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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사회

코로나블루를 극복하는 법-1

by 당당 2020. 9. 18.

 

 

 


  알래스카로 여행했던 때, 디펙초프라의 책을 읽었다. 완전한 삶이란 무엇인가? 근원과 분리되지 않은 실체의 삶이란 무엇인가?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가는 내용이었다. 마지막 장 후기엔 이런 내용이 정리되어 있었다.

* 나는 누구인가? 인간의 신경계를 통해 작용하는 우주 전체다.
* 나는 어디서 왔는가? 태어난 적 없고 결코 죽지 않는 근원에서 왔다.
*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매 순간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서.

 

왜 태어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 그 화두를 진지하게 부여잡고 갈 수 있는 명쾌한 해석이었다.

 

 

 


예수가 도마에게 “저 자신을 알면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러자 잠시 후에 도마는 예수에게 다시 물었다.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는 대답했다. “네가 네 안에 있는 그것을 꺼내면 네 안에 있는 그것이 너를 구원할 것이요, 네가 네 안에 있는 그것을 꺼내지 못한다면 태어나지 못한 네 안의 그것이 너를 파괴시키고 말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의 의미가 이런 의미의 뜻이지 않았을까? 너는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묻고 있었던 갓이다. 나에게는 “너의 길을 가라”, “너 자신을 살라”, “너를 사랑하라”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그것이 그 분에게 가는 길이고, 그 분의 뜻을 섬기는 행위이자,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지 않을까.

 

 

 


  그렇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온전하고 완벽한 세상과 마주할 수 없다. 나의 빛을 최대한 밝히는 것이 세상을 밝히는 것이다. 우린 이미 빛이었다. 가로막은 장막을 걷어내면 안팎의 빛은 하나가 된다. 이젠 남 눈치보지 말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내 열정이 시키는대로 살아야 한다. 비교는 바보들의 놀이다. 조건없이 나를 사랑하는 것, 모두가 등을 돌릴 때에도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비추는 행복의 열쇠다.

 

 

 


인생은 사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 우리는 모두 인생여행자. 이제부터 ‘나’ 사랑하기다. 두려움없이 당당하게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축복 가득한 천국의 삶을 열 수 있다. ‘천국’이란 시공간의 어느 장소가 아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존재의 중심에 서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얼마나 거룩하고 신성한 존재인가. 우리가 무지했던 건 신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자연으로부터, 실재(reality)로부터, 자기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는 사실에서 모든 문제의 원인이 출발한다. 나는 구르지예프(게오르케 이바노비치)의 세가지 다짐을 상기하며 코로나블루에 맞서려 한다.

 

 

 

* 나는 이제 나의 거대한 나를 허물기로 한다.
* 나는 이제 나의 중독성으로 인한 고통을 멈추기로 한다.
* 내가 나로써 존재할 때에만 삶은 실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