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의 역사적 배경

산티아고 순례의 역사적 배경
‘순례자의 길’이라 말하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성 야고보의 유해가 안치된 성지, 스페인 북서부 갈라시아 지방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으로 가는 길을 말한다. 야고보가 서기 45년에 해롯왕으로부터 처형되기 전까지 갈라시아 지방에서 복음을 전파했다는 곳의 수도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다. 그 한 가운데 지어진 대성당 성지까지 가는 길을 산티아고 길이라고 한다.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가는 길은 무수히 많으나, 일명 ‘프랑스길’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산티아고 프랑스길이란, 프랑스 남부 생장-피에드포르(Saint jean Pied de Port)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약 778km의 길을 말한다. 프랑스인들이 프랑스에서부터 오는 길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파리에서부터 시작하는 길도 있으며, 그 전의 지방에서부터 시작하는 2천km가 넘는 길을 지금도 순례하는 이들이 있다. 이 순례길은 여행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면서 인생의 해답을 얻기 위해 매년 수많은 세계인들이 찾고 있으며, 199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세계적인 도보 여행길이다.
지난 1189년 교황 알렉산더 3세는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성스러운 도시로 선포했다. 야고보의 유해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음을 1122년 교황 칼리스토 2세로부터 공인받은 이후, 성 야보고 유해의 진위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일단락되었고, 교황청에서 산티아고 대성당에 안치된 야고보의 유해를 공식 인정한 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는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기독교 3대 성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러므로써 종교전쟁으로 길이 막힌 예루살렘과 로마 성지를 갈 수 없었던 전 세계 카톨릭 신자들은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향했다. 이후 수세기를 걸쳐 산티아고 성지순례를 하는 카톨릭 신자들로 인해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가는 길들이 각 나라별로 거미줄처럼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엔 교황의 칙령에 따라 성스러운 해(성 야보고의 축일인 7월 25일이 일요일이 되는 해)에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하는 순례자는 면죄부를 통해 그간 지은 죄를 모두 속죄받고, 다른 해에 도착한 순례자는 반죄부를 통해 지은 죄의 절반을 속죄받는다고 했기 때문에, 카톨릭 신자들에겐 죽기전에 목숨걸고라도 꼭 가야할 길이었다.
지금 시대에는 납득하기 어렵고, 상상하기 어려운 면죄부 반죄부 이야기 이지만, 그렇게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포르투갈·영국·이탈리아·독일 등 유럽 전 지역에서 출발하여 스페인 갈라시아 지역의 수도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도심 한 가운데에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향했던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11∼15세기에 가장 번성하다가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종교전쟁이 멈추고 안정기에 들어서면서부터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서는 최초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방문하면서 가톨릭 신자들로부터 다시금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일반인들에게도 장기 도보여행 코스로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브라질 출신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가 1986년 출간된 이후 산티아고 순례길은 더욱 유명세를 탔다. 또한 1993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전 세계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순례문화가 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와서 순례문화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고, 힐링과 치유를 위한 걷기운동 차원에서도 전셰계 비종교인의 10대 버킷리스트로 매년 선정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