간당 수차례 이어졌고, 내리는 눈은 점점 더 쌓여만 갔다. 나흘내내 날씨에 고립되어 우리는 꼼짝없이 탠트안에 묶여 생사의 고비를 건너야 했다. 시신을 눕혀놓고 철수한 날부터 나흘동안 쉬지 않고 눈이 내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나흘이란 시간으로 모든 것은 달라져 버렸다. 나흘만에 다시 찾아간 현장에는 골짜기가 통째로 사라져 버렸고, 계곡 전체가 새로운 지형으로 변형된 상태였다. 환영이는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더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고, 그렇게 히말라야의 넓은 품에 묻히고 말았다.

 

 

'실화다큐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1부 - 5장 (산경도를 펼치며)  (0) 2021.11.12
1부 - 4장 (옴 OM)  (0) 2021.11.12
1부 - 3장 (49일간의 영결식)  (0) 2021.11.09
1부 - 2장 (여자친구 자영씨)  (0) 2021.11.09
연재를 시작하며  (0) 2021.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