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어쩌다 산티아고 순례자가 되었던 것일까. 내 인생의 산티아고, 이젠 산티아고 가는 길이 고향가는 길처럼 느껴진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동안 산티아고 프랑스길, 마드리드길, 북쪽길, 포루투갈길, 피니스테라 묵시아길 등을 안내해 왔다. 그런 다양한 길들을 여러차례 안내해 오다보니 날마다 산티아고를 생각하며 사는 인생이 된 것 같다. 순례길이 끝난 후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우두커니처럼 반벙어리처럼 산티아고를 그리워하며 다시 떠날 날을 기다리는 삶이 되었다. 어째서 그렇게 날마다 멍하니 산티아고를 그리워하며 여기까지 온 것일까. 오랜동안 산티아고 순례를 하다보니,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그 설레임으로 나날을 보낸다. 언제나 까미노길 위에서 함께 할 순례단 식구들을 기다리며, 순례자들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그 순간 순간마다 몰입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 안내자로써 무거운 짐을 매고 온종일 걷는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각오한 일이긴 했지만, 발바닥 물집들이 터지는 날도 많았다. 그렇게 물집을 터뜨려가며 하루종일 쌓이는 피로감과 육신의 고통을 인내해야 하는 시간들, 그 시간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걷는 내내 짜증나고 고통스런 일이 된다. 하지만, 가야할 길과 주어진 의무를 망각하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미련하고 멍청한 건 없을 것이다. 순례자의 고민은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순례길에서 느껴지는 육신의 고통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현실에 대한 나의 저항이 나 자신을 괴롭힌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많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당신의 사랑안에 모든 것을 던질 수 밖에 없는 항복(surrender)이야말로 행복(happiness)임을 배워가는 과정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날마다 걸으며 무한히 펼쳐지는 장관 앞에서 ‘나’라는 작은 존재는 사라지고, 당신과 하나되어 새롭게 태어나는 ‘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새롭다기보다 애초에 ‘나’라는 존재가 지금 여기 이 순간의 현존을 인식함으로써,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거룩한 존재인지 마주하게 된다. 뜨거운 피가 쿵꽝거리는 심장 속으로 흘러들었다가 나가며 호흡할 때, 내 마음은 맑게 빛나고 인간 본연의 청명한 생명체로 서게 되는 것이었다. 내게 다가오는 상황과 그 순간들을 온전히 마주하는 힘이 저절로 생겨나고,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이번 생애에 순례자로 이 길 위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격스러워 하며, 더 바랄 것 없는 시간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었다.

돌아보니 산티아고 순례는 당신에게 바치는 온전한 기도였다.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진정한 종교인의 자세와 마음가짐이 깃들게 된다. 그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예수의 고백처럼 ‘제 뜻대로 마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심을 받아들이는 항복(surrender)의 길을 갈 수 있고, 바울의 고백처럼 ‘이제부터 내가 사는 게 아닌,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말처럼 하나됨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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