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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순례기

산티아고 순례를 가는 이유

by 당당 2024. 5. 1.


  길 위에서 그대를 본다, 또 다른 나를 본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 왔던가. 남은 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산티아고 순례를 결심한다는 의미는 잠시 멈춤이자 내려놓음이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나’라고 생각했던 역할과 직무·직위로부터의 해방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내 본연의 모습과 마주하며 천년 물든 길을 걷는거다. 나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길을 걷는다는 의미는, ‘나’라는 진면목을 발견하고 내 안의 빛을 밝히기 위함이다. 단순한 걷기 행위를 넘어 그것과 하나되는 경지에 이르러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까미노 길을 걷다보면 ‘내가 무엇을 한다’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의식의 확장을 경험하게 된다. 까미노와 하나되어 참된 자유와 힐링을 만끽하게 되는 것이다. 신성을 잃어버린 시대에 누릴 수 있는 내 자신의 거룩한 존재감을 느끼며, ‘나’라고 불렸던 껍질을 벗겨내고 이 생명이 얼마나 고귀하고 성스런 존재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온종일 걸으면서 저녁마다 죽고 아침마다 다시 태어나는, 날마다 부활의 기쁨을 맘껏 누릴 수 있는 길이다. 그것이 산티아고를 가는 이유다. 


  순례길을 묵묵히 걷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산티아고 순례를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나'라고 규정했던 망상이 사라져 버리고, 오롯이 순례자가 되어 치유와 힐링의 황홀한 경지를 체험하게 된다. 내가 산티아고인지, 산티아고가 나인지 알 수 없는 의식차원으로 이동하면서, 산티아고가 나를 관통해 세상에 실현코자 하는 것을 드러내는 과정에 함께하게 될 것이다. 그 속에서 나를 통해 하나인 ‘존재’가 숨쉬고 걸으며 노래하고 있음을 느끼고, ‘나’란 존재가 얼마나 소중하고 축복된 사람인지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순례자 본인에게 바치는 온전한 기도가 되어,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으로 깃털처럼 가볍게 살아가는 법을 익혀가게 될 것이다. 스스로 돌보지 못했던 자신을 위로하고 칭찬하며 사랑해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