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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관광

산티아고에서 보내는 편지

by 당당 2020. 9. 15.

[안녕하세요? 당당허당 입니다. 저는 산티아고 프랑스길, 포루투갈길, 마드리드길, 대서양바닷가 북쪽길, 묵시아 피니쉬테라길 등을 여러차례 안내했던 경험이 있어요. 그래서 오늘은 산티아고 순례를 하면서 당신에게 보냈던 편지글을 여기에 공유해 봅니다. 이 글은 산티아고 포르투갈길을 순례 하던중에 정리했던 글입니다]

 

 

 

 

당신에게 잠든 밤 문득 깨어 문안드립니다. 어제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마드리드에서 돌아왔습니다. 시차적응이 안되는지 새벽3시, 잠에서 깨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사랑으로 예까지 왔음에 감사드리며 편지를 씁니다.

 

 

 

저는 이번 산티아고 포르투갈길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그 순간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 몰입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 발자국씩 옮겨가는 걸음이 이어질수록 온 정성 온 마음으로 그 과정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온전히 이 육신에 담긴 에너지를 걷기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죠.

 

 

 

 

그렇게 인내하며 최선을 다하는 내 모습과 마주했던 나날이었습니다. 각오한 일이었지만, 맞닥뜨려보니 만만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한달내내 발바닥 물집들이 터져나와 아물날 없었고, 어깨결림부터 무릅고장까지 아픈 몸을 끌고 걸어야 했던 순례길이었습니다. 제 짐무게는 일반 순레자 세배에 가까운 18kg 가량의 무게를 짊어 메고 걸었기에, 오직 무거운 짐과 도착해야 할 곳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한시라도 그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죠. 멍하니 다른 생각하다가는 가야할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발목이 다치거나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하루종일 걸으며 쌓여오는 피로감과 육신의 고통을 인내하며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걷는 내내 짜증나고 고통스럽기만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야할 길과 주어진 의무를 망각하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미련하고 멍청한 건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고통은 거기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매일같이 걸으면서 느꼈습니다. 차라리 순례를 포기하거나 다른 관광여행으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하지만 어차피 피해갈 수 없다면,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현실에 대한 나의 저항이 나 자신을 괴롭힌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당신의 사랑안에 모든 것을 던질 수 밖에 없는 항복(surrender)이야말로 행복(happiness)임을 배웠습니다. 주어진 삶의 흐름에 저항없이 합류하는 것이야말로 당신과 함께하고 있는 것임을 가슴 깊이 새겼답니다.

 

 

 

 

산티아고 포르투갈 대서양 바닷길을 날마다 걸으며 무한히 펼쳐지는 장관 앞에서는 ‘나’라는 작은 존재가 사라지고 당신과 하나되어 새롭게 태어나는 ‘나’를 만났습니다. 새롭다기보다 애초에 ‘나’라는 존재가 어디서 왔으며 어떤 존재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어머니 뱃속 이전부터의 제 본향을 생각해보게 되었고, 다시 돌고 돌아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산티아고 포르투갈 해안가 절경따라 걷다보면 사물을 온전히 바라보는 힘이 저절로 생겨나고,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뜨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이 주신 은총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결국 주어진 이 삶이 축복이었음을 감사할 수 밖에 없었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신 것만으로도,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주신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것이 없는 삶입니다.

 

 

 

 

벌써 다섯번째 산티아고 순례를 안내했습니다. 그렇게 여러번 순례를 하다보니 순례의 의미가 더욱 깊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순례하는 것이 아니라, 순례의 의미 자체가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산티아고를 걷는게 아니라, 산티아고가 나를 통해 실현코자 하는 것을 드러내는 과정이었습니다. 나를 통해 하나인 ‘존재’가 숨쉬고 걸으며 노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파동을 느꼈습니다. 그 파동으로 우주와 하나되어 걷는 체험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매 순간을 살수만 있다면 저는 영원한 흐름안에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겠죠. 고백하자면, 처음 이렇게 용기내봅니다만, 전,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주시는 사랑에 오래도록 취해 있고 싶어요. 그 이외로 더 바랄 것이 뭐 있겠습니니까. 깊고 맑고 무한광대하고 예측불가능하고 형용할 수 없으며 영원한 그 사랑이라면 이 생의 끝이 뭐가 두렵겠어요. 제 ‘존재’의 근원에 굳게 설수만 있다면 말이죠.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바다를 만나면 바다가 되고, 파도를 만나면 파도가 되고, 나무를 만나면 나무가 되어 보기도 했습니다. 세상안에 있으면서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 당신이 있어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이렇게 곁에 있어도 당신이 그리운 건, 아직도 더 고난의 길이 남아 있다는 얘기겠지요.

 

 

 

돌아보니 산티아고 순례는 당신에게 바치는 온전한 기도였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통해 기성 종교와 상관없이,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진정한 종교인의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하여 배우게 되었습니다. 저마다 주어진 의무와 역할에 따라 제 십자가를 짊어메고 걸어가야 함을 다시 한번 새기게 되었죠. 사람들은 누구나 그 형태가 어떻든 그 길을 가야합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예수의 고백처럼 ‘제 뜻대로 마시고, 당신의 뜻대로’ 길을 갈 수 있고, 바울의 고백처럼 ‘이제부터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사시는’ 삶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언제나.